공사와 귀족 노조, 그 은밀한 채용 거래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2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울산지부 소속 S사 노조의 요구로 노조 조합원의 자녀와 친인척 등 40여명이 2011년부터 2013년과 2018년 채용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민주노총 고용세습 화이트리스트 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뉴시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2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울산지부 소속 S사 노조의 요구로 노조 조합원의 자녀와 친인척 등 40여명이 2011년부터 2013년과 2018년 채용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민주노총 고용세습 화이트리스트 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서울교통공사로 인해 불거진 공공부문의 '가족 채용 비리' 의혹과 관련해 서울교통공사 외에도 인천공항공사, 국토정보공사, 가스공사, 도로공사, 남동발전, 세라믹기술원 등에서도 유사한 '가족 채용'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앞서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우선·특별채용 단체협약 현황’ 자료를 근거로 “고용세습 조항이 포함된 단체협약을 유지하고 있는 노조 13곳 중 9곳이 민주노총 소속”이라고 주장했다. 민간 기업에서도 채용비리가 잇따라 터지며 적폐 청산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평등·공정·정의 상실...'노조 친인척 채용 금지법' 주목
오너 경영승계 묵인 거래 의혹...일반인도 허탈감 느껴

하태경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우선·특별채용 단체협약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달 기준 고용세습 조항이 포함된 단체협약을 유지하고 있는 민주노총 소속 노조는 현대자동차, 금호타이어, 현대로템, 성동조선해양, S&T중공업, S&T대우, TCC동양, 두산건설, 태평양밸브공업 등 9곳이고, 한국노총 소속 노조는 롯데정밀화학, 삼영전자, 현대종합금속 등 3곳이었다.

상급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두산모트롤까지 포함한 총 13곳의 노조가 단체협약에 장기근속자 및 정년퇴직자의 자녀를 신규채용시 우선 채용하는 조항을 넣어둔 것으로 파악됐다.

하 의원에 따르면,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중 최대 사업장인 현대차(조합원수 4만7383명)는 신규채용 때 정년퇴직자와 25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직계자녀 1인을 우선 채용하도록 하고 있다.

하 의원은 "일반 청년 취업준비생은 노조 자녀들과 취업에 있어서 동일한 출발선상에 있지 않다"며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는 게 명확하다"고 말했다.

하 의원은 "이런 조항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10여년 이상 됐을 것이다"라며 "이런 단협을 유지해왔던 것에 대해 민주노총은 국민과 대한민국 청년 앞에 공개 사과해야 하며 고용노동부는 민주노총 고용세습의 전모를 밝힐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국민적 분노와 지적 거세

지난 국정감사에서는 서울교통공사 노조의 친인척 채용비리 및 고용세습 사실이 드러나며 국민적 분노와 지적이 거세게 일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최근 한국당 유민봉 의원이 밝혀낸 '정규직 전환자 중 기존 직원 가족 108명' 가운데 26명은 3급 이상 고위직의 친인척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날 조선일보가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을 인용해 보도한 강원랜드 사례에서도, 채용 비리 의혹에 연관된 내용이 있었다. 신문에 따르면, 강원랜드는 채용비리 사태 이후 공채 탈락자 225명을 구제하는 과정에서 25명의 기존 임직원 친인척을 채용했다. 이들을 포함해 강원랜드 정규직 전환자·대상자 중 기존 임직원 친인척은 99명이라고 신문은 보도했다. 

또 한국가스공사에서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확정한 1203명 가운데 기존 임직원 친인척은 33명이었는데, 이 가운데는 "감사실 고위 간부의 여동생과 처남"도 포함됐다. 통상 인사·감사업무 담당자는 노조 가입 대상자가 아닌 경우가 일반적이다.

상황이 이렇게되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성태 의원 등 110명은 노동조합 조합원의 친인척을 부당하게 우선채용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금지하는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김 의원은 “일부 대기업에서는 노동조합 조합원 자녀를 우선 채용하도록 노사 간에 ‘고용 세습’ 단체협약을 체결함으로써 고용시장의 공정한 채용질서를 교란하고, 특히 청년 구직자들에게 깊은 상실감을 안겨주고 있다”며 “노동조합의 부당한 고용세습을 근절하고 사용자와의 담합을 근본적으로 금지해 채용비리를 막아야 한다”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같은 당 임이자 의원도 “상당수 기업 등이 근로자의 가족, 친인척 등이 해당 사업장에서 근로하거나 근로하였던 경력을 이유로 특별채용이나 우선채용을 한 사례가 있음이 밝혀져 사회적인 논란이 되고 있다”며 「고용정책기본법」이 금지하고 있는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에 ‘가족, 친인척 등의 해당 사업장 근로 경력을 이유로 한 차별’이 포함됨을 명시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대물림은 왜 생겼나

그렇다면 현대판 음서제로까지 불리는 귀족 노조의 일자리 대물림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파업으로 큰 손실을 보자 노조 비위 맞추기에 나섰고 고용의 대물림이라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단체협약이 등장했다고 분석한다.

또한 재벌가의 노조 눈치보기는 3세 경영승계와도 관련 있다는 관측이다. 노조가 경영승계를 묵인해주는 대신 사측은 조합원 자녀의 일자리 대물림을 용인해주는 거래에 나섰다는 지적이다.

30대 그룹 3,4세가 28세에 입사해 평균 3.5년만에 임원으로 승진한다는 통계는 노조 자녀의 일자리 대물림 못지 않게 일반인들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정부는 노조의 일자리 대물림이 청년 취업난을 부추기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어렵게 만든다며 개선할 것을 권고중이다.

한편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의혹에 휘말린 전직 노조위원장들은 지난달 13일 비리를 저지른 적이 없다며 감사원 감사를 통해 의혹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우리 전직 노조 위원장들은 채용 비리와 관련된 어떤 비위 사실도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힌다"고 말했다.

이어 이어 "단지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회사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비리 혐의자로 의심받으며 오늘도 묵묵히 일하고 있는 조합원들에 대한 공연한 의심들이 이번 기회로 남김없이 걷어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덧붙였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지부장 하부영, 이하 현대차지부)도 채용비리 고용세습 관련 논란을 전면 반박했다. 현대차지부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채용비리 고용세습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진 억지주장”이라며 “국회가 나서서 전수조사하여 확인하고 검증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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