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오럴 히스토리] - 정태익 편
‘외교관 신분’ 특별법으로 관리, 봉급체계는 일반 공무원과 같아
총무과장 거처야 외교부 중요 간부로 성장

외교부 신임사무관 임명장 수여식 [뉴시스]
외교부 신임사무관 임명장 수여식 [뉴시스]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에서 ‘외교’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기 위해 오럴히스토리사업 ‘한국 외교와 외교관’ 도서 출판을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총 16권의 책이 발간됐다. 일요서울은 그중 정태익 전 주러대사의 이야기가 담긴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지면으로 옮겼다. 

- 아프리카에서 약 3년가량 근무한 후 다시 외교부 본부에 법무담당관으로 부임했다. 법무담당관이라는 보직은 주로 어떤 임무를 담당하나?

▲ 법무담당관은 외교부의 모든 법률 업무를 담당하는 직책이다. 미국은 모든 외교정책이 법적 통제를 받게 되어 있어서 미 국무성의 법률자문관은 부장관 다음가는 서열 3위의 고위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교부장관을 대리해 소송을 하거나 직제와 총원 관리를 담당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직제개편은 법률 개정사항이다. 나는 법무담당관으로서 외교부 TO 문제나 조직개편 업무에 상당히 관여했다.

대한민국 공무원 조직에서 막강한 힘을 쓰는 부서는 총무처와 기획재정부다. 조직을 관리하는 것과 예산을 따는 일이 공무원의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다. 당시 경험으로 인사와 예산 그리고 조직관리 등 외무행정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내가 법무담당관으로 근무할 당시 중요하게 다뤘던 업무의 하나는 외무공무원 봉급체계를 바꾸는 작업이었다. 공직자의 신분을 관리하는 특별법이 적용되는 공무원은 봉급체계가 다르다. 외교관의 신분은 특별법으로 관리되는데도 불구하고 외무공무원의 봉급체계가 일반 공무원과 같다. 그래서 특별공무원에 준하는 봉급체계를 만들려고 했다. 

검찰·경찰·군인·교육공무원들은 일반 공무원과 봉급체계가 다른데, 그중에서 인원이 제일 적은 외무공무원이 예외가 된 거다. 이 점을 고려해 외무공무원의 봉급체계를 다르게 하는 안을 만들어 관철시키려 노력했는데, 결과적으로 거대한 일반 공무원 조직의 벽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했다.

법무담당관 재임 중 외무공무원법 개정에 관련해서도 노력을 했다. 외교관은 군인과 마찬가지로 계급정년이 따로 있다. 어떤 직급에 머물러 있는 동안 몇 년 이내에 승진하지 못하면 탈락하는 제도로, 조직을 엘리트화하겠다고 만든 법이다. 그런데 이 제도를 실제 운영해 보니 온정주의가 작동해서 계급정년에 걸리는 사람들이 대부분 구제됐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오히려 조직관리를 왜곡하는 경우가 생긴다. 하위에 있는 공직자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승진하면서 유능한 젊은 직원이 승진할 수 있는 기회를 오히려 박탈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래서 이런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이 대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계급정년을 연장하는 법안을 올렸더니, 당시 노신영 총리가 원래 외무공무원법 취지대로 인사운영을 하는 것이 옳다고 하며 개정안을 거부했다. 결국은 직급정년을 늘리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처리 과정에서 그런 고충이 있었다.

-1985년 9월에는 총무과장으로 발령이 났다. 총무과장은 인사와 예산을 다루기 때문에 외교부의 핵심 요직이다. 당시 외교부 인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던 요인은 어떤 것이고, 또 인사 원칙에는 어떤 요소들이 있었나?

▲ 당시 총무과장은 외교부 과장급 중에 가장 막강한 자리였다. 영향력 면에서는 국장 이상인 자리다. 그래서 총무과장을 거친 사람들이 외교부의 중요 간부로 성장을 했다. 전체 조직을 관리하면서 고위직 외교관으로서의 자질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이원경 외무장관, 이상옥 외무차관이 있었다. 이원경 외무장관은 인품이 훌륭하고 매사 업무 처리가 합리적이다. 본인의 철학이 확고해서 존경받았다. 이분은 비서실이나 총무과에 충청도 사람을 많이 기용했다. 아마 충청도 사람이 충직하고 균형 감각이 있다고 본 것 같다.

제가 인사계에도 있었고 법무담당관도 했으니, 조직관리에 경험이 있다고 보아 이원경 장관이 저를 총무과장으로 발탁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당시 총무과장 업무가 예산과 인사를 담당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공명과 공정이 요구됐고, 장관의 철학에 맞추어 나름대로 일을 공정하게 처리했다고 생각한다.

또 이상옥 차관이 총무과장과 기획관리실장 출신이고 조직과 인사를 잘 아는 사람이다. 공정성과 합리성을 추구하시는 사람이다. 그렇게 장·차관의 뜻을 잘 받들어 일했다. 언제나 인사 문제는 100%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인사에 불이익을 받은 사람은 불편을 할 수 있겠지만 나름대로 원칙에 충실하게 인사 업무를 했다.

총무과장은 모든 조직원에게서 편지를 제일 많이 받는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각기 요구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다양한 요구를 소화하고 조정해야 한다. 일은 많았지만 보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조직이 많이 달라져 인사 문제는 국장급 이상이 참여해 다면평가를 하고 있다. 대과(大過) 없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조직을 운영했다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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