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대 전 대법관(좌)과 고영한 전 대법관(우) [뉴시스]
박병대 전 대법관(좌)과 고영한 전 대법관(우)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양승태 행정처가 한·일 청구권 협정 관련 헌법소원 사건 등 헌법재판소 내부 기밀 정보를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유출한 정황이 밝혀졌다.

'사법농단' 의혹 수사를 진행 중인 검찰은 당시 대법원과 김앤장이 일제 강제징용 소송 재판과 관련해 하나의 '팀'으로서 활동했고, 헌재의 기밀까지 오간 것으로 여기고 있다.

5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 같은 정황을 드러내는 인적·물적 증거를 확보해 박병대(61·사법연수원 12기)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이를 명시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5년 9월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일 청구권 협정 헌법소원 사건 처리가 더뎌진다는 지적을 두고 '연내 마무리될 것'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이에 임종헌(59·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헌재로 파견된 최모 부장판사에게 헌재 내부 상황을 면밀히 살피도록 지시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결탁해 일제 강제징용 소송 재판을 고의로 미루는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헌재가 국감에서 연내 사건을 마무리할 것이라는 방침을 발표하자 행정처는 헌재의 결정이 향후 재판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여겼고, 상황을 파악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가 한·일 청구권 협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단할 경우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으로부터 배상 판결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헌재 파견 법관으로부터 보고받은 정보를 김앤장 소속 한모 변호사에게건넨 것으로 파악했다. 한 변호사는 당시 전범기업 측을 대리했던 김앤장에서 사실상 송무 분야를 담당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과 3차례 이상 직접 대면하고, 관련 내용을 논의했다는 의혹을 지닌다.

검찰은 당시 행정처가 김앤장과 사실상 같은 팀으로서 헌재 기밀 등 정보를 주고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당시 헌재 내부 재판 진행상황 및 재판관 보고 상황 등을 유출했다는 정황을 수사해 임 전 차장 공소사실에 적시하고, 박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 청구서에도 함께 명시했다.

한편 검찰은 당시 행정처가 헌법재판소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할 목적으로 특정 사건 재판 선고를 앞당기려 한 정황도 적발됐다.

검찰은 충남 당진시와 경기 평택시 등이 다투던 매립지 관할 문제 소송과 관련해 행정처가 지난 2016년 10월 대법원 계류 사건 선고 시기를 앞당기는 등의 내용을 검토한 문건 등을 파악했다.

당시 같은 사안 권한쟁의심판 사건을 맡았던 헌재는 공개변론을 진행하는 등 심리를 빠르게 진행했다. 이를 감지한 행정처는 헌재 결정보다 먼저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게끔 선고 시기를 앞당기는 것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헌재보다 먼저 법리적 판단을 내림으로써 대법원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이유다.

실제로 행정처의 검토 사안을 전달받은 대법원은 계류 중인 사건의 판결 선고를 앞당기려 했으나 국정농단 사건이 발발하는 등 정국이 혼란스러워지면서 유야무야됐다. 검찰은 고영한(63·11기) 전 대법관의 지시로 이 같은 검토가 이뤄졌다고 여겨 구속영장 범죄사실에 이 같은 정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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