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편취하거나 모르모트 취급하거나?

'레진 불공정행위 규탄연대' 등 3개의 시민단체가 지난달 22일 '문화산업계 만연한 지망생 착취와 저작권 편취 실태 고발 기자회견'을 가졌다.
'레진 불공정행위 규탄연대' 등 3개의 시민단체가 지난달 22일 '문화산업계 만연한 지망생 착취와 저작권 편취 실태 고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국내서 ‘웹툰(webtoon·인터넷을 통해 연재하고 배포하는 만화)’ 등 문화산업 분야가 나날이 발전하면서 ‘웹툰 작가’를 꿈꾸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와 달리 웹툰계 내부에는 ‘업계 관행’을 빌미로 작가들의 저작권을 편취하는 등 어두운 면이 존재해 개선책이 요구된다.


작가 “한 전 대표, 미성년자 웹툰 작가 상대로 부당 수익 챙겨”
플랫폼 “회사 직접 관여 안 해…특정 입장 밝힐 수 없어”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 한희성 전 대표가 계약 당시 미성년자 신분이던 웹툰 지망생의 저작권과 수익을 몇 년에 걸쳐 갈취했다는 목소리가 대두됐다.

‘레진 불공정행위 규탄연대(이하 레규연)’을 포함한 3개의 시민단체는 지난달 22일 한 전 대표를 ‘우월적 지위남용에 의한 불공정거래행위(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1호)’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이는 2013년 한 전 대표가 당시 만 17세로 미성년자 신분이었던 웹툰 작가 A씨의 데뷔 작품에 자신을 글 작가로 올린 뒤 이를 명목으로 A작가의 작품 수입을 편취한 사건이다.

레규연에 따르면 한 전 대표는 작품 관련 몇 가지 의견을 제시했을 뿐 작품 원안, 플롯(plot·서사 작품 속에서 개별적인 사건의 나열), 콘티, 대본 제공 등 창작 소지가 있는 활동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A작가에게 ‘업계 관행’을 빌미로 작품 저작자 표시란에 자신의 필명(레진)을 함께 올려 글 작가 몫의 수익 30%를 요구해 분배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계약 체결 당시 레진이 A작가가 미성년자 신분임에도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확인하지 않은 점과 수익 분배 내용이 계약서에 적혀 있지 않았던 점도 문제됐다.

논란이 일자 같은 날 레진코믹스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회사는 공동작가 등 작가들 간 수익 분배 협의에 대해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현재 양측 주장이 다르기 때문에 이와 관련 회사가 특정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거리를 뒀다. 

이 사건에 관해 김성주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이 사건은 웹툰 플랫폼의 전 대표가 작품 창작에 아이디어, 일부 피드백 등을 제공한 것을 이유로 (해당) 작품의 글작가로 등재했다”며 “이 부분은 저작권 침해 소지가 충분히 있다고 보여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현행 저작권법은 저작자 아닌 자를 저작자로 하여 실명 또는 이명을 표시해 저작물을 공표할 경우 저작권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고 본다. 저작권 침해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벌칙 조항에 따라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당시 한 전 대표와 A작가가 웹툰 플랫폼 대표와 웹툰 작가 지망생 사이 즉, ‘갑을 관계’였단 것도 쟁점이다. 웹툰 플랫폼 대표는 웹툰 게재 여탈권(與奪權·주고 빼앗을 수 있는 권리)을 갖기 때문에 사실상 작가보다 우월한 지위를 갖는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사업자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타인과 거래한 ‘지위 남용의 행위’를 불공정거래 행위로 판단한다.

 

플랫폼은 많아지는데…
웹툰 작가 처우는 ‘글쎄’

 

웹툰 작가들을 향한 플랫폼의 ‘갑질’은 이뿐만 아니다. 우리은행은 지난 6월 중순께 웹툰 플랫폼 ‘위비툰’을 출시했다. 자사 모바일 메신저 ‘위비톡’ 이용 고객을 대상으로 한 무료 서비스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지난 10월 19일 치러진 위비툰 작가 대표단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서비스를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작가들이 반발하자 우리은행은 개발 기관 및 콘텐츠 수급을 포함해 운영업체와 체결한 계약 기간이 만료됐다고 수비진을 폈다.

위비툰 연재 작가들은 전면 반박했다. 작품 최초 섭외는 위탁업체의 결정이었으나 이후 우리은행의 승인 과정을 거쳤다는 것. 즉, 우리은행이 위비툰 연재 작품 중 2년 이상(100화 이상) 연재해야 하는 장편 작품도 다수 포함돼 있던 사실을 모를 리 없단 주장이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은 지난 10월 31일 언론 매체 ‘웹툰가이드’와 진행된 인터뷰에서 “제휴사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가장 많은 연재 회차를 가진 작품은 132회차”이며 “이 작품은 비독점작으로 위비툰 외 다른 채널로 서비스가 되는 것으로 안다”고 반론했다.

이 밖에도 위비툰 작가들은 ▲운영 당시 미진한 홍보 ▲2차 저작물(드라마화, 영화화) 사업 논의가 오가던 작품들이 있었으나 위비툰의 불투명한 존속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가 무산되거나 무기한 연기돼 작가들이 피해를 입은 것을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우리은행이 마치 떴다방처럼 플랫폼을 졸속 운영하고 도주하는 선례를 만들었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한국만화가협회와 한국웹툰작가협회는 지난달 13일 “우리은행은 위비툰 사태에 책임있게 처신하라”는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우리은행의 무책임한 행동에 분노한다”며 “무책임한 서비스 중단은 창작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폭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우리은행에게 대안 없는 사업 폐지가 아닌 작가들의 피해 보상과 작품을 이동 연재할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할 것을 촉구했다.

 

“저작권, 창작자의
‘당연한 권리’”로 여겨져야

 

이처럼 웹툰 시장이 확대되면서 관련 플랫폼은 증가하는 추세이나 그에 따른 병폐도 비례하는 모습이다. 일례로 지난 6월 KT는 운영해 오던 ‘케이툰’ 서비스를 축소하겠다고 발표해 논란을 샀다.

이처럼 무분별한 플랫폼 형성은 작가들의 저작권과 창작권을 보호하지 못해 그들을 사각지대로 내몬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관해 김 변호사는 “플랫폼이 만들어지면 그만큼 작가들에게 창작 기회가 늘거나 데뷔 폭이 넓어지고, 창작물이 많은 독자에게 공유될 수 있어 플랫폼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순 없다”면서도 “웹툰 시장이 양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 보니 작가의 저작권이 웹툰 플랫폼으로부터 불공정하게 침해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선 웹툰을 하나의 ‘저작물’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식이 사회에 자리 잡지 못해 실제 많은 이들이 경각심 없이 유료 웹툰을 불법으로 다른 사이트에 유포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웹툰 작가 B씨는 “작가들의 소중한 저작물과 창작물이 불법으로 유통되는 건 생계의 치명적일뿐더러 허탈감을 느끼게 한다”며 “작가는 작품을 열심히 만들었는데 (유포자들은) 그것을 마치 식당에서 음식 훔쳐 먹듯이 훔쳐 가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김 변호사는 “저작권은 창작물로부터 발생하는 권리이므로, 기본적으로 창작자를 보호하기 위한 권리라는 점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전제 하에 저작권법에 대한 법적 해석 또한 창작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널리 해석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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