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100대 국정과제이자 일자리 창출의 한 방식인 ‘광주형 일자리’가 막판 진통을 겪고 있다. 광주시와 현대차가 합작법인으로 설립해 추진하는 이번 사업은 7000억 원가량의 돈이 들어가고 인프라 구축 비용까지 합치면 1조 원이 들어간다. 정부와 광주시에서는 획기적인 일자리 창출 방안이라고 보고 있지만 노조와 현대차가 첨예하게 맞서면서 극적 합의점을 찾았다가 막판 현대차가 거절함으로써 다시 원점에서 재검토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의 허와 실을 알아봤다.
- 민주노총, “호남에 대한 정치적 선물 아닌가” 반발
- 노동계와 현대차 ‘밥그릇 싸움’ 국민혈세 ‘낭비론’도
광주형 일자리란 광주광역시가 지역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고안한 사업으로, 기업이 낮은 임금으로 근로자를 고용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복리·후생 비용 지원을 통해 보전한다는 일자리 창출 사업이다.
이는 고임금 제조업으로 여겨지는 완성차 공장을 짓되, 임금을 절반으로 낮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임금을 줄이는 만큼 일자리의 숫자를 늘리자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광주시는 빛그린산업단지 내에 자동차 생산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했고, 현대차가 2018년 5월 참여 의향서를 제출했다.
광주시와 현대차는 7000억 원을 투입해 빛그린산업단지 내 62만 8000㎡ 부지에 1000cc 미만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연간 10만 대 양산을 목표로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노동계, ‘노동조건’ 두고 찬반 ‘팽팽’
이 공장 설립 시 정규직 근로자는 신입 생산직과 경력 관리직을 합쳐 1000여 명, 간접 고용까지 더하면 1만∼1만2000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리고 고용되는 근로자의 임금은 자동차 업계 평균임금의 절반 수준인 3,500만 원을 지급하는 대신 각종 후생 복지 비용으로 소득 부족분을 지원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단순한 일자리 창출을 넘어 노사민정 대타협을 통한 노사 파트너십 구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문재인 정부가 국정 과제로 채택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의 중심에 섰다. 청년 실업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반값 연봉과 복지를 결합한 고용시장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최종 합의에 이를 것 같았던 ‘광주형 일자리’는 현대차가 노사민정협의회에서 결정된 투자협약 수정안을 거절하면서 사업 자체가 미궁으로 빠졌다.
이 같은 결과는 노동계가 강력히 반발해온 ‘임단협 유예’ 조항 삭제에서 비롯됐다. 구체적으론 ‘광주 완성차 공장이 차량 35만대를 생산할 때까지 단체협약을 유예한다’는 내용이다. 일정기간 동안 임금 등 근로자의 노동 조건을 고정하겠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이를 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이하 근참법)을 위반한 독소조항이라며 삭제를 요구했고, 시가 이를 받아들여 수정안을 만든 것이 결국 현대차가 거부하면서 최종 협약의 걸림돌이 됐다.
수정안은 ▲협약안에서 ‘35만대’ 부분 삭제(유예 기간 근거 삭제) ▲임단협 유예 유효기간은 경영안정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결정 ▲신설법인이 첫해에 합의한 노사관계 등 결정 사항의 효력은 특별한 사항이 발생하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 등이다.
현대차가 곧바로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혀 사업 자체가 원점에서 재검토되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 입장에서는 광주형 일자리의 노동 조건을 고정시키지 않으면 향후 비용 상승 등이 우려돼 신규 공장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고 전망하고 있다. 더구나 정부가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출범에 급급해 오락가락 행정을 보이는 도중에 이를 믿고 대규모 신규 공장을 짓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소형자동차 시장은 포화상태라는 게 자동차업계의 시각이다. 2017년에 140,000대 팔렸고 올해 10월까지 110,000대밖에 팔리지 않았다. 내년에 현대차가 울산에서 또 소형경차를 생산할 예정이라 현대차 입장에서는 ‘광주형 일자리’에 노동 조건이 고정되지 않으면 적자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다.
노동계 역시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광주형 일자리 합의가 노동3권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대국민 사기합의”라고 비판했다. 또한 평균 임금 하향 평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노동계가 법적 대응을 예고한 가운데 만약 노동기본권 제한 조항으로 해석될 경우 국제적 무역 분쟁으로 번질 수도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는 무역에 영향을 주는 노동기본권을 제한하지 못하도록 규정했고, 유럽연합(EU)도 한국 정부에 노동기본권을 지키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미·중 무역갈등 속에 전세계가 무역장벽을 높이는 가운데 자칫 광주형 일자리가 노동자의 임금을 낮춰 자동차를 덤핑 판매한다는 분쟁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본궤도’에 올라도 위험 요소 ‘곳곳’ 존재
문재인 정부에게 광주형 일자리는 단순한 고용 대책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광주를 ‘자동차 생산기지’, ‘자동차 밸리’로 만들겠다고 약속하면서 광주형 일자리는 여당의 호남에 대한 ‘정치적 선물'로 자리 잡았다.
만약 우여곡절 끝에 광주형 일자리가 본궤도에 오른다 해도 자칫 현대차가 경유차 생산라인 투자를 실패로 판단하고 공장 철수를 거론하기 시작한다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현대차 노조가 국민적 비난을 받는 것은 물론, 광주시와 정부도 이를 막기 위해 국민혈세를 동원해 추가 지원을 할 수밖에 없다는 어두운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히 노동계에서는 정부가 1조 원가량 정부지원금을 투자하는 것에 대해 의아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현대차가 경차 생산 공장에 들이는 비용은 530억 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돈은 광주시와 정부의 몫이다.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136조 원이나 사내유보금을 가지고 있는 현대자동차가 530억이면 얼마나 되겠느냐”며 “530억이라는 돈밖에 안 들이고, 공장을 지어주고, 또 국가에서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현대차 협상을 하는데 그 압박도 얼마나 심하겠느냐”고 정치적 사업이라고 몰아세웠다.
이어 이 인사는 “(현대차가)잘되면 손 안 대고 코 풀고, 안 되면 530억은 대통령한테 투자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냉소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