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태양을 3655시간 4846초 만에 한 바퀴 돈다. 우리가 주로 쓰는 양력인 그레고리력의 1365일보다 5시간 4846초가 길다. 이런 오차를 보정하기 위해 그레고리력에서는 남는 시간 5시간 4846초를 모아서 4년마다 하루씩 더하는 윤년을 만든다. 4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윤달, 윤일인 229일은 특별한 날로 여겨지면서 이런저런 터부도 많다.

옛 사람들은 윤달에는 송장을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탈이 없다하면서 윤달에 맞춰 수의도 마련하고, 조상의 묘를 이장하고는 했다. 결혼도 윤달에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는데, 최근에는 오히려 윤달을 꺼린다고 한다. 무슨 일을 해도 괜찮은 달이 윤달이지만 경사스러운 일은 하는 것은 아니라며 피한다고 하니 윤달에 대한 인식도 세태에 따라 바뀌는 것 같다.

윤일인 229일에 태어난 사람은 4년마다 한 번씩 생일을 맞는데 이 날이 생일인 사람은 우리나라에 통계적으로 3만 명 정도 있다고 한다. 보통 전날인 228일이나 다음 날인 31일 생일파티를 하거나 아예 음력 생일을 치른다. 요즘은 의학이 발달해서 아예 229일을 피해서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4년마다 돌아오는 윤년은 주요 행사들이 치러지는 시기와 겹치는 경우도 생긴다. 하계올림픽이 4년마다 윤년에 열리고, 4년 임기인 미국 대통령선거도 윤년에 열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윤년인 2020년에 재선에 도전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윤년인 2020년에 4년 임기의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1년 반 앞으로 다가온 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들은 벌써 선거태세로 들어갔다. 2019년 정부 예산 470조원을 들춰보면 지역개발을 위한 쪽지예산이 마블링 좋은 소고기처럼 예산안 곳곳에 박혀있다. 보통 연말이면 예산 처리로 국회가 공전되는데, 이번에는 일부 야당이 연동형비례대표제 선거제도 개편 연계를 들고 나온 것도 선거가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지난 6월에 지방선거가 끝났을 때만 해도 2020년 총선 결과는 하나마나한 것으로 여겨졌다.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해서 절대과반 의석을 달성하고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은 지리멸렬하리라는 섣부른 예측이 난무했다. 민주당은 보수세력을 절멸시킬 기회라고 봤고, 야당은 명맥이라도 유지할 수 있을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정치는 생물이고 세상은 변한다. 지금은 당시와 많은 것이 달라졌다. 대통령 지지율은 50% 선으로 떨어졌고, 이해찬 대표 취임 초기 위풍당당하던 여당은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높은 대통령 지지도에 입조심하던 야당은 정국의 고삐를 틀어쥐기 위해 조국 민정수석, 임종석 비서실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김정은 답방까지 시비를 걸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이 다가오면 다시 압도적인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분위기다. 자유한국당도 과거의 지지도를 복원하고 세를 회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런 믿음과 자신감은 두 거대 정당이 다른 야당을 따돌리고 예산안을 합의처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지금 두 당은 똑같은 꿈을 꾸고 있다. 서로가 다수당이 되는 꿈.

탄핵 이후 보수세력의 입지가 축소되면서 한국정치는 새로운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2020년 선거 결과로 새로운 정치의 일각이 드러날 것이다. 결과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기대대로 되지 않은 정당에서는 윤년에 큰일을 치른 탓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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