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양숙 여사 사칭女 문자·전화에 속았다 
A씨에게 4억5000만 원 송금, 사립학교·산하기관에 두 자녀 취업  
윤장현 “나라가 뒤집힐 수도 있겠구나 생각 들었다”

윤장현 전 광주시장 [뉴시스]
윤장현 전 광주시장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전남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6일 영부인을 사칭한 여성 A(49·구속)씨의 자녀 2명이 채용될 수 있게 도와준 혐의(직권남용·업무 방해 등)로 윤장현 전 광주시장과 학교 관계자 등 총 5명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윤 전 시장은 A씨의 사기행각에 감쪽같이 속아 사기를 당한 피해자임과 동시에 취업을 청탁해 피의자가 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사칭하고 윤장현 전 시장에게 사기를 친 40대 여성 A씨는 휴대전화 2대를 이용해 1인2역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4일 전남경찰청에 따르면 윤 전 시장을 속여 돈을 챙긴 A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휴대전화 판매점에서 새로 개통한 휴대전화 1대를 이용해 권양숙 여사를 사칭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혼외자 얘기 꺼내며 사기

 

A씨는 새로 개통한 휴대전화로 지난해 12월께 윤 전 시장 등 지역 유력인사들에게 ‘권양숙 여사다. 딸의 사업이 어려우니 5억 원을 빌려 달라. 빠른 시일 내 갚겠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윤 전 시장은 문자메시지 발송 번호로 1차례 확인 전화를 걸었으나,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A씨에 속아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4억5000만 원을 A씨에게 송금했다.

윤 전 시장이 자신을 말을 믿기 시작하자 A씨는 또 다른 사기 행각을 벌였다. 같은 해 12월 A씨는 사칭에 이용한 휴대전화로 ‘노 전 대통령의 혼외 남매가 광주에 살고 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도와 달라’며 윤 전 시장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어 직접 시장 집무실을 찾아가 윤 전 시장에게 자신을 ‘혼외 남매의 보호자’로 소개했다.

A씨는 ‘혼외자이기 때문에 남매가 대학 졸업 이후 특별한 경제적 지원 없이 어렵게 살고 있다. 취업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A씨는 윤 전 시장에게 자신의 두 자녀를 노 전 대통령의 혼외자인 것처럼 꾸민 뒤 남매의 인적사항을 알려줬다.

또 자신이 본래 쓰던 휴대전화 번호를 윤 전 시장에게 가르쳐 준 뒤 취업청탁과 관련한 연락을 주고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A씨의 아들은 광주시의 산하기관 김대중컨벤션센터(DJ센터) 임시직으로, 딸은 광주의 한 사립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취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지난달 30일 시 산하기관과 학교에 대해 압수수색을 펼쳐 컴퓨터와 관련 서류 등을 분석하고 있다.

또 지난 3일 윤 전 시장을 직권남용·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현재 A씨는 사기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A씨는 범죄 행각을 벌이면서 대통령도 사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일 지역 교육계 등에 따르면 A씨는 정치인과 지역 유력 인사들로부터 돈을 받아내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까지 사칭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실제 A씨는 자신의 딸을 취직시켜 준 학교 관계자 등에게 “대통령이다. 권 여사를 도와주었으면 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발송해 자신을 믿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많은 정치인들이 휴대전화에 찍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왔지만 A씨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믿게 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보이스피싱으로 생각하고 대응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윤 전 시장만은 예외였다. 

지난 5일 뉴스1은 윤장현 전 시장과의 단독 인터뷰를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윤 전 시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혼외자 이야기를 듣는 순간 부들부들 떨렸다. 온몸이 얼어붙었다. 나라가 뒤집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시장은 ‘인간 노무현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입을 닫았다고 했다.

 

공천 대가 의심하는 검찰
윤 전 시장 “공천 염두에 둔 것 아냐”

 

윤 전 시장은 인터뷰에서 A씨의 문자를 받은 뒤 확인 전화를 하자 A씨가 권 여사 생세를 하면서 “지인을 보낼 테니 만나보라”고 했고 실제 지인 행세를 한 A씨가 시장실을 찾아와 “노 전 대통령의 혼외자뿐만 아니라 권 여사의 딸(노정연)도 사업상 어려움을 겪어 중국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며 윤 전 시장을 속였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을 지켜야겠다’라고 생각한 윤 전 시장은 앞뒤 상황파악을 하지도 않은채 돈을 구해 보내고 A씨의 두 자녀 취업을 알선했다. 

문제는 검찰이 윤 전 시장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광주지검은 윤 전 시장이 6·13 지방선거 광주시장 더불어민주당 내 경선과 관련해 공천을 염두에 두고 돈을 빌려줬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하지만 윤 전 시장은 인터뷰에서 “‘공천’을 염두에 뒀다면 계좌추적이 가능한 금융권 대출을 받아 송금했겠느냐. 상식적인 문제”라면서 “자랑스러운 광주 역사에서 광주시장이 (검찰)포토라인에 선다는 자체가 시민들에게 죄송하고 부끄럽다”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봉사를 위해 출국할 때는 피해자 신분이었는데 갑자기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돼 참담하다”며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충격을 많이 받은 상태로 조만간 검찰에 나가 소명할 부분은 소명하고 공인으로서 책임질 부분은 책임지겠다”라고 밝혔다. 

윤 전 시장은 “부끄럽다” “참담하다” “안타깝다”라는 말을 하면서 괴로운 심정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시장은 “시장 재임 시절 두 딸을 시집보냈을 때도 외부에 전혀 알리지 않았고 경제적인 도움도 주지 못했다”면서 “그런데 바보같은 내 행동이 알려져 아이들한테 고개를 들 수 없고 너무 미안하다”라고 괴로워 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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