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국인 진료 ‘하겠다’ vs ‘하지 말라’

제주 녹지국제병원 전경 [뉴시스]
제주 녹지국제병원 전경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 의료 관광객만을 진료하는 조건으로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허가한다”고 밝혔다. 진료과목은 성형외과와 피부과, 내과, 가정의학과 등 4개 과로 제한되며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 급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개원 허가를 받은 병원 측은 물론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의 반발에 부딪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복지부 빠지고 제주도와 녹지병원 측 법정 다툼 예고
30개 시민단체들, ‘주민소환’ 등 원 지사 퇴진 운동 선언

 

국내 첫 영리병원인 제주 녹지국제병원의 조건부 개원을 두고 제주도와 중국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 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제주도는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내국인의 진료를 거부하는 것이 문제 없다는 입장이지만, 녹지병원 측이 사업 허가 당시와 말이 달라졌다고 반발하기 때문이다. 
양측 모두 보건복지부의 판단을 근거로 내국인 진료 여부에 대한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정작 복지부는 한 발 빼는 모양새여서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의료법이 맞나
특별법이 맞나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 5일 기자회견 당시 “향후 녹지국제병원의 운영 상황을 철저하게 관리·감독해 조건부 개설허가 취지 및 목적을 위반할 경우 강력하게 처분하겠다”면서 영리병원의 불법적인 내국인 진료 행위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하지만 의료법 15조에 따르면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즉, 내국인이 제주 녹지병원을 찾아 치료해 달라고 할 경우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원 지사는 “그 점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보건복지부에 책임 있는 유권해석을 의뢰했고 지난 1월에 외국인 의료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특별법에 명시하면 그것을 근거로 내국인 진료를 거부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녹지병원 측은 다음 날인 지난 6일 오후 늦게 제주도에 공문을 보내 반발했다. 

공문에서 녹지병원은 “외국인 전용으로 개설 허가 결정을 한 점에 대해 극도의 유감을 표한다”면서 “조건부 허가 사항에 대해서는 법률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대응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2015년 허가 당시 복지부가 내국인은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는 못하지만 진료는 가능하다고 밝혀 왔다”면서 “사업자의 입장을 묵살하고 이제 와서 외국인 전용으로 개원을 허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 2월에도 녹지병원은 제주도에 공문을 보내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신뢰와 정책의 일관성을 고려해서라도 내국인까지 포함하는 개원 허가를 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와 녹지국제병원 측 모두 복지부의 판단을 근거로 내세워 내국인 진료에 대한 엇갈린 주장을 내놓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복지부는 영리병원 논란에서 한발 빼는 모습이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지난 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이번 영리병원 허가는 제주도특별법에 따라 발생한 특수한 경우”라면서 “문재인 정부는 영리병원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제주도가 문서상으로 3번의 조언을 요청했고 복지부는 ‘개설권자가 책임감 있게 결정하라’고 답했다. 녹지국제병원은 사업계획이 이미 승인됐고 허가권자가 제주도이기 때문에 제재를 가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사실상 공을 제주도로 넘겼다. 

강영진 제주도 공보관도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을 바탕으로 조건부 개원을 허가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조만간 영리병원의 내국인 진료 제한을 골자로 하는 제주도특별법을 개정할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결국 내국인 진료에 대한 제주도와 녹지병원 측의 입장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복지부가 공을 제주도에 넘기면서 법적 다툼을 피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제주도민 영리병원
허가한 적 없다“

 

이런 가운데 시민단체는 영리병원 허가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와 더불어 허가권자인 원희룡 제주지사에 대한 퇴진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제주 도내 30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으로 구성된 의료영리화 저지와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운동본부)는 7일 기자회견을 열어 “영리병원을 허가한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즉각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원희룡 지사의 영리병원 개설 허가에 대해 국민적 분노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면서 “개설 허가를 취소하든가, 도지사 자리에서 떠나든가 선택해 달라”고 밝혔다.

김덕종 민주노총 제주본부장은 모두 발언에서 “우리는 지난 5일 오후 2시 원희룡 지사가 영리병원 허용 발표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이 사회에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순간을 확인했다”며 “공론화위를 통해서 더욱 민주주의 제도를 보강하려 했던 그간의 노력이 원 지사가 영리병원을 허용하면서 한순간에 민주주의가 파괴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원 지사는)한국 사회가 지키려 했던 것을 정면으로 거부해 도지사로 인정할 수 없다”며 “14년간 이어진 영리병원 저지 운동은 퇴진 운동으로 도민 뜻 받들어 더욱 강도 높게 추진할 것이다”고 했다

고은영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도 “굉장히 참담한 일이 일어났다. 숙의민주주의를 통해 도민 의견이 모였는데 (원 지사가)깡그리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또 “(영리병원은)제주도가 허가하는 게 아니다. 제주도민은 영리병원을 허가한 적이 없다”면서 “언론 보도에는 허가권자가 제주도라고 표현돼 원희룡 제주지사가 뒤로 빠진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 이후 제주도청 별관 민원실을 찾아 녹지국제병원 허가와 관련된 정보공개청구를 신청했다.

운동본부는 이달 15일부터 매주 토요일 ‘영리병원 철회, 원희룡 지사 퇴진 촉구’ 촛불문화제를 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과 함께 제주특별법 및 경제자유구역법에 들어 있는 영리병원 조항을 입법적으로 철회하는 부분도 논의할 계획이다.

아울러 공론조사 과정에서 투입된 예산 3억6000만 원에 대한 구상권 청구 방안도 함께 검토하기로 했다.

강호진 제주주민자치연대 대표는 “지방자치단체장의 결정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을 경우 투표를 통해 제재할 수 있는 ‘주민소환’ 제도도 적극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주민소환은 단체장 임기 개시일로 1년이 지날 경우에 진행할 수 있어, 운동본부는 내부검토를 거쳐 내년 7월쯤 실천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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