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 [뉴시스]
고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이 지난 7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 소재 건물에서 투신해 숨졌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이 전 사령관이 이날 오후 2시 48분께 지인 사무실이 있는 오피스텔 건물에서 투신해 사망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는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신은 경찰병원으로 옮겨졌다.

 

검찰…지난달 29일 구속영장 신청, 지난 3일 법원서 기각

전역 후 박지만씨가 회장인 EG그룹 사외이사로 선임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이 평소 주변에 “내가 모두 책임지겠다”고 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사령관의 변호인인 임천영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는 이 전 사령관의 사망 직후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기자들에게 “평소 이 사건 관련해서 ‘내가 모두 책임지겠다’고 지인들에게 자주 말했었다”라며 “억울함과 부당함 때문에 불안에 떨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 전 사령관이 남긴 A4용지 2장의 유서에도 이와 유사한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점 부끄럼 없는

임무수행 했다”

 

소방 당국은 오후 2시 53분께 해당 건물에서 신고를 접수 받았고, 오후 3시 현장에 도착했으나 사망 징후가 있어 경찰에 사건을 인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사령관은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 등 민간인 사찰을 지시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사령관 등은 지난 2014년 4월부터 7월까지 기무사 대원들에게 세월호 유가족의 정치성향 등 동향과 개인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사찰하게 하고, 경찰청 정보국으로부터 진보단체 집회 계획을 수집해 재향군인회에 전달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지난달 27일 이 전 사령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에 대해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당시 이 전 사령관은 “당시 군의 병력 및 장비가 대거 투입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부대 및 부대원들은 최선을 다해서 임무 수행을 했다. 한 점 부끄럼 없는 임무수행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 사찰도 임무수행의 일환인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당시 부대를 지휘했던 지휘관으로서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구체적인 대답은 하지 않았다. 이어 검찰은 보강수사를 거쳐 지난달 29일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지난 3일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앞서 기무사 의혹을 수사한 군 특별수사단은 지난 6일 기무사가 세월호 참사 당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민간인에 대한 무분별한 사찰을 했다는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수단에 따르면 기무사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6·4 지방선거 등 주요 정치 일정을 앞두고 세월호 정국으로 당시 박근혜정부에 불리하게 여론이 조성되자 이를 조기 전환하기 위한 돌파구 마련과 대통령 지지율 회복을 위해 관련 TF를 구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기무사는 세월호 관련 청와대 등 상부 관심사항을 지속적으로 파악해 세월호 참사 이후 수차례에 걸쳐 청와대 외교안보라인 주요직위자 등에게 유가족 사찰 정보 등 세월호 관련 현안을 보고하고, 후속 조치를 지시받아 움직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수단은 소강원(소장) 전 610부대장, 김병철(준장) 전 310 부대장, 손모(대령) 세월호TF 현장지원팀장 등 3명을 구속기소하고, 기우진(준장) 전 유병언 검거TF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민간인 신분이 된 이 전 사령관 등 피의자에 대한 수사는 서울중앙지검과 공조하기로 했다.

 

육사 37기로 박지만 동기

박근혜 정부 시절 실세

 

이 전 사령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씨의 육사 37기 동기생로 잘 알려져 있다. 육사 37기는 다른 기수에 비해 군단장 급인 중장 이상 진급자가 많았던 기수로 군내 선두그룹이었다.

이 전 사령관은 육사 때부터 박지만씨와 끈끈한 관계로 알려졌으며, 중장 진급 이후 2013년 기무사령관으로 전격 발탁되는 등 박근혜 정부 시절 군 실세로 평가 받았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4년 10월 사령관 부임 후 1년 만에 갑작스럽게 3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보직 이동했다. 일각에서는 이 전 사령관이 당시 각종 군내 사고를 제때 보고하지 못했고, 군 내부 문제에 소홀한 대신 대외 활동에 치중해 경질됐다는 관측도 있었다.

야전 경험이 부족했던 이 전 사령관은 야전 경험을 쌓고 대장으로 진급할 것이란 전망도 있었으나 더는 군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고 전역했다. 그는 전역 후 박지만씨가 회장인 EG그룹의 사외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민간인 신분인 이 전 사령관이 다시 세간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정권이 바뀌고 이전 정부시절 기무사의 각종 불법행위가 불거지면서부터다. 기무사에 대한 전방위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 전 사령관도 수사 선상에 올랐다.

이 전 사령관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정확한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검찰 수사과정에서 혐의를 줄곧 부인했던 만큼 군인으로서의 명예 손상과 수사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컸을 것이란 분석이다.

한때나마 육사 37기 출신의 전성기를 열었던 이 전 사령관의 투신 사망 소식에 군내부에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군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사령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군내 고위직을 역임한 인물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에 대해서는 애석하고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명감과 명예를 중요시하는 군인이 충성심에서 비롯한 행위로 검찰 수사를 받은데 대해 크나큰 상실감과 굴욕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극단적인 선택

과거 사례는?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부 사령관이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가운데 과거 유사사례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 검찰 수사 중 피의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는 지난해에도 발생한 바 있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이명박정부 시절 국가정보원(국정원) 댓글 수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던 고 변창훈 당시 서울고검 검사가 검찰 수사 중 투신했다.

변 검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리는 날 변호인과 상담을 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의 한 법무법인 사무실에 들어갔다. 그는 잠시 화장실을 간다며 자리를 비운 뒤 투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이후 치러진 장례식에서는 문무일 검찰총장이 조문을 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변 검사뿐만 아니라 당시 국정원 수사 과정에서는 또 다른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국정원 내 ‘현안 태스크포스(TF)’ 소속으로 알려진 정모 변호사는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지난해 10월 강원 춘천에서 스스로 숨진 채 발견된 바 있다.

특별수사 사건에서 수사 선상에 올랐던 유명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국민에게 충격을 준 사례는 올해에도 있었다. 지난 7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특별검사팀의 조사 대상이었던 고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은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

오두환 기자 od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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