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임을 다할 뿐인데…”

국민은행 강정원 행장이 조심스럽다.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를 꽂는다. 자신이 해명하면 할수록 국민은행 사활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특히 강 행장이 금감원 회장 사퇴와 관련 외압을 했다는 발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이에 고강도의 조사가 착수됐다. 금감원은 사실규명을 통해 오명을 벗겠다는 입장이지만, 강 행장에게 초점이 맞춰진 조사라는 것이 금융계 안팎의 시선이다. 강 행장이 사건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해명을 하는 등 꼬리를 내렸음에도 이는 때 늦은 후회에 불과했다. 이후에도 파문은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금감원의 자료가 유출되는 등 강 행장을 쪼이는 모습이 역력하다. 때문에 강 행장의 주름이 깊어진다. 강정원 행장의 행보를 따라가본다.

리딩뱅크의 수장이자 KB금융그룹의 회장이던 강정원 행장이 관치금융 논란 속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국민은행이 대규모 임원인사를 실시한데 이어 관치금융을 강력 부인하는 등 안팎으로 적극적인 진화에 나섰지만 검사정보 유출 문제가 불거지면서 관치금융 논란은 다시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강 행장이 외부적으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자신의 KB금융 회장 후보 사퇴과정에서 정부의 어떠한 외압도 없었다고 밝혔지만 사태는 수습되지 않는 상황이다.

더욱이 강 행장이 간담회에서 감독당국의 검사를 최대한 충실히 받을 예정이며 KB금융 사외이사 제도도 최대한 대대적으로 손질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지만, 감독당국을 의식한 발언들이라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주 국민은행의 사전검사 수검 일보 유출에 대해 수사 의뢰를 검토하겠다며 강력 반발하며 불편한 심기를 보였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이 작성한 ‘수검일보’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달 사전검사 과정에서 은행의 업무용 PC 13대를 징수 또는 봉인했다.

강 행장 전담 운전기사 2명을 심야에 두 차례에 걸쳐 2시간45분 동안 조사하고 차량 운행일지와 주유카드 사용내역을 제출받았다. 조담 KB금융 이사회 의장이 재직 중인 전남대와 국민은행의 연관성까지 조사했다. 당초 금감원이 해명한 것과 차이가 있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관치금융을 노골화했고 금감원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지적이다.

국민은행 고위 관계자는 “국민은행의 외압 논란 해명은 조직을 안정시키고 정상적인 영업을 수행하기 위한 방편이 깔려 있다”며 “아직까지 영업에 영향을 주지는 않고 있지만 영업 위축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감독당국이 지난 14일 착수한 KB금융과 국민은행에 대한 종합검사를 계기로 강 행장 등 현 경영진을 노골적으로 교체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온다.

강 행장이 종합검사 결과 일정 수준 이상의 징계를 받을 경우, 다시 한 번 거취와 관련된 결단을 내려야 할 처지에 몰릴 수도 있기 때문.

강 행장은 지난해 12월 31일 회장 내정자 직에서 사퇴했지만, 국민은행장직과 KB지주 회장 직무대행자직에 대해서는 “주어진 기간 동안 소임을 다하겠다”고 밝혀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강 행장은 특히 새로운 방식으로 치러질 회장 선임 절차를 통해 회장직에 재도전할지 여부와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언급을 피해 여운을 남긴 상태다. 하지만 이미 감독당국의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 행장은 “차기 회장 인선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고 김 사장은 “언론에서 강 행장과 나를 자꾸 싸움 붙여선 안 된다”고 진화에 나선 것.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3년의 임기가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김 전 사장을 전격 경질함으로써 당국인 금융 감독과 갈등의 골이 깊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같은 예측이 들어맞을 경우 KB금융지주의 앞날은 먹구름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당장 외환은행과 증권사 인수 작업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KB금융지주는 올 들어 7일까지 외국인 순매도 상위 종목에서 1위를 차지하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KB금융지주 측은 이번 인사가 당국인 금융감독과 대립각이 있는 것처럼 비쳐지거나 보복성 인사로 비쳐지는 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입장이다.


국민은행 어찌하오리까?

사실 강 행장의 행보가 눈총을 받은 것은 지난 연말 KB회장 대행으로 선임되면서 부터다. 당시에도 잡음은 끊임없었다.

취임 직후 김중회 지주 사장을 전격 경질했다. KB금융지주 측은 단순한 보직변경이라는 입장이나, 금융감독원 출신인 김 사장이 자회사 임원으로 사실상 좌천됐다는 점에서 보복성 인사라는 시각이 없지 않다.

KB금융지주는 8일 임원인사를 통해 김 사장을 면직하고 자회사인 KB자산운용 부회장으로 임명했다. KB금융지주는 또 부사장급인 준법감시인을 신설, 이민호 전 국민은행 상임법률고문을 임명하고 김영윤 홍보부장을 상무로 승진시키는 등 강 행장의 친정체제를 강화했다.

이에 은행권 전반은 케이비 사태가 금융당국이 국내 은행권의 지배구조를 전면 개편하려는 신호탄이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KB사태는 정부가 은행권 전반의 변화를 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금융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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