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실행이 성공의 관건이다”

청풍 부회장 윤정씨는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라”는 말을 아버지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재계에서 손꼽히는 대다수 기업들은 대를 이어 내려오는 신뢰를 자랑한다. 그리고 그 경영자들에게는 오랫동안 역동의 시대를 거쳐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과 동시에 자녀를 강하고 훌륭하게 키우는 확고한 원칙이 있다. 부를 일구는 것보다 부를 다스리는 법을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조직을 관리하는 법을 학습시킨다. 그렇다면 ‘재계의 고수’인 창업주들은 그들의 자녀에게 어떤 교육법을 선사할까. 지난해 출간된 <명문 기업가의 자식농사><밀리언하우스>는 이런 물음에 대해 해답을 제시한다. 이에 [일요서울]은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자녀교육법을 필두로 한국 최고 경영인들의 자식 농사법을 알아본다. 이번호는 청풍 최진순 회장의 자식 농사법이다.

1944년, 김포공항 국제선 대합실에선 어학연수를 떠나려는 딸과 이를 배웅하는 아버지 간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버지, 더 이상 못 넣겠어”, “무슨소리, 가방을 다 채우려면 멀었다. 좀 더 채워보자”, “이것 때문에 다른 생활용품은 하나도 못 넣게 됐잖아요”, “그래도 유학비용 대신에 이것을 팔고 살아야 하니까, 든든히 넣어둬라”

결국 딸은 한 손에 대학 생활 동안 아르바이트를 통해 모은 돈 1000만원과 다른 손엔 여행용 가방에 한가득 들어있는 공기청정기를 들고 캐나다 벤쿠버행 비행기에 올랐다.

대학을 갓 졸업한 22세의 이 여성은 훗날 중소기업으로서는 유일한 국내 대표적인 공기청정기 업체인 청풍을 맡게 된 최윤정 부회장(현재 남편인 정완균씨가 대표이사에 선임)이다. 물론 차량용 공기청정기를 유학비용 대신으로 쓰라고 우격다짐으로 떠맡기던 독불장군 아버지는 청풍의 설립자 최진순 회장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가방에 한 100여 개 집어넣었나. 여하튼 무척 많았어요. 그렇게 공기청정기를 가져가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는데, 이후로도 아버지는 생활비를 보내는 대신에 으레 공기청정기를 보내셨죠” “얼마나 팔렸냐고요? 글쎄요. 아버님께서 공기청정기를 보내신 것은 많이 팔라는 의미보단 다른 숨은 뜻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윤정 씨가 말한 ‘숨은 뜻’은 아버지 최진순 회장의 독특한 자녀교육법을 알고 나면 금세 이해할 수 있다.

최진순 회장은 슬하에 네 자녀를 두고 있다. 모두가 딸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딸들에게 용돈 한번 제대로 건넨 적이 없다. 딸들은 여느 여대생처럼 예쁜 옷도 입고 싶고 멋도 부리고 싶었지만 호랑이 아버지의 지갑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중소기업이지만 공기청정기 시장에서 1·2위를 다투는 청풍을 설립한 어엿한 기업대표가 돈이 없어서 자녀들에게 용돈을 주지 않았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소리다. 아버지 최 회장은 딸들에게 자립정신과 돈의 소중함을 몸 소 체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나름대로 고안한 고육책이었던 것이다. 특히 윤정 씨에게는 더 심했다. 윤정 씨는 대학 입학 후부터 아버지에게서 용돈은 커녕 심지어 학비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다. 아니 아예 돈을 받지 않았다. 청소년 시절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대학생이 되면 이것저것하고 싶고, 사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이런 고집스러운 자녀교육 원칙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재미난 것은 셋째 딸이던 윤정씨 역시 아버지의 의중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이 굳이 아버지에게 용돈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

“매 학기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해결했어요. 용돈은 4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았고 과외 아르바이트와 방학에는 아버지 회사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며 충당했습니다”

그 아버지의 그 딸인 셈. 윤정씨는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라”는 말을 아버지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단순히 듣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해결해 나갔다. 덕분에 대학에 들어가서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데 굳이 아버지에게 손을 벌릴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학비를 장학금으로 대처하기 위해 “공부도 그만큼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그래서 그는 어학연수를 떠날 때도 아버지로부터 한 푼도 지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 한 아름 가득 차량용 공기청정기를 들고 온 아버지의 ‘예상치 못한 행동’을 보고 유학생활에 대한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고 한다.


‘원하는 것’아닌 ‘필요한 것’을 주라

사실 자녀들에게 자립정신과 돈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최진순 회장의 자녀교육 원칙은 그가 살아온 파란만장한 궤적을 쫓아보면 쉽게 수긍이 간다.

최진순 회장은 과거 아버지의 섬유사업을 물려받아 평탄하게 사업을 펼쳐 나간 촉망받은 젊은 사업가였다. 그가 경영자의 길로 들어선 시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아버지가 일본에서 수입한 실을 부산에서 강화로 싣고 오면 실을 팔고 난 판매대금을 수금하는 것이 최 회장의 업무였다. ‘아버지’라는 든든한 거래처 덕분에 수익도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 거래처인 섬유공장과 인연을 맺게 됐고 부도난 섬유공장을 실 값을 대신하여 인수하면서 직접 사업가로 뛰어들게 됐다.

이때가 최진순 회장이 대학생이던 시절이었다. 그렇기에 딸을 혹독하게 가르쳤다.

하지만 딸 윤정 씨의 교육원칙은 아버지의 엄격한 그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아버님은 저희를 매우 엄하게 키우셨죠. 당시 아버님은 무엇을 시키든 명령조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 당시와 달라요.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와 자식 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에요”

그는 앞으로도 자신의 입장에서 딸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을 생각이다. 대신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는 마음가짐은 갖도록 가르칠 생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실례합니다’라는 말에 너무 인색한 것 같아요. 아이에게 이런 말들을 자주 하도록 가르쳤어요. 거의 습관이 되도록 했죠. 이런 말을 자주 하면 훗날에도 못된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은 때문이죠”

한번은 조카에게 얻어맞은 딸아이가 울면서 “고맙습니다”라고 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벌어지기도 했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ilysun.co.kr
[자료제공:밀리언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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