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사직을 구한 불멸의 명신 이제현

 

이래저래 방신우를 설득할 묘안을 떠올리고 있던 어느 날, 이제현은 해월이가 선물로 장만해 준 질 좋은 보이차를 들고 방신우의 집을 찾았다.

방신우는 이제현을 방안으로 맞아들인 후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익재 공께서는 무슨 일로 이 누옥(陋屋)을 다 찾아 주셨습니까?”

“평장정사님께 도움을 청할 일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 무슨 부탁의 말씀이?”

“유청신과 오잠의 입성책동 주장이 원 조정에서 점점 공론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유청신은 충숙왕이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고 무고를 한 간신배이며, 오잠은 항상 충렬·충선 부자를 이간시키고 어진 신하들을 모함하여 살해한 극악무도한 자입니다. 이런 개와 돼지만도 못한 소인배들이 원 황제의 성총을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이번의 입성책동은 그야말로 고려의 존망과 관련된 중차대한 사건입니다. 부디 역적들의 흉악함과 적폐를 소상하게 황제께 상주해서 누란의 위기에 빠진 고려를 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신우는 입장이 매우 난처하게 되었다. 고려는 자신의 고국이요, 원나라는 자신이 녹을 먹고 있는 나라가 아닌가. 두 나라 사이에 국권침탈전이 일어나면, 고국을 위해서는 마땅히 입성책동 저지 대열에 가담해야 하겠지만, 원나라 신하의 입장에서는 입성책동의 부당성을 쉽게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방신우는 즉답을 회피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원나라는 남의 나라를 자국의 성으로 편입시키려는 불의의 입장이고, 고려는 자기 나라를 지키려는 정의의 입장입니다. 나는 우선 수원황태후님께 이 점을 분명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제현은 방신우의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듣고 난 뒤 자신감이 생겨 말했다.

“평장정사님께서 황실을 설득해 주신다면 입성책동을 분쇄하는 일은 반쯤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고려 조정에서도 평장정사님의 충절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방신우의 집을 나서는 이제현의 발걸음은 한층 가벼웠다. 그러나 일모도원(日暮途遠). 이제현의 마음은 바쁘기만 했다.

고려인 실력자에 대한 협조 요청을 끝낸 이제현은 본격적인 원나라 관리들에 대한 공략에 나섰다. 이를 위해 그는 지난날 만권당에서 교류한 염복, 요수, 조맹부, 원명선, 우집 등을 일일이 찾아가서 원나라 조정의 실력자들을 소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이제현의 지극한 충정은 원나라의 대학자들을 움직였다. 이제현이 아미산과 보타산 여행을 할 때 축하시를 써주고 함께 동행했던 그들이었다. 그들이 이제현을 돕는 일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순풍에 돛단 격’이라는 말은 이럴 때 하는 말이었다. 원나라 대학자들의 소개장은 이제현을 고려 시중 벼슬 이상가는 비중 있는 중신으로 만들었다. 이제현은 일약 고려 조정을 대표하는 현자(賢者)가 된 것이다.

당시 원나라 승상은 배주(拜住)였다. 그가 원나라 영종과 나눈 대화록이 전하는 바를 보자.

“지금 우리 원나라에 당나라의 위징과 같이 간언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소?”

“그야 황제가 어떤 황제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니겠사옵니까? 둥근 잔에 물을 담으면 둥글게 되고, 네모난 잔에 물을 담으면 네모난 모양이 되지요. 당태종에게는 바른 말을 받아 들일 만한 도량이 있었기 때문에 위징이 목숨을 걸고 진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이옵니다.”

이제현은 석학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고 배주에 대해 몇 가지 윤곽을 포착할 수 있었다.

첫째, 배주는 원나라 명문가의 후예라는 점이며, 둘째, 학문이 박학다식할 뿐만 아니라 병서에도 무불통달(無不通達)하다는 점이며, 셋째, 물욕이 없고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하여 관원들과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는 점 등이었다.

이제현은 천하의 대학자 조맹부의 소개장을 받아 쥐고 먼저 배주를 찾아갔다. 고려의 풋내기 정치인이 언감생심 원나라 승상을 개인적으로 만난 것은 분명히 대사건이었다.

배주는 저녁 식사 후 막 독서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약소국의 젊은 선비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사랑방으로 안내받은 이제현은 머리를 조아려 큰 절을 올렸다.

“상국의 승상 어른을 뵙게 되어 일신의 광영입니다.”

배주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이제현의 손을 반갑게 붙잡았다.

“내 익재 공의 명망은 자앙(子昻, 조맹부의 호)을 통해 들어서 잘 알고 있소이다. 일전에 공이 올린 충선왕의 방환을 청하는 글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소이다.”

“지난 번 충선왕의 방환을 힘써 주셔서 고려 신료들을 대신하여 감사드립니다.”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걸요. 한 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고려의 대문호를 보니 마치 십년지기를 보는 것 같소이다.”

이제현은 배주의 공손한 태도에 적이 마음이 놓여 본론으로 들어갔다.

“승상께서는 고려가 대대로 신하국으로서의 예절을 잃지 않아 세조황제께서 황녀를 허가하게 하였으며 동쪽의 울타리로 현저한 공을 세운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고려를 사위의 나라로 삼은 것은 세조황제의 신성한 계책이었지요.”

“사실 원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고려가 배반하지 않으면 되지 그 밖에 더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고려 국왕을 통한 간접적인 통치방식이 입성(立省)을 통한 직접적인 통치방식보다 원나라 국익에 합당한 줄 알고 있습니다.”

“나도 익재 공과 생각이 같소이다.”

“만약 원나라가 고려를 일개 성으로 편입할 경우 고려의 관민들은 대몽항쟁 이상으로 반발할 것이 명약관화합니다.”

“고려의 뜻있는 관리들 상당수가 입성을 반대하고 있으니, 본인도 굳이 입성을 하여 고려의 반원세력이 성장할 빌미를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오.”

“승상 어른의 생각을 알고 나니 소인의 마음이 놓입니다.”

이제현은 배주의 말을 듣고 눈앞에 가려 있던 검은 구름이 일시에 걷히는 것 같은 상쾌감을 느꼈다.

이제현과 배주, 두 사람은 간담상조(肝膽相照)하는 사이가 되었다. 비록 나라가 다르고 처지가 상반되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알아주는 대장부끼리의 참된 우정을 서로 간에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승상 배주는 체구는 비록 왜소하여도, 그 기상만은 중원 대륙을 뒤덮고도 남을 만큼 호기로웠다. 이제현은 그가 과연 듣던 대로 도량이 큰 인물임을 실감했다.

‘앞으로 원나라 조정에 배주 같은 승상들이 줄지어 나온다면 우리나라 자주 독립의 꿈은 어떻게 될까…….’

이것을 가지고 ‘역설의 미학’이라 할 수 있을까. 이제현은 한편으로는 배주 승상이 고맙고 한편으로는 그가 두렵기도 하였다. 그날 밤 내내 이제현은 전전반측(輾轉反側)했다. 실낱같은 희망과 막연한 걱정이 이제현의 뇌리를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며칠 후, 이제현은 집현전대학사상의중서성사(集賢殿大學士商議中書省事)인 왕약(王約)의 자택을 찾았다.

왕약은 이제현이 온다는 전갈을 받고 뜰아래까지 내려와 반갑게 맞이하며 말했다.

“익재 공을 흠모해 온 지 오래됐는데, 오늘에야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기쁘기 한량없소이다.”

이제현은 두 손을 읍하고 대답했다.

“이렇게 환대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만권당 출신 이제현이라 합니다.”

왕약은 이제현을 사랑채로 안내하여 간단한 주안상을 베풀며 말했다.

“익재 공께서 만권당 시절 쌓은 명성과 학문은 잘 알고 있소이다. 공께서는 문장에 밝을 뿐만 아니라 외교적 수완에도 뛰어나서 원나라 정치가들 중에는 공을 흠모하는 자들이 많이 있소이다.”

“지나치신 칭송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조맹부 스승님의 천거로 왕대인과 같은 고현(高賢)을 뵙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으니, 대인께서는 고려를 위해서 많은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경륜이 부족한 내가 어찌 고려 조정에 도움을 드릴만한 지혜가 있으리까.”

“지금 상국의 조정 일각에서는 고려를 기어이 병합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는 대국의 풍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왕약은 겸연쩍게 대답했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불온한 무리들이 날뛰는 것일 게요.”

의외의 대답에 자신감을 얻은 이제현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어 완곡히 지적했다.

“고려의 동쪽 바다 건너에는 왜국이 있고, 고려의 북쪽 변방에는 거란족과 여진족의 유민들이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습니다. 옛말에 ‘사슴을 쫓는 자는 태산을 보지 못한다(逐鹿者 目不見太山 축록자 목불견태산)’는 말이 있는데, 상국이 그와 같은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따라서 고려를 원의 행성으로 만드는 것은 백해(百害)는 있어도 일리(一利)는 없는, 득보다는 실이 많은 하책(下策)이라 생각합니다.”

왕약이 소리를 크게 내어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나도 고려를 성으로 편입시키면 관리들의 녹봉과 군사의 주둔 비용 등 재정 출혈이 많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소이다.”

“제세(濟世)의 경륜을 가지고 계신 대인께서는 고려가 상국의 동쪽 울타리를 견고히 지킬 수 있도록 도움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알기로는 ‘인자(仁者)는 사람을 살리는 것으로써 덕(德)을 삼고, 의자(義者)는 일을 순조롭게 해결하는 것으로써 의(宜)를 삼는다’고 들었소이다. 내 비록 인자는 못되더라도 의자가 되기 위해서라도 익제 공과의 소중한 인연을 지켜나갈 생각이오.”

이처럼 이제현의 입성책동을 분쇄하기 위한 노력은 원나라 조정 대신들과 선비들을 감동시켰다. 이후에도 입성책동에 찬성하는 원나라 관리들을 설득하기 위한 사전 정비작업은 한 달 가까이 진행되었다. 파란으로 얼룩진 갑자년 한 해도 저물어 달력은 을축년 새해를 며칠 남기지 않고 있었다.

세모(歲暮)에 이제현은 만권당의 서재에 있었다. 때마침 함박눈이 소담스럽게 정원에 내리고 있었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입성책동의 부당함을 알리는 상소문은 올해를 넘기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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