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트] 저자 김유열 / 출판사 쌤앤파커스

[일요서울 | 김정아 기자] 무엇이든 쉽게 구하고 넘쳐나는 시대에 비우고 지우는 삶을 실천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결핍의 시대에 풍요가 정답이었다면 넘쳐나는 시대에 조금 덜어 놓을 줄 아는 자세가 정답이 아닐까. 오히려 비우고 지우는 삶은 창조하는 일보다 쉽다. 또 삶은 지웠을 때만 가능한 가늠하기 어려운 형태로 채워져 나간다. 이러한 비우고 지운다는 의미를 지닌 ‘딜리트’라는 강력한 키워드로 우리의 삶과 비즈니스를 어떻게 진보시켰는지 역사, 철학, 예술, 건축, 패션, 문학, 과학, 디자인을 종횡으로 넘나들며 총망라한 신간이 출간됐다. 저자 김유열은 딜리트의 시작을 기존의 관행이든, 원칙이든 어디서부터나 가능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콘텐츠 기획자이자 EBS PD로 제작자로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 제안을 받고 집필을 마치기까지 5년이 넘게 걸렸다고 전했다.

책에서 딜리트는 창조를 명령하는 메카니즘으로 현상, 채움, 욕망의 21세기에 자연, 순수, 비움으로 지식지도의 새판을 짤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기획자로서 자신이 25년간 해 왔던 업무의 성패를 분석하다가 ‘딜리트’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밝혔다. 저자는 책에서 ‘딜리트’의 기술로 분명한 개선과 개혁의 효과를 맛본 경험담을 토로했다.

저자는 "피카소는 ‘내 그림은 파괴의 총액’이라며 색채의 미학을 담당했던 원근법을 버렸고, 샤넬은 장식을 걷어내고 치마를 걷어 올렸다. 메이지 유신의 선각자 사카모토 료마는 탈번하여 운명의 족쇄를 벗었다. 필립 바롱 드 로트칠드는 오크통으로 와인이 유통되던 시절에 오크통을 없앴다. 제임스 다이슨은 선풍기 날개를 없앴고, ‘태양의 서커스’는 동물쇼를 삭제했다. 오드리 헵번은 풀 세팅 후 마지막에 장신구 한두 개를 반드시 떼어냈고, 푸알란 빵집은 제빵사를 딜리트했으며, 낙소스는 클래식 음반에서 스타를 없앴다. 말보로는 여성용 담배라는 초기 컨셉을 버렸고, EBS의 인기 프로그램 ‘세계테마기행’은 ENG카메라와 1급지, 여행정보라는 여행 프로그램의 관행을 버렸다" 고 책에서 밝혔다.

어느 한 분야에서 천재는 되기 힘들지만 누구나 딜리터는 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책의 첫장을 연다. 현 시점에서 딜리터가 더 필요한 이유를 강조하고 오래된 생각을 지우는 방법에 대하여 역설한다.

2장에서는 인류의 역사를 바꾼 딜리터들을 예로 들면서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특히 노장의 무위사상과 니체의 니힐리즘사상을 강조한다. 저자는 최고의 딜리터를 노자라고 손꼽으면서 노자사상으로 딜리트의 과정을 엿보기도 한다. 또 다른 강력한 딜리터 니체의 예언을 들어 설명하면서 축소하고 지우는 미학이 곧 창조로 이어짐을 강조했다.

저자가 손꼽는 또 다른 딜리터는 피카소다. 그는 스스로를 죽이고 철칙을 전복하면서 딜리트의 종결판을 완성했다고 강조한다. 흔히들 부적응아 혁명가 문제아라고 말하는, 세상에 저항한 딜리터들이 학교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일개 보병이기를 거부한 혁명가를 거론하기도 한다. 특히 저자는 집중하면 파괴력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도 나온다고 강조한다.

3장에서는 딜리트하는 특별한 방법을 제안한다. 특히 다르게 새롭게 임팩트 있고 아름답게 튼튼하게 유도해 나가는 딜리트로 세상을 놀라게 만든 모형을 제시한다.

4장에서는 일부러 애써 딜리트해 볼 줄도 알아야 한다고 반문하면서 편안한 반복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딜리트하는 연습을 꾸준히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책 전반에서 과잉의 시대에 단순하게 살아간다면 뿌리와 근본이 다른 접근법으로 창의력이 생기는 방법에 대하여 독자들에게 친절히 설명한다.

저자는 “우리 두뇌는 결손을 창의력으로 보상해 준다. EBS의 많은 프로그램도 딜리트 철학의 산물이다. ‘다큐프라임’, ‘세계테마기행’ 같은 것은 브레인스토밍의 결과가 아니다. 기존의 프로그램에서 무엇을 먼저 딜리트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딜리트했다. HBO와 디스커버리의 부흥에도 딜리트의 기술은 유효했다. 포기하고 집중할수록 과거에는 맛볼 수 없었던 새로운 다큐멘터리와 드라마가 태어났다”고 강조 했다.

한편 저자는 1983년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 입학해 방황과 허무로 얼룩진 대학 시절을 보냈다.

EBS의 대표 프로그램인 ‘다큐프라임’, ‘세계테마기행’, ‘한국기행’, ‘극한직업’ 등을 기획했고, 그 이전에 도올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 ‘중용, 인간의 맛’을 비롯하여 박재희의 ‘손자병법과 21세기’, 성태용의 ‘주역과 21세기’ 등을 기획해 대한민국에 인문학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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