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군’ 평화‧정의당 버린 與의 ‘소탐대실’… 정국 주도권 박탈 불가피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만나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뉴시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만나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뉴시스]

민주당-한국당 ‘기이한 한 배’에 ‘친여’ 평화당 “협치 종료” 선언까지

더불어민주당이 ‘얄미운 시누이’로 전락한 꼴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만 해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긍정적 자체를 취하더니 2020년 총선이 가까워 오자 돌연 태도를 바꿨기 때문이다. 선거제 개편을 주장하며 내년 예산안 처리와 ‘패키지딜’을 요구한 야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의 요구마저 묵살했다. 그러면서 한국당과 손잡고 내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아군’이었던 민주평화당‧정의당을 버리고, ‘적군’인 한국당과 야합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이유다. 민주당의 이 같은 최근 행보를 두고 ‘소탐대실’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민주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했던 평화당과 정의당이 돌아설 경우 고립무원(孤立無援) 처지에 놓일 것이 자명해 보인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지난 8일 469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킨 것을 두고 후폭풍이 거세다. 사사건건 충돌했던 집권 여당인 민주당과 제1야당인 한국당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오월동주(吳越同舟)격 ‘야합’을 감행했다는 지적이다.

야3당은 ‘날치기 통과’라며 예산안 강행 처리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선거제 개혁과 예산안 연계 처리를 주장하며 표결에 불참했다. 야3당은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촉구 농성을 벌이고 있고, 특히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닷새째(12월 10일 기준) 단식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한국당보다 더 큰 비난을 받고 있다. 문재인 정권 초기에 비해 ‘선거제 개편’에 대한 기조가 돌연 바뀌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 2015년부터 선거제 개편을 강조했고,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에도 포함됐다. 당장 최근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제 개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와 협치를 약속했고, 당 정책위의장 및 사무총장도 같은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게다가 정당대표들이 지난 9월 평양공동선언 합의차 대통령의 특별 수행원으로 방북했을 때 이해찬 당대표는 “우리 사회의 보수편향으로 기울어진 정치지형을 바로잡기 위해서 집권여당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합의할 수 있다”고 발언했고 야 3당 대표들은 이것을 ‘평양 합의’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막상 정권을 쥐고 차기 총선이 다가오자 미온적 태도로 돌아선 것이다. 현행 소선구제대로 라면 차기 총선에서도 우위가 점쳐지는 상황에서 굳이 군소정당에 도움이 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꿀 필요가 없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야 3당 대표들은 민주당이 선거 공학에 기반을 둔 집단 이기주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면서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10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밉다고 얘기하면 사실 더불어민주당 더 밉다”면서 민주당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원래 당론이 아니었다가 그래도 그나마 연동형에 대해서 고려하는 듯한 제스처라도 취하고 있는 것인데 물론 그 속내야 또 들여다봐야 한다”면서도 “민주당은 이것이 자신의 강력한 당론이었고 대통령의 의지였는데 이 부분이 되네, 안 되네 이러고 계시니까 사실 그런 마음으로 훨씬 더 민주당에게 많이 (미운 감정이) 든다”고 지적했다.

민생개혁 입법 ‘빨간불
‘아군’ 잃고 ‘고립무원’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주당이 향후 정국에서 주도권을 뺏길 공산이 커 보인다.

한국당이 앞으로 정국에서 민주당과 협력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다. 여태까지도 양당은 집권 여당과 제1야당의 ‘숙명’으로 상대의 천적을 자처해 왔고, 예산안 통과 직후부터 ‘유치원 3법’ 등을 둘러싸고 다시 삐걱거림이 시작됐다.

결국 한국당과 이번에 손잡은 것이 ‘악수’를 둔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선거제 개편을 미루는 데는 성공했지만, 든든한 ‘아군’이었던 친여 성향의 평화당과 정의당을 잃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민주당은 평화당‧정의당 등과의 연대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었다.

당장만 해도 민생개혁 입법에 빨간불이 켜졌다. 김상환 대법관 후보자 국회 임명동의안 처리부터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당과 바른미래 뿐 아니라 평화당과 정의당에서도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세금탈루’ 등의 이유로 인사 청문 경과 보고서를 채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민주당은 오는 20일 ‘유치원 3법’ 처리를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 소집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것마저 평화당과 정의당이 협조할 가능성은 미지수다.

실제로 민주평화당은 10일 공식적으로 민주당과 ‘협치 종료’를 선언했다. 한국당과 예산안 처리를 강행한 데 이어 이들의 강경 투쟁을 묵살한 데 대한 ‘최후통첩’으로 풀이된다.

정동영 대표는 이날 국회의사당 계단 앞에 설치된 천막당사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정부여당이 기득권 세력으로 전락한 마당에, 자유당과 기득권 동맹을 맺은 마당에, 조건 없는 협치는 불가능하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할 임시국회 개최, 국회의원 세비 인상분 반납, 이해찬 대표 경고 등도 요구했다.

장병완 원내대표도 “민주당 모 의원이 예산안 야합을 훌륭한 대연정이라고 자평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득권을 버리기 위해 대연정을 제안 했는데 민주당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대야합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혁을 원했지만 민주당은 거부하기 위해 기득권과 야합했다”고 힐난했다.

한편 민주당 내에서도 이번 ‘야합 논란’과 관련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강창일 민주당 의원은 “우리당이 미숙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공조해야 할 야3당과 관계가 악화돼 최악이 된 것 같다. (민생개혁 입법은) 관계 악화로 어렵지 않겠느냐”고 한탄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