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행보가 지난 달 전당대회 전후로 갑작스레 변하게 된 이유에 대해 말들이 많다. 특히 지난달 박 대표의 직지사 방문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그 시기와 내용에 많은 의미가 부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박 대표와 직지사 녹원 스님과의 관계도 상당히 주목된다. 둘 만의 대화에서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 몰라도, 박근혜 대표는 그 날 이후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사실 직지사 방문 후 한 달의 기간동안 박 대표가 가장 많은 변화를 국민들에게 보여줬다.박 대표는 직지사 방문 후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급속도로 당내 세력 기반을 확충했다. 그리고 최근 박 대표의 잇따른 전직 대통령 방문이 당내 교통정리가 끝난 것을 의미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박 대표가 당내 지지세력 확보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외부 활동을 통해 대권 주자 이미지 굳히기에 들어갔다는 내용이다.지난 7월 19일 한나라당 전당대회 이전까지 박 대표는 다소 유연한 태도로 현안에 대응했다. 민생현장을 찾아다니며 정치 현안에는 다소 얌전한 행보를 이어왔다. 이는 강한 이미지 보다 대의를 좇다 보면 대중적 지지와 세력이 자연스럽게 따를 것이란 전략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전대 직전부터 박 대표는 강한 이미지로의 변신을 시도했고 꽤 성과를 얻었다. 당내 세력기반도 과거에 비해 상당히 안정돼 가고 있다. 정가에서는 박 대표 변신이 직지사 방문 후 본격화됐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직지사 방문시 녹원 스님(75)과의 만남을 통해 박 대표가 향후 행보를 결정하고 모종의 결심을 굳혔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다만 박 대표의 측근들은 계속 미루다 힘들게 시간을 낸 것일 뿐 다른 특별한 의도는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후의 박 대표의 행보를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미뤄왔던 방문이지만 박 대표 개인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방문으로 이해되고 있다.특히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김천 직지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된 곳으로 유명하다. 또 동화사, 범어사, 통도사 등과 함께 영남 4대 사찰의 하나로 분류된다. 따라서 박 대표에게 직지사는 그냥 마음을 편히 하는 곳만은 아닌 셈이다. 박 대표는 녹원 스님과의 자리 이전에 박정희 전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진 명부전에서 헌화 및 분향하고 부모님을 추모했다. 박 대표의 직지사 방문 당시는 그가 차기 대권을 위해 치고 나갈 시기를 놓고 고민하던 때다.

즉 박 대표의 직지사 방문과 녹원 스님과의 만남은 그가 향후 행보를 결정짓는데 상당한 계기를 마련해 준 것으로 보인다. 전당대회 재출마를 위해 대표직을 사퇴한 직후라는 점과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위패를 보러갔다는 점이 중요하다. 흔히 꼭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중대한 결심을 앞두거나 마음을 정리하기 전 찾게 되는 것이 부모 묘소나 위패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박 대표의 직지사 방문에 대해 야당 대표로서의 입지 강화와 차기 대선 주자 부각으로의 전략 세우기의 방점을 찍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마음을 다잡는 계기로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큰 비가 오는 와중에 직지사를 찾은 박 대표는 명적암에서 직지사 회주 녹원 스님에게 ‘너무 늦게 찾아 죄송하다’고 처음 인사말을 전했다. 그리고 녹원 스님은 “여야가 화합하면 나라와 국민은 물론 한나라당도 잘 될 것”이라 말했다. 이에 박 대표도 “화합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이라 화답했다.

또 측근에 따르면 녹원스님은 박 대표에게 큰 정치를 위해서는 사욕을 버리고 마음을 다잡을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당시 박 대표를 수행했던 한 측근은 “박 대표는 지난 겨울 원로 고승이 입적했을 때 직지사를 방문하고 약 반년만에 다시 찾은 것”이라면서 “두 분은 구면으로 가끔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녹원스님과 식사시간을 가진 후 다음 장소로 이동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식사시간에 오갔던 대화내용은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차기 대권을 꿈꾸는 야당대표와 한국 불교계 거목인 고승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호기심이 발동된다. 그리고 장소가 야당 대표의 부모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이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또 방문 시기의 절묘함도 상당하다. 당시는 이명박 서울시장이 ‘서울시 하느님께 봉헌’ 파문으로 시끄럽던 때다.

그리고 서울시 교통혼란과 ‘봉헌’ 발언으로 추락하던 이 시장과 반대로 박 대표는 대찰에서 큰 스님과 만나 민심을 추스른 격이 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박 대표에게 운이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다소 성급한 평가도 내놓고 있다. 직지사 방문을 통한 녹원 스님과의 만남으로 박 대표는 안 그래도 굳건하던 영남 민중 정서에 더욱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한편 이날 박 대표의 김천 방문에는 한나라당 임인배 의원과 이상배·김성조·김태환 의원 등 구미·김천 지역 의원들이 동행했다. 전형적 이벤트 주의에 따른 포퓰리즘이라 비난받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일단 그가 부모님 위패가 안치된 사찰을 방문하고, 한국 불교계의 큰 스님인 녹원 스님과의 만남에서 모종의 결심을 굳힌 것은 사실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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