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불법 사찰, 비자금 정황 포착하면 ‘폭로’할 의도로 시도”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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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이명박 정부 시절 여야 정치인과 민간인을 상대로 사찰을 벌인 국가정보원 전 방첩국장 김모씨에 대한 항소심 3차 공판이 진행됐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과 변호인은 상반된 전략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1심 징역 1년·자격정지 1년→항소심 징역 3년·자격정지 2년 ‘중형’
검찰 “사찰, 중대한 범죄” vs 변호인 “국정원 상명하복 구조”  


국가정보법(국정원법상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김 전 방첩국장에 대한 항소심 공판이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 심리로 지난 11일 오후 3시 고등법원 302호에서 열렸다. 


증인석에는 피고인인 김 전 방첩국장이 앉았다. 푸른빛의 구치소복을 입은 모습이었다. 그는 지난 8월 17일 치러진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방첩(防諜)이란 기밀유지·보안유지라고도 불리며 적의 정보활동에 대비하거나 첩보활동을 막고, 자국의 정보가 누설되지 않도록 하는 대응활동을 뜻한다.

 

“사찰은 했지만…
흠집 내기 없어”

 

이날 김 전 방첩국장의 변호인은 재미있는 신문을 펼쳤다. 그는 김 전 방첩국장에게 “(당시) 민간인 사찰은 했으나 노하우는 없었나”라고 물었다. 변호인과 김 전 방첩국장은 사찰 의혹에 대해서는 모두 시인한다는 입장이었다.

김 전 방첩국장은 “(민간인 사찰) 시도는 했으나 국내에서 (관련) 파일이나 전문가는 없다”고 답변했다. 당시 상부 지시로 민간인 사찰을 시도했지만 그 과정이 체계적이지는 않았다면서 방어 태세를 갖춘 것이다.

이 대목은 방어진의 ‘포석’에 가깝다. 이를 통해 ▲사찰이 구체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사찰은 했으나 유의미한 실적을 내지 못했다 등의 면피책을 세워 김 전 방첩국장이 사찰 행위로 어떠한 사회적 파장을 꾀한 게 없고, 관여한 바가 적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 

변호인은 신문을 통해 이러한 김 전 방첩국장의 입장을 다진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이미 드러난 사찰 혐의는 시인하되, 형량이나 구속 여부 등에 있어 최대한 선처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으로 여겨졌다.

이번엔 증거로 제시한 여야 정치인 사찰 관련 문건에 적힌 ‘성과’라는 단어가 언급됐다. 변호인이 “(여기서) ‘성과’는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질문하자 김 전 방첩국장은 “비리 등을 의미한다”고 대답했다. 

다만 “당시 (정치인을 상대로 한) 흠집 내기나 비위 적발 등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간단히 말해 ‘성과가 없었다’는 의미다.

이에 변호인은 “(성과가 없는 것에 대해 상부로부터) 독촉이나 질책을 받았느냐” 묻는 등 김 전 방첩국장이 조직 내에서 ‘허리’ 역할임을 강조하는 변화구를 던졌다. 김 전 방첩국장 역시 상부 지시 이행으로 인해 사찰을 수행했다는 취지다.

변호인의 신문 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독특한’ 어휘 선택이었다. 변호인은 김 전 방첩국장에게 “(상사인) A씨가 피고인보다 나이가 어려 김 전 방첩국장을 면전에 대고 질책하기 어려워 그 부하 직원들을 속된 말로 ‘조졌다’는데 (사실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김 전 방첩국장은 “그렇다. (그럴 경우 내 입장에서는) 더욱 압박을 받는다”며 수긍했다. 

반면 역으로 김 전 방첩국장이 상사인 경우에는 어땠을까. 변호인이 “(피고인도) 부하들에게 독촉했느냐”고 질의하자 피고인은 “어르고 달래기도 하며 (팀을) 이끌어 왔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사찰 업무로 성과를 얻고자 하부에 과도한 강요나 압박 등을 가하지 않았음을 피력하려는 의도가 감지됐다.

재판부는 이러한 변호인의 신문에 대해 “사건과 관련 없는 질문이 많다”며 소극적으로 제지했다.

 

劍 “비자금 ‘추적’보다
‘폭로’에만 관심 있어”

 

우회로를 택한 변호인과 달리 검찰은 ‘정공법’을 선택했다. 검찰은 김 전 방첩국장에게 “(동일한 혐의로 재판받은) 다른 국정원 간부들이 1심서 2~3년형을 선고받은 것을 아느냐”고 압박했다.

김 전 방첩국장의 경우 1심에서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즉, 그가 다른 국정원 간부들에 비해 가벼운 형량을 받음으로써 이미 ‘선처’를 받지 않았냐는 의견을 드러낸 것.

이와 더불어 ‘멍텅구리 PC’를 거론하며 김 전 방첩국장을 추궁했다. 멍텅구리 PC란 국정원 내 인트라넷과 인터넷이 제거된 PC를 일컫는다. 

통상적으로 국정원에서 사용하는 일반 PC는 국정원 서버와 연결돼 기록이 남는다. 하지만 멍텅구리 PC를 이용할 경우 기록이 남지 않아 주로 ‘극비 사항’을 다룰 때 쓰인다.

김 전 방첩국장은 “멍텅구리 PC를 사용한 적이 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은밀하게 진행될 수도 있는 일을 위해 (사용한 것)”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검찰은 여야 정치인 사찰 문건에서 ‘비자금’ 관련 부분을 놓고 “(사찰한 이유가) 비자금 추적을 위해서냐, 폭로를 위해서냐”고 날을 세웠다. 계속해서 “(문건을 보면) ‘비자금 폭로 액션 플랜’이라고 적혔다”며 비자금 정황이 발견될 경우 이를 언론에서 폭로해 ‘정치공작’을 펼치려는 의도가 내포됐는지 의심했다.

또한 김 전 방첩국장이 국정원에서 30년간 일했다고 증언하자 검찰은 “(국정원 근무 기간 동안) 미행이나 해킹 등을 하지 않았는데 했다고 (상부에) 허위 보고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김 전 방첩국장이 ‘사찰’을 한 사실은 명확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러자 김 전 방첩국장은 “과장한 적은 있지만 허위 보고는 한 적 없다”며 “사찰을 시도한 것은 맞다. 혐의는 기본적으로 다 인정한다”고 진술했다.

이후 검찰은 “변론유지서를 보니 사찰 범행으로 인한 피해가 별 것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찰은 중대한 범죄”라며 “피고인은 (1심에서) 선처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방첩국에서 실시한 민간인 사찰 범위는 방대하나, 멍텅구리 PC를 이용해 일부만 드러난 것으로 추정된다”며 “(당시) 국정원장 등은 비자금 추적에 관심이 없고 ‘폭로’에만 관심이 있다. 폭로 정치 공작한 내용도 스스로 인정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피고인의) 죄질이 가볍다고 판단되지 않는다”며 재판부에 1심보다 중형인 징역 3년과 자격정지 2년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은 “피고인은 전체적인 사실 관계는 인정한다”며 “이용 의도나 목적은 잘못됐으나 정보 수집 과정은 정상적이다”라고 변론했다. 아울러 “국정원은 상명하복 구조”라면서 수행 과정 대부분이 상부 지시였음을 고려해 달란 관점을 내비쳤다. 김 전 방첩국장 역시 자신이 처한 상황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한편 김 전 방첩국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재임하던 2011년을 전후로 대북 관련 공작을 수행하는 방첩국 산하에 ‘포청천’이라는 이름의 공작팀을 만들고, 여야 정치인과 민간인을 상대로 불법 사찰을 주도했다는 혐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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