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세월호 유가족을 사찰했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온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이 지난 7일 자살했다. 현 정부 들어 검찰의 적폐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의자는 이 전 사령관이 세 번째다. 앞서 국정원 소속 변호사 정모 변호사와 변창훈 서울고등검찰청 검사가 1주일 간격으로 자살했다. 두 사람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자 당시 인터넷상에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대부분 고인(故人)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8개월여 후인 지난 7월 23일,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드루킹 금품 수수 의혹을 받아 자살했다. 이들 모두 재판을 통해 정확한 혐의가 입증되기 전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여론은 극명히 갈렸다. 인터넷에는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내용의 댓글이 주를 이뤘다. 이때부터 일각에서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목숨의 값어치도 다른가”라는 논란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전 사령관의 자살로 이 같은 논란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나아가 적폐청산 수사에 대한 우려와 함께 수사를 총괄하는 윤석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의 책임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 '죽음의 굿판' 된 적폐 청산 "검찰 칼춤 도 넘었다"
- 盧 정부 당시 정몽헌 전 현대 회장 등 수많은 인사 자살... ‘참여정부 시즌2’ 우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칼춤이 또 한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불법사찰로 검찰 수사 중이던 이재수 전 사령관이 심리적 압박으로 7일 자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전 사령관은 이날 오후 2시 55분 쯤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소재한 오피스텔에서 투신했다. 이 전 사령관은 이날 해당 오피스텔 13층에 위치한 지인의 회사에 방문했다가 외투를 안에 놓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 전 사령관은 2쪽 분량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유서의 일부를 공개했다. 이 전 사령관의 외투에서 나온 유서에는 “모든 것을 내가 안고 간다, 모두에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재수 측 “억울함에 떨었다”
적폐 수사 세 번째 극단적 선택 

이 전 사령관은 2014년 4월부터 7월까지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 등 각종 선거일정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인 새누리당의 지지율 관리를 위해 세월호 유가족의 정치성향과 개인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사찰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검찰은 앞서 이 전 사령관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지난 3일 법원이 기각했다.

이날 시신이 안치된 서울 경찰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임천영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는 “고인이 세종시에 집이 있는데 수사 때문에 많이 찾아가지 못했다”며 “억울함과 부당함 때문에 불안에 떨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지인은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의혹을 모두 부인해 왔다”고 말했다.
  
석동현 변호사는 “어제도 보고 오늘도 통화했는데, 무슨 이런 걸 문제 삼느냐 하는 답답함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열심히 일한 하급자들이 구속이 되고 하니 당시 상황에 대해 모든 일을 다 알지 못하지만 사령관으로서 안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전 사령관의 또 다른 지인은 “기무사 안에 재향군인회 지원하는 조직이 원래 있는데, 그걸 갖다가 보수단체 지원 혐의로 덮어 씌웠다고 주장했다”며 “주변을 또다시 압박하고 짜 맞추기식 수사를 했다고 억울해했다”고 전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의 적폐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의자는 이 전 사령관이 세 번째다. 지난해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진행 중 검찰 조사를 받던 피의자 두 명이 1주일 간격으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10월 국정원 소속 변호사 정모 변호사가 춘천시의 한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데 이어 1주일 뒤 수사 은폐 의혹을 받던 변창훈 서울고등검찰청 검사가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 사무실 건물 4층에서 뛰어내렸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은 변 검사와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 이제영 대전고검 검사, 고모 전 국정원 종합분석국장 등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은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재판에 대비해 국정원이 꾸린 이른바 ‘현안 태스크포스(TF)’ 구성원들이다. 정모 변호사 역시 TF 소속이다. 

두 사람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자 인터넷상에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박근혜) 정권에 충성하더니 결국… 저승에서는 처신 잘하시오” “비겁하게 목숨을 끊다니… 죽어서도 당신은 적폐” “자식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나. 반성하라” 등 대부분이 고인의 죽음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8개월여 후, 비슷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여론조작 혐의로 구속된 드루킹(김동원) 측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혐의를 받던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심리적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투신자살한 했다. 

‘죽음의 굿판’ 된 적폐 청산,
“검찰 칼춤 도 넘었다”

하지만 인터넷상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당시 드루킹 특검을 맡고 있던 허익범 특별검사의 수사를 ‘강압 수사’로 규정하며 허 특검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했다. 일각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강압 수사로 자살했다며 노 전 대통령과 노 의원의 복수를 다짐하기도 했다. 

변 검사와 정모 변호사, 그리고 노회찬 의원 모두 재판을 통해 정확한 혐의가 입증되기 전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는 ‘무죄추정의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즉 법적으로 ‘무죄’인 상태에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럼에도 정모 변호사와 변창훈 검사는 죽음 이후에도 원색적인 비난을 받아야 했던 반면 노 의원의 죽음은 미화됐다. 심지어 고(故) 노회찬 의원에게는 지난 12월 4일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 되기도 했다. 이에 당시 일각에서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목숨의 값어치도 다른가”라는 지적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7일 이 전 사령관이 검찰의 수사를 받던 도중 자살하자 이 같은 논란과 함께 적폐 청산의 칼춤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한 로펌의 변호사는 정모 변호사, 변 검사, 이 전 사령관의 자살과 관련해 “검찰이 수사를 강압적으로 해 피의자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한다”며 “답을 정해놓고 끼워맞추기 수사를 하니 극단으로 몰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야당 역시 이 전 사령관이 ‘적폐 청산의 칼춤’에 희생됐다며, 현 정부와 검찰에 집중포화를 가하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검찰의 과잉수사와 정치보복이 그를 죽음으로 내 몰았다”고 비난했고, 나경원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살기등등한 적폐 청산의 칼끝이 또 한 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갔다”고 한탄하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유사한 자살이 벌써 네 번째임을 상기시켰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적폐 청산이든, 정의 실현이든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지, 사람을 잡는 거면 광기에 불과하다”며 “정상적 직무수행을 사찰과 적폐로 몰아가니 자괴감이 어떻겠느냐”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더구나 이 정부는 사람이 먼저라는 모토이면서,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적폐를 쌓아가니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며 “일반인에 대한 수사도 마찬가지다. 증거인멸·도주우려가 없으면 가급적 불구속 수사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설상가상으로 일각에서는 적폐 청산 수사가 분위기에 휩쓸린 탓에 증거와 법률까지 무시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결국 분위기다. 최근 적폐 수사나 처벌 과정을 보면 분위기에 휩쓸려 지나치게 이뤄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 기무사 세월호 TF 명단에 자기 이름이 올라갔다는 이유만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일마저 있다”라며 “당사자가 자기도 모르게 이름이 올라갔다고 주장해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무조건 책임을 묻는다. 그것은 우리가 믿는 법치주의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盧 정부 ‘칼춤’ 때도 자살↑
“같은 과오 범하지 말아야...”

한편 문 정권 출범 후 네 명의 인사가 자살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정치권에서는 노무현 정권 ‘시즌 2’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검찰은 다방면에서 칼춤을 췄다.

그 결과 2003년 8월 ‘대북 비밀송금 의혹 사건’ 관련 검찰 조사를 받던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이 투신자살했다. 이어 안상영 전 부산시장,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박태영 전 전남지사, 이준원 전 파주시장, 이수일 전 국정원 2차장, 박석안 전 서울시 주택국장, 강희도 전 경위 등의 고위직 공무원과 유명 기업인 등이 검찰 조사 도중 자살했다.  

특히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의 자살은 정치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남 사장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나와 국민 앞에서 실명으로 비난 한 직후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 씨에게 인사 로비를 했다는 죄목이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노 정부의 칼춤으로 수많은 인사들이 자살했다. 나아가 임기가 끝나고 봉하마을 고향으로 내려간 전직 대통령이 자살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라며 “문재인 정부는 같은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전 정권에 대한 ‘적폐 수사’에 이어, ‘사법 적폐’, ‘생활 적폐’ 등 끝도 없다”고 꼬집었다. 

노 전 대통령은 개인적 친분이 있던 박연차로부터 자신의 일가가 금전을 수수했다는 포괄적 뇌물죄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귀가한 후인 2009년 5월 23일 자택 뒷산인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자살했다. 그의 죽음과 함께 사건도 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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