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堯)와 순(舜)은 중국의 신화 속의 천자다. 이 시대를 ‘요순의 치(治)’라 하여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라 여겼다. 하지만 요순의 태평성대 이후 세워진 하(夏)와 은(殷)나라는 폭군이 등장한다. 특히 은나라 주왕(紂王)은 폭정의 대명사이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이란 고사가 이를 증명한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였다. 부왕은 아우인 숙제를 왕위에 앉히고자 했으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숙제는 형 백이에게 왕위를 양보했다. 백이가 아버지 명령을 어길 수 없다며 나라를 떠나자, 숙제 또한 형을 제치고 왕이 될 수 없다며 길을 나섰다. 백이와 숙제는 서로 왕위를 마다하고 주나라 서백(西伯) 문왕(文王)이 어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으나,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난 직후였다. 그런데 문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무왕(武王)이 부왕의 장례가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의 위패를 수레에 싣고 은나라 주왕을 치기 위해 정벌에 나섰다.

이에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이렇게 간(諫)하였다. “부친의 장례도 치르지 않고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효(孝)라 할 수 있는가? 신하된 자로서 군주를 치려는 것을 인(仁)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지만 무왕은 이를 듣지 않고 은나라를 정벌했다. 두 형제는 주나라 백성이 되는 것을 치욕으로 여겨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먹다가 굶어죽기 전에 이런 노래를 지었다. “저 서산에 올라 산중의 고비나 꺾자구나. 포악한 것으로 포악한 것을 다스렸으니(以暴易暴) 그 잘못을 알지 못하는구나…”

백이와 숙제는 죽어가면서도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암울한 세태를 탄식했다. 여기서 ‘폭력을 폭력으로 다스린다’는 ‘이포역포(以暴易暴)’의 고사가 생겨났다. 이 고사는 힘에 의지하는 ‘패도(霸道)정치’는 옳지 않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적폐수사를 2년 가까이 진행하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하여 100명이 넘는 사람이 구속되거나 재판을 받고 있고, 장·차관급만 30명 가깝다고 한다. 이들에게 선고된 징역형 형량만 따져도 100년을 훌쩍 넘은 지 오래다. 건국 이후 역대 어느 정권이 이토록 처절하게 보복정치를 자행한 적이 있는가.

검찰은 공익의 수호자 역을 포기하고 정권의 충견(忠犬)이 된 지 이미 오래다. 검찰은 출세를 위한 ‘하명수사’에 부끄러움도 모르고 불나방처럼 돌진하고 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거만 짜 맞추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짜 맞추기 수사’, 사람을 표적 삼아 먼지를 떨어 범죄자로 만드는 ‘먼지떨이수사’, 뒤지다 혐의가 나오지 않으면 다른 건으로 엮는 ‘별건수사’, 검찰 조사를 받을 때 수갑을 채우고 포토라인에 세우는 ‘망신주기수사’, 구속됐다가 풀려나면 다른 건으로 구속하는 ‘재탕수사’, 확인되지도 않은 피의사실을 흘려 사회적으로 매장 시키는 ‘인민재판수사’가 활개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이쯤 되면 수사가 아니라 또 다른 검찰 적폐이다. 이러한 ‘사람사냥’과 ‘사법 폭력’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비극적 선택을 했다. 지난 7일 기무사의 민간인 불법 사찰 혐의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이 11일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안고 가겠다. 잘못이 있다면 내가 책임지겠다’는 유서를 남겼다. 3성 장군은 무인다운 풍모를 보였고, 자신의 무고함을 죽음으로써 항변했다.

뿐만 아니다. 국정원 댓글 수사 방해 의혹으로 수사 받던 현직 검사, 그 검사와 국정원에서 함께 근무했던 변호사가 자살했고, ‘방산 적폐’로 찍혀 수사 받던 기업 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다.

모든 수사와 처벌은 증거와 법률에 따라야 한다. 헌법 가치인 확정 판결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받는다. 그러나 최근 적폐수사나 처벌 과정을 보면 증거와 법을 초월한 무소불위의 검찰권이 행사되고 있어 문제이다. 이렇게 마구잡이식 수사를 하니 번번이 영장이 기각되고 무죄판결이 난다. 이재수 장군처럼 억울한 사람들이 수없이 양산된다. 이렇게 실추된 국민의 인권은 누가 책임지는가. 누가 검찰에 이런 권한을 준 적이 있는가. 정권이 바뀌었다고 과거 정권에 일했던 사람을 굴비 엮듯이 엮고 파헤치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정치보복의 굿판이지 법치주의가 아니다.

더 이상 일제 강점기에나 있을 법 한 구시대적·반인권적 수사 관행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이것이 계속 된다면 검찰은 정치검찰이 되고 신적폐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곧 국민은 검찰에 직권남용과 헌법무시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야 이 정치보복의 칼춤을 멈출 것인가. 정치보복은 또 다른 정치보복을 낳고 원한은 또 다른 원한을 낳는다(以報易報).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문재인 정권과 검찰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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