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 메이 영국총리가 불신임 투표에서 승리했다. 아니, 겨우 살아남았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겨우 살아남은 메이 총리 앞에는 불신임 투표보다 더 큰 장애물이 놓여 있다. 메이 총리는 결국 하원에서 브렉시트 합의안을 비준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영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메이 총리가 불신임을 당하고 영국민들과 영국정부가 결국 하드 브렉시트의 공포 앞에서 브렉시트를 포기하길 기대했다. 죽을 날 받아 놓고 부활한 불사조 메이 총리의 앞날이 결코 평탄해 보이지 않는다.

2년 전 영국인들은 저물어 가는 대영제국의 그림자를 부여잡고 유럽을 떠날 결심을 했다. 영국인들은 무엇인가에 화가 잔뜩 난 상태에서 이런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화려한 과거를 살다 끈 떨어진 사람들이 흔히 내보이는 발작상태처럼,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발등을 찍는 결정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물론 그 길을 열어 준 캐머런 당시 총리나 나이젤 패라지 같은 저질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영국은 결국 노딜 브렉시트라는 과격한 방식으로 유럽을 떠나 섬나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메이 총리는 사임할 것이고 이후의 결말은 보수당, 노동당 어디서 정권을 잡아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영국인들이 원했던 결말은 브렉시트의 출구 앞에 과거 대영제국의 잭유니온이 펄럭이는 기적 같은 미래였겠지만, 이제는 누구나 안다. 영국인들이 선택한 브렉시트는 재앙이었고, 화난 상태에서 한 결정은 언제나 문제의 시작일 뿐이다.

브렉시트를 앞둔 영국의 도버해협 건너 이웃인 프랑스에서도 마크롱 대통령이 불신임 투표를 앞두고 있다. 역사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던 두 나라가 사이좋게 최고권력자의 불신임 투표를 앞두고 있는 셈이다.

한동안 중도적 개혁으로 성세를 구가하던 마크롱이 노란조끼 운동 앞에 무너지고 있다. 프랑스의 한 작은 도시에 사는 여성이 올린 프랑스는 어디로 가고 있나라는 동영상에서 시작된 노란조끼 운동은 프랑스를 뒤흔들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지율은 20% 초반까지 떨어지면서 노란조끼 운동에 항복을 선언하는 담화를 발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프랑스 국민들은 2년 전 노란 조끼를 입게 될 것은 상상도 못하던 때에 마크롱을 자신들의 대통령으로 선택하고 의회 다수당까지 몰아줬다. 2년이 지난 프랑스인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보여주는 권위주의적이고 일방적인 소통 방식에 단단히 화가 났고 그를 끌어내리려 하고 있다.

마크롱도 테레사 메이처럼 불신임이란 최악의 결과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마크롱이 더 이상 자신들의 희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를 뒤흔든 노란조끼 운동은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으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겠지만, 마크롱이 살고 있는 엘리제궁에는 어떤 산타도 선물을 배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인들이 노란조끼 운동의 결과로 영국이 브렉시트를 선택한 것 이상의 재앙을 선택하지 말란 법은 없다.

2년 전 우리는 촛불시위라는 시민의 도도한 진출로 국정농단 세력을 몰아내고 새로운 정부를 세웠다. 방식은 평화로웠지만 촛불 안에 분노라는 감정이 임계점을 넘지 않으면서 고요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우리는 분노가 발화해 청와대 담장을 넘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참았던 그날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해야 하는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2년 전에 보여준 우리들의 태도가 그만한 보상을 받을 만큼 훌륭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믿음이 좌절했을 때 섬뜩하게 드러날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