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종군’ 선택했지만… 괘씸죄 ‘후폭풍’ 견뎌낼까
李 기소에도 與 ‘감싸기’ 급급… 안희정 전 지사 처분과 다른 근거는
친문 “李, 나쁜 선례 될 것… 당장 출당” vs 비문 “정치 탄압 피해자”
[일요서울 | 박아름 기자] 검찰로부터 기소처분을 받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역설적으로 ‘궁지’에서 벗어난 모양새다. 당초 이 지사에 대한 기소는 예상된 결과였다. 오히려 부인 김혜경 씨의 ‘혜경궁 김씨’ 사태가 이 지사의 운명을 가를 중요한 키로 분석됐다.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비방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만약 기소된다면 자체만으로도 출당될 공산이 컸다. 그런데 검찰이 ‘혜경궁 김씨’ 건은 불기소처분을 내리며 ‘불명예 출당’은 모면한 것이다. 하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한동안 잠잠했던 친문계 내 이 지사의 비토세력이 다시 칼날을 갈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홍글씨’로 남은 ‘혜경궁 김씨’ 의혹과 ‘현재진행형’인 친형 강제 입원 의혹을 무기로 이 지사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할 전망이다.
검찰은 이재명 경기지사를 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수원 지방검찰청 성남지청 형사3부(양동훈 부장검사)는 지난 12월 11일 친형 강제 입원 시도, 검사 사칭, 성남 대장동 개발 업적 과장 등 이 지사에 대한 3가지 의혹과 관련해 혐의가 있다고 보고 이 지사를 불구속기소했다. 다만 검찰은 여배우 김부선 스캔들을 비롯해 조폭 연루설, 일베 가입 등 의혹에 대해서는 경찰과 마찬가지로 불기소 결정했다.
검사 사칭, 대장동 개발사업 수익금 환수 등 2건은 공직선거법상 혐의로만 기소됐다. 친형 강제 입원과 관련해서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외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도 걸려 있다. 직권남용죄는 법정형이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이다.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 선출직 공무원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직위를 상실한다.
우선 이 지사는 성남시장이던 2012년 보건소장 등 시 공무원들에게 의무에 없는 친형에 대한 강제입원을 지시하는 등 직권을 남용하고, 올해 6·13 지방선거에서 관련 의혹을 부인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지자체장이 정신질환자 입원 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정신과 전문의 ‘대면 진단' 절차가 누락돼 있는데도 성남시장이던 이 지사가 공무원에게 강제입원을 지속해서 지시한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강제입원이 적법하지 않다며 반대하는 공무원은 전보 조처하고 이후 새로 발령 받은 공무원에게도 같은 지시를 했다는 참고인 진술을 확보하는 등 권한 남용 혐의가 인정된다고 결론 냈다.
검찰 관계자는 “강제입원을 지시하는 과정에서 시장 측근 사람 외에는 위법한 행동이라고 검토 결과를 말했는데도 당시 시장이던 이 지사는 자기 생각을 꺾지 않고 아래 공무원한테 지시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 지사는 같은 날 “검찰의 기소는 예상했던 일”이라면서도 “정당에 있어 분열을 막고 단결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당의 부담을 줄이는 것 또한 당원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모든 당직을 내려놓고 평당원으로 돌아가 ‘백의종군’하겠다는 의사였다.
정치권에서는 이 지사가 ‘선방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앞서 경찰이 기소 처분을 내릴 당시 충분한 증거 확보를 통해 검찰과 긴밀한 협의가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 컸다. 이에 이 지사의 기소는 기정사실화였으나, 관건으로 지목됐던 부인 김혜경 씨의 ‘혜경궁 김씨’ 의혹이 불기소 정두언 전 의원은 지난 12월 12일 한 라디오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 지사가) 이 정도까지 선방할 줄은 몰랐다”며 “막판에 정면승부를 건 게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당 단합 위한 ‘백의종군’
도리어 당 갈등 ‘폭발’
하지만 리스크가 만만치 않다. 민주당이 ‘당 단합’을 이유로 들어 ‘징계’ 대신 ‘백의종군’을 수용하는 선에서 매듭을 지었는데, 도리어 친문-비문 지지층 간 갈등이 폭발하는 양상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2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지사가 모든 당직을 내려놓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후 저에게 전화해 당원으로서 권리를 행사하지 않겠다고 했다”며 “여러 가지 종합적으로 판단하건대 당의 단합을 위해 이를 수용하는 게 좋겠다”고 밝혔다. 이 지사가 먼저 제안한 당직을 내려놓는 것 외에 사실상 징계는 없음을 시사 한 것이다. 이 지사가 무죄를 주장하고 있고 재판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친문 지지층은 지나친 이재명 감싸기라며 격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미투 논란과는 다른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주장이다. 안 지사는 성폭행 의혹 보도 직후 당 긴급최고위원회를 통해 ‘출당 및 제명’ 조치 됐다. 당시는 경찰 수사조차 시작되지 않은 단계였는데 민주당이 발 빠르게(?) 대처했는데, 이 지사에 거취에 대해서는 뒷짐만 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때문에 이 지사가 기소된 상황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나쁜 선례가 되고 당에 부담만 줄 것이라는 비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팬 카페 ‘문팬’은 이 지사에 대한 당 차원 징계가 없을 것으로 전망이 나오던 지난 11일부터 민주당을 강력히 질타했다. 또 앞서 친문 지지자들이 주축이 된 ‘이재명 출당ㆍ탈당을 촉구하는 더민주 당원연합’은 민주당사 앞에서 이재명 출당 및 제명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열기도 했다.
반면 비문 지지층도 불만이 크다. 이 지사에 대한 검찰 기소 자체는 문재인 정권의 정치 탄압이라면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재명지지연대’는 지난 11일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기소는 결과를 정해놓고 억지로 짜맞추기 수사를 통해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내에서도 여전히 이 지사의 출당을 요구하는 의원들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는 후문이다.
‘反文 아이콘’ 발목
지사직 박탈 가능성은?
상황이 이처럼 악화되자 역린을 건드린 이 지사에 대한 ‘괘씸죄’가 결국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크다. 위기는 ‘일단 모면’했지만 당을 장악하고 있는 친문계의 심기를 건드려 자충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지사가 대내외적으로 ‘반문(反文)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것 역시 현재 정치 지형도에서는 역효과를 낳을 공산이 크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당장 위기는 모면했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친문 진영에서 가만있겠느냐”며 “이제 본격적으로 이 지사와 친문계의 피나는 혈투가 시작된 것이다. 혜경궁 김씨가 아무리 불기소처분이 됐다하더라도 주홍글씨로 남아 있고, 이 지사 본인에 대한 친형 강제입원 혐의도 이제 재판에 올랐다. 친문 진영이 이를 최대 무기로 이 지사를 압박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게다가 이 지사는 재판에 넘겨진 친형 강제입원 사건(직권남용 혐의) 등에 대해서는 법적 다툼이 남았다. 이 지사는 강찬우 법무법인 평산 대표 변호사를 포함한 9명의 변호인을 선임하며 전력투구를 예고했다. 강 변호사는 2015년까지 수원지검장을 지냈다. 본격적인 재판은 내년 2월쯤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재판에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집행유예 이상 또는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지사직을 상실한다. 이 경우 피선거권과 공무원 자격이 상당 기간 제한돼 이 지사는 정치 생명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결과에 따라 2020년 4월 경기도지사 보궐선거가 치러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지사가 친형강제 입원 건에서 벗어나면 대선까지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 1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무죄 판단을 이끌어 내는 등 관리를 잘해 나가면 (대선까지) 갈 것”이라며 “재판의 결과는 재판장이 할 일이고, 앞으로의 전개는 누가 알겠나. 신만 안다”고 이 지사의 생존 가능성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