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세상 위해선 젠더·성평등에 눈 떠야”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실 [사진제공=정춘숙 의원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실 [사진제공=정춘숙 의원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여성 인권 신장 운동인 ‘페미니즘(feminism)’은 올 한 해를 뜨겁게 달군 사회적 의제 중 하나다. 은폐됐던 각계의 성추행·성폭행 사실을 고발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 등 여성들은 이제 세상을 향해 묻혔던 진실을 소리 내어 외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지난 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여러 의견이 오가는 모양새다. 

일요서울이 지난 13일 경기도 용인시 소재 정 의원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해당 법안의 면면에 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문제 포괄하는 ‘우산’ 같은 법”

“일·가정 양립 사회 돼야 가부장제 사회 성차별 극복돼”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하 여폭방지법)’은 준비 단계부터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던 법안이었다. 올해 초 미투 운동이 촉발되면서 여성 인권과 성차별 문제가 사회 주요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 이로 인해 ‘미투법’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이 법안에 관해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문제 등을 포괄하는 ‘우산’ 같은 법”이라고 표현했다.

정 의원은 “여폭방지법은 ‘처벌법’이 아닌 ‘기본법’이다. 통계 마련, 2차 피해에 대한 정의, 그동안 포섭되지 않은 여성 폭력에 대한 피해자 지원, 교육 등이 주 내용”이라며 “국가에게 여성 폭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책임을 주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객관적 자료 통해
실질적 대안 만들 수 있어”

 

정 의원이 지난 2월 대표발의한 여폭방지법은 단 ‘10개월’만에 국회에서 가결 처리됐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여론이 이 법안에 무게를 실어줬단 의미다. 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소감을 묻자 정 의원은 “아쉽지만 다행이다”라고 밝혔다.

먼저 ‘다행’인 것은, 이 법안이 여성폭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한 점, 여성 폭력 관련 통계를 마련한 점, 2차 피해·2차 가해에 대해 정의한 점 등의 성과를 일군 것이다. 특히 정 의원은 통계 부분에 있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정 의원은 “남들이 볼 때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법을 만들어 통계를 구축하게끔 한 것이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자료가 기본이 돼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없었기 때문에 여성 폭력을 방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계를 비롯해 구체적·객관적 자료를 만드는 것은 극단적인 ‘여혐(여성혐오)’이나 ‘남혐(남성혐오)’ 사태를 방지하고, 여성 폭력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을 만들 수 있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에 페미니즘이 등장하면서 일부 남성들은 이에 대해 ‘역차별’이라 주장하며 공격했고, 여성우월주의 사이트 ‘워마드(WOMAD)’ 등은 이에 맞서 ‘남혐(남성혐오)’을 펼쳐 논란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통계’를 통해 이를 완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 의원은 “사람들은 성폭력 문제에 대해 ‘무고가 많다’고 생각한다. 대정부질문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성폭력 문제에서 무고 사실만을 다룬 통계가 있느냐고 질의하니 ‘없다’고 답하더라”면서 “(현재) 무고 통계는 전체 사건 중 무고인 경우의 통계이지, 성폭력 사건에서 무고만을 다룬 통계는 없다”고 말했다. 

즉, 적절하고 세밀한 통계 자료가 준비되지 않아 ‘전체 무고’ 통계를 ‘성폭력 무고’라 여기는 이들이 발생한다고 풀이했다. 나아가 뚜렷한 근거의 부재로 서로 감정적으로 대치하는 상황이 빚어지니 ‘팩트 체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계속해서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문제를) 바라보고, 평가하고, 이해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현 사회가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냉정하게 볼 수 있다”며 “우리의 상대방은 (다른 성별이 아닌)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사회구조”라고 강조했다.

 

원안 ‘사회적’ 性 젠더 규정
법사위 ‘생물학적’ 性 ‘축소’

 

이후 해당 법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단 소식이 들려오자 여성 단체와 남성 등 많은 곳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상 이 목소리의 대다수는 ‘쓴소리’였다.

처음 발의한 원안에 적힌 “성별에 기반한 폭력” 부분이 “성별에 기반한 ‘여성’ 폭력”으로 바뀐 것이 비판의 주요 골자가 됐다. 이를 두고 ‘한계적이다’ ‘피해자를 여성으로만 한정한 것 아니냐’는 등 많은 화살이 쏟아졌다. 심지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 법안의 폐지를 촉구하는 청원이 올라 3만5000여 명(14일 기준)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정 의원이 앞서 말한 ‘아쉬운’ 부분도 바로 이 대목이다. 정 의원은 “아시다시피 이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가서 뒤집어졌다”며 “법의 정의를 만진다는 것은 법의 내용을 전혀 다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하면 안 되는 일이다. 법사위에서 월권했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이러한 일은 ‘성 인지 감수성’의 차이로 인해 벌어졌다. 원안의 “성별에 기반한 폭력”은 ‘성별 기반 폭력(gender based violence)’의 번역어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생물학적 성별로 특정하지 않고  광범위한 성폭력을 포함하겠단 속뜻을 담았다. 

실상 원안은 생물학적 성인 ‘여성’에 대한 폭력만을 의미하지 않고 ‘사회·문화적으로 부여된 여성성과 남성성(gender)’를 바탕으로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으로 규정하고 여아와 여성, 남아와 남성, 다양한 사회적 약자 등을 포함할 목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법사위는 젠더라는 용어에 대해 “보편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이라며 “여성폭력이라는 용어가 상징적인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고 정의조항에 피해자를 생물학적 성으로 제한하는 ‘여성’을 넣었다.

또한 정 의원이 처음 법안을 발의할 당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여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기 위한 시책을 수립·시행한다”고 규정한 의무조항은 수정안에서 “수립·시행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으로 바뀌었고, “여성폭력 예방교육을 성평등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실시할 수 있다”는 조항은 ‘성평등’이 ‘양성평등’으로 고쳐졌다.

이에 대해 정 의원은 “‘성별에 기반한 여성 폭력’으로 한정돼 (피해자에서) 남성이 배제된 것 아니냐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면 ‘개정하자’고 했을 때 (그들이) 동의하면 된다”며 “이에 대해 비본질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성별 대립으로 치달을 우려를 드러냈다.

정 의원은 “지속 가능한 세상을 원한다면 젠더와 성평등에 눈 뜨란 얘기를 많이 한다”며 “모든 여성이 함께 일하고, 모든 남성이 함께 돌보는 ‘일과 가정이 양립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래야만 남성은 가부장제 사회 구조 속에서 지닌 짐을 내려놓을 수 있고, 여성은 가부장제 사회가 주는 성차별을 극복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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