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구 세상보기] 관성적 대응으로는 통하지 않는다
[고재구 세상보기] 관성적 대응으로는 통하지 않는다
  • 고재구 회장
  • 입력 2018-12-14 19:43
  • 승인 2018.12.14 19:48
  • 호수 1285
  •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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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화국 시절인 1981년 제11대 총선에서 81석을 얻어 제1야당이 된 민주한국당(민한당)은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민정당)의 ‘2중대’라는 조롱을 받았다. 보안사와 안기부가 창당자금을 제공하고 공천자와 당직 임명까지 간여했으니 그런 비판을 받을 만 했다. 김대중, 김영삼계와 달리 신군부에 의해 정치규제를 당하지 않은 정치인들이 주축이 된 사실상의 관제야당 면모로 신군부의 조종을 받고 있던 사실을 삼척동자도 모르지 않던 시절이다.

이에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던 인사들이 정치활동금지에서 풀려나자 선명성을 지닌 정통 야당이 되살아나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마침내 해금 인사들과 일부 민한당을 탈당한 의원들이 1985년 신한민주당(신민당)을 창당했다.

신민당은 창당한 지 불과 한 달도 채 안 된 상태에서 12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민한당을 제치고 제1야당으로 급부상했다. 당세가 크게 위축된 민한당 의원들이 다시 대거 탈당해 신민당에 가세하면서 신민당은 여당 민정당과 맞설 수 있는 103석의 거대 야당으로 변모해 전두환 정권과 격렬하게 대립했다. 반면 민한당은 3석짜리 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통일민주당도 신민당과 비슷하게 탄생한 야당이었다.

이민우 신민당 총재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라는 당초 약속과는 달리 내각제 개헌을 수용하는 이른바 ‘이민우 구상’을 전격 발표하자 당은 직선제 개헌파와 내각제 개헌파로 분열했다. 직선제로 대통령을 뽑을 경우 결과에 자신이 없었던 전두환 정권은 마치 사막에서 물을 만난 듯 ‘이민우 구상’을 반겼다. 그러나 내각제는 결과적으로 당시 직선제 개헌에 희망을 걸었던 국민들의 뜻에 반하는 것이었다.

결국 김대중과 김영삼은 신민당 내 자파 의원들을 대거 탈당시킨 뒤 선명 야당의 기치를 내걸고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신민당은 13대 총선에서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한 채 등록이 취소됐다.

이들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국민들은 야당이 야당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반드시 새로운 야당의 출현을 요구한다.

현재 제1야당인 한국당이 문재인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지지율 하락으로 갈팡질팡하는 민주당의 행보도 심히 딱하지만, 한국당 역시 공허한 비판만 쏟아낼 뿐이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반민주당 연합전선’을 만들어 2020 총선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야당이 분열한 상태에서는 총선이 어렵다는 정치공학적 발상만 내놓고 있는 터다.

지금 한국당에게 필요한 것은 반문연대니 하는 여당견제 야당론이 아니다. 혁명적인 전면쇄신을 주장하면서 문 정권과 정책적·이념적으로 분명한 대립각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문 정권이 본격적으로 도입할 ‘반시장’ ‘반자유주의’를 정면으로 반대할 수 있는 선명한 야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와 같은 스탠스로는 여당을 견제하기는커녕 내분으로 세월만 허송할 뿐이다.

물론 과거에 비해 야당의 정치적 지형이 많이 달라져 있는 건 사실이다. 김대중, 김영삼과 같은 확실한 리더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현재와 같은 분열 상태로 있을 경우 2020 총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물으나마나한 일이 될 게다.

내분에 휩싸여 야당다운 야당노릇을 하지 못하는 당을 떠나 새로운 야당을 만드는 것은 혁신에 대한 관성적 대응이 아니라 창조적 파괴다. 그리고 창조적 파괴의 핵심은 사람을 바꾸는 데 있다. 타고 있던 목마에서 잠시 내렸다가 다시 목마에 오르는 ‘회전목마’ 식 정치를 버리지 못하고는 국민마음을 얻기 어렵다.

고재구 회장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