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쓰자마자 한국을 떠나다
한나라 개국공신 장량, '박수칠 때 떠나라'를 실천한 역사적 인물
'떠나야할 때'를 정확히 아는 것...진정한 '고차원적 처세술'

[일요서울 ㅣ 신희철 기자] 박항서 감독,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는 역설적 표현이다. 박항서 감독은 이미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에 버금 가는 영웅이 됐다. 그렇기 때문에 이젠 더더욱 물러날 때를 고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15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마이딘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전 최종 2차전에서 베트남 을 우승으로 이끈 박항서 감독이 우승컵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베트남은 이 경기에서 전반 6분 안둑의 결승 골로 1-0으로 말레이시아를 누르고 승리하며 10년 만에 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뉴시스]
15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마이딘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전 최종 2차전에서 베트남 을 우승으로 이끈 박항서 감독이 우승컵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베트남은 이 경기에서 전반 6분 안둑의 결승 골로 1-0으로 말레이시아를 누르고 승리하며 10년 만에 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뉴시스]

◇ 베트남은 지금 '박항서 신드롬'

베트남은 연일 축제 분위기다. 박항서 감독 부임 이후 국제대회에서 승승장구하더니 결국 동남아시아 최대 국가대항전 축구인 '스즈키 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까지 했다. 박 감독은 이제 '돌풍'을 넘어서 베트남의 '신화'가 됐다. 박 감독은 베트남 정부로부터 막대한 인센티브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에게 더욱 값진 선물은 베트남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와 응원이다. 베트남에서만큼은 세계적인 K-POP가수 '방탄소년단'에 비교되기까지 한다. '박항서 매직', '박항서 신화', '박항서 열풍' 등의 찬사에 이어 이젠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에 다음 가는 영웅으로까지 등극했다. 이처럼 베트남에서 그는 이미 국민적 영웅이다.

박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 베트남은 축구 약체였다. 세계적으론 말할 것도 없고 동남아시아 국가 사이에서도 약체였다.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등에도 밀리는 나라였다. 하지만 1년 2개월 전 박 감독 부임 이후 베트남 축구는 체질부터 바뀌더니 결국 동남아시아 축구 정상까지 탈환했다.

 

◇ '권한과 책임 일임' 베트남 축구협회의 '통 큰' 결정...결국 '박항서 매직'을 일으키다

이러한 박항서 매직의 이면엔 베트남 축구협회의 '통 큰' 결정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기득권을 포기하고 그들은 박 감독에게 전적인 권한을 부여했다. 물론 그에 따른 책임도 박 감독의 몫이었다. 이런 베트남 축구협회의 결정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우리 스포츠계를 보면 기득권을 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학연, 혈연, 지연 등 각종 연줄로 얼키고설킨 것이 스포츠계이다. 게다가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협회가 찾던 1순위 감독도 아니었다. 그들은 원래 일본 감독을 1순위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심지어 박 감독은 2순위도 아닌 3순위였다. 게다가 그동안 감독으로서 이렇다 할 큰 족적도 남긴 경력이 없던 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축구계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진짜 박항서의 팀'을 만들도록 허락했다. 다소 독단적이고 직설적인 성격으로 인해 더이상 한국 축구계에선 입지가 없던 60세의 감독을 말이다.

이런 전폭적 지원 하에 박 감독 또한 자신의 소신과 경력, 경험을 통해 개혁을 펼친다.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의 약한 체력, 집중력 부재, 특히 팽배해 있던 패배 의식을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권한을 일임 받은 만큼 그는 책임을 다했다.

결국 '박항서 매직'은 '통 큰' 베트남 축구협회와 '진취적인' 박 감독의 합작품이었다.

거스 히딩크 전 국가대표팀 감독 [뉴시스]
거스 히딩크 전 국가대표팀 감독 [뉴시스]

◇ 박항서 감독, 히딩크 감독의 '선례' 참고해야

하지만 이제 박 감독은 베트남 감독으로서 이룰 것은 거의 다 이뤘다고 봐야 한다. ▲2017년 11월 M160 CUP 3, 4위전 태국 2-1 격파 ▲2018 AFC U23 챔피언쉽 준우승 ▲2018 아시안게임 4위(이는 무려 44년 만에 동남아국가가 메달권에 진입한 대기록) ▲2018 스즈키컵 우승.

이처럼 박 감독 부임 후 1년 2개월 간 베트남 축구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번 스즈키 컵 우승은 박 감독의 신화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다. 2019년 1월부터 아시안컵 대회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박항서 매직'이라 하더라도 한국ㆍ일본ㆍ사우디ㆍ이란ㆍ우즈벡 등의 정예 맴버가 모두 참가하는 아시안컵 대회에서 베트남은 객관적 한계가 명확하다. 아쉽지만 이제 박 감독에게 남은 것은 '현상 유지' 혹은 '내리막길' 뿐이다.

지난 2002년 히딩크 감독의 행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히딩크 감독 또한 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에 올린 말 그대로 '신화'를 쓴 영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화'를 완성하자마자 감독직을 내려놨다. 대다수 사람들이 당시엔 이 점을 의아해 했다. 앞으로 더 좋은 대우와 국민적 지지와 성원이 따를텐데 그는 왜 그만 뒀을까.

그것은 히딩크 스스로 '떠나야할 때'를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도 대한민국 월드컵 4강 진출은 더이상의 성과를 낼 수 없을 만큼의 최대 성적이었다. 축구 강호들조차 월드컵 4강은 장담하지 못할 대기록이다. 게다가 한국은 직전까지 월드컵 16강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나라였다. 아니 월드컵 본선 1승조차 없던 나라다. 그런 나라를 맡아 4강을 이뤘으니 그에게 더이상 이룰 것은 있을 수도, 있지도 않게 됐다.

그는 '떠나야할 때'를 정확히 판단한 사람이다. 어찌 보면 영악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의 그런 결정으로 인해 그는 아직도 우리 국민들의 기억에 '신화의 영웅'으로만 간직되고 있다. 이 점을 박 감독도 밴치 마킹할 필요가 있다. 안타깝지만 베트남도 이제 더이상 이룰 것이 없다. 2018년 베트남은 2002년 한국과 비슷한 처지다.

 

◇ 장량과 한신의 엇갈린 운명

이처럼 '떠나야할 때'를 알고 결단하는 것의 중요성은 역사적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유방과 함께 한나라를 개국한 공신이었던 장량과 한신은 권력과 미래가 보장된 위치였다. 장량의 부인과 아들마저 ‘이제 고생 끝 부귀영화의 시작’이라며 좋아했다. 그러나 장량은 결단했다. 모든 것을 놓고 초야로 돌아갈 것을 말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결단으로 인해 그와 그의 가족은 피의 숙청을 면할 수 있었다. 장량은 ‘박수칠 때 떠나라’를 몸소 실천한 고차원적 처세술의 주인공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한신은 유방 곁에 계속 남았다. 결말은 모두가 알다시피 한신의 처형으로 끝난다. 개국 공신이자 최 측근인 한신은 결국 유방으로부터 처형 당하게 된다.

장량은 이미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을 이루고 나서 '떠나야할 때'를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유방에게도 영원한 개국 공신이자 은인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떠나야할 때'를 몰랐던 한신은 유방에게 제거해야 할 역적으로 남게 됐다.

 

◇ 박항서 감독도 '떠나야할 때'를 생각해야 할 시점

아쉽지만 박항서 감독도 이제 '떠나야할 때'를 고려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더이상 얻을 것은 적고 잃을 것만 많기 때문이다. 이는 절대 계산적이거나 영악함이 아니다.

베트남 국민들의 가슴 속에 '영원한 국민적 영웅, 신화의 주인공'으로 남는 것도 어찌 보면 박 감독을 사랑하고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베트남 국민들에게 보답하는 방법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박 감독에게 전폭적인 권한을 일임하고 있는 베트남 축구협회가 언제까지나 그런 태도를 견지할 지도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장량과 히딩크가 결단했던 바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 박 감독도 '떠나야할 때'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을 이루고 떠났던 장량과 히딩크가 현재 우리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지 되새겨보자. 어쩌면 이런 결단이야말로 박항서 감독 본인, 베트남 국민, 베트남 축구협회 모두가 '완벽한 신화'의 주인공으로 남는 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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