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철강기업 일군 철인 CEO “‘철의 사나이’ 세계의 신화 되다”


모든 샐러리맨의 꿈은 CEO(최고경영자)다. 하지만 CEO 자리로 이끄는 왕도란 없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찾아내어 전력투구할 뿐이다. 그렇다면 CEO들은 새로운 영역을 어떻게 개척해 나아갈까. 최근 출간된 (좋은 책 만들기)는 성공한 CEO16인의 사례를 통해 ‘셀프 브랜딩’을 이정표로 제시한다. 이에 [일요서울]은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을 필두로 최고 CEO들의 경영 브랜딩에 대해 알아본다. 이번호는 포스코 박태준 명예회장의 이야기다.

“지금도 우향우 정신이 필요합니다. 우향우란 사심 없이 헌신하는 것입니다. 무한경쟁, 아니, 사생결단의 국제경쟁시대일수록 기업들이 이런 우향우 정신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2008년 1월 중순 일본 규수에 머물고 있던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을 찾았을 때 박 회장은 헌신성을 강조했다. 우향우 정신은 1970년대 초 박 회장이 포항제철소 건설을 밀어붙일 때 한 말에서 비롯됐다.

2006년 가을 포스코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파이넥스 2공장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파이넥스 공장은 박태준 명예회장의 ‘우향우 정신’이 여전히 살아있는 곳입니다. 1968년 영일만의 모래벌판에 포항제철소를 지을 당시 박태준 사장은 이렇게 말했죠. ‘만일 실패하면 전 임직원이 바로 우향우해서 저 포항 앞바다에 빠져 죽자.’”

당시 박태준은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모래벌판에 전 사원을 집합시켰다.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배상금(대일 청구권 자금)을 포철 1기 건설에 투입하는 그의 심정은 비장했다.

“우리 조상의 혈세로 짓는 제철소입니다. 실패하면 조상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 목숨 걸고 일합시다. 실패하면 우향우해서 모두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읍시다.”

‘꿈의 기술’로 통하는 파이넥스 공법을 개발해 보라고 포스코에 권한 사람도 박 회장이다. 1992년 정가에 몸담고 있던 그는 포스코에 “고로(용광로) 없이 쇠를 만드는 신공법을 개발해 보라”고 권유했다. 21세기에는 환경문제로 고로 방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선견이었다.

포스코가 파이넥스 공법을 개발하기까지 쇳물은 고로에서만 뽑아냈다. 14세기 이래 고로 방식은 제철공법의 대명사였다. 포스코는 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당시 언론들은 이 공법에 대해 “포스코가 순수 자체 기술로 개발한 파이넥스는 지난 100년간 사용했던 용광로를 대체하는 획기적인 기술”이라고 보도했다.


“박태준을 수입하면 되겠네”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 지금도 포항제철소 구내 곳곳에 걸려 있는 박 회장 재직시절의 표어다. 일관 제철소 건설은 자유당 정부 시절부터 다섯 번이나 시도됐지만 번번이 무산됐었다. 국내 외 전문가와 언론 매체들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기업인 중 박 회장이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도 한국에서 제철소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경제의 기반이 취약하다는 게 이유였다. 일본도 메이지시대 때 시작해 실질적으로는 제 2차 세계대전 후에 성공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박태준은 1927년 부산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 와세다대 기계공학과 재학 중 해방을 맞은 그는 귀국 후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남조선 경비사관학교에 입교한다. 여기서 그는 포스코 건설을 그에게 맡긴 박정희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박정희는 그러나 정작 5·16을 일으키면서 박태준을 배제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국가적인 이유와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 국가적으로는 우리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면 우리 군을 제대로 이끌어나갈 지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지. 개인적으로는 내가 실패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 내 처자를 돌봐달라고 자네한테 부탁하려고 했어.”

말을 마친 박정희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박태준은 콧등이 시큰했다고 회고했다.

군 시절 청년 장교 박태준은 좌우명을 이렇게 정했다. ‘짧은 인생을 영원한 조국에, 절대적 절망은 없다.’

포스코를 일으켜 세운 주역이자 격변기 한국 정치·경제사의 산 증인인 박 회장에게 젊은 세대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다’는 청년 실업자가 넘쳐난다고 합니다. 딱한 일이죠.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세상을 너무 쉽게 살려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이런 젊은이들에게 경제성장, 민주화의 혜택을 주고 싶군요. ‘항상 10년 뒤 자기 모습을 그려보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자료제공:좋은책만들기 (저자:이필재)]


#박태준의 HOW to Brand

▶ 원칙을 포기하지 마라.
“제철소 건설 당시 나는 건설공기 단축 및 건설단가 최소화, 부실공사 불허 등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이 원칙을 양보하지 않았기에 오늘의 포스코가 있다.”
포항제철소를 지을 당시 박 회장은 부실공사를 적대행위로 규정했다. “현장에 나오면 나는 사장이 아니라 전쟁터의 소대장”이라고 선언했다. 제강공장 기초공사 현장에서 강철파일을 부실하게 박은 것을 발견하고는 안전모를 쓴 일본 설비회사 현장감독의 머리를 지휘봉으로 내려친 적도 있다. 그가 “전쟁터의 소대장에겐 인격이 없다”면서 독려한 덕에 제철소 공사 현장엔 부실이 발 붙일 수 없었다.

▶ 신뢰를 얻으면 모두 얻는다.
“포스코를 짓는 데 필요한 기술을 일본에서 도입하기 위해 나는 일본인들의 영혼과 신뢰를 얻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은 박 회장을 절대적으로 신임하고 그에게 쏠리는 외압을 막아줬다. 5·16후 정치에 참여하라는 박정희의 요청을 거절한 박태준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소신에 따라 포철 사장으로 있으면서 3선 개헌 지지성명에도 서명하지 않았다. 그래도 박정희는 그를 내버려뒀다. 미 스탠포드 대 경영대학원의 분석대로 포스코는 박정희의 의지와 박태준의 리더십이 결합해 거둔 성공이었다.

▶ 사심 없이 헌신하라.
“포스코의 우향우 정신은 지금도 필요하다. 무한경쟁 시대가 사심 없이 헌신하는 기업인을 부르고 있다.”
포스코엔 여전히 우향우 정신이 살아 있다. 박 회장은 포스코의 울타리를 넘어 이 정신을 다른 기업으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한경쟁 사생결단의 국제경쟁시대일수록 기업들이 우향우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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