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펜타곤을 공격했다. 주동자는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였다. 이 테러로 2996명이 사망하고 최소 6261명이 부상당했다. 세계 역사상 최악의 테러 사건이다. 세계는 경악했다. 
미국이 공격받던 시각,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플로리다주 사라소타의 한 초등학교 수업을 참관하고 있었다. 부시 대통령은 앤드류 키드 보좌관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듣고 7분 뒤 교실을 떠났다. 훗날 왜 7분간 교실에 있었냐는 질문에 부시 대통령은 “학생들과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시간을 약간 지체했다”고 말했다.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은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낭독하고 있었다. “조국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그동안...”이라고 하는 순간 총탄 소리가 들렸다. 문세광이 박 대통령을 저격하려고 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은 연설대 뒤에 몸을 숨겼다. 그러나 단상 옆에 앉아 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는 총에 맞아 쓰러졌다. 저격범 문세광이 체포되고 육 여사가 후송된 후 박 대통령은 다시 연단에 올라 “여러분,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하겠습니다”라며 경축사를 계속 낭독했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 감독이 10년 만에 베트남을 동남아시아 최강에 올려놓았다. 스즈키컵 결승 2차전 전반 5분 선제골이 터지자 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그러나 박 감독은 들뜨지 않았다. 선수들을 향해 두 팔을 아래쪽으로 흔들며 진정하라고 했다. 박 감독은 또 베트남 선수가 반칙으로 옐로카드를 받고 주심에게 강하게 항의하자 다시 한 번 ‘냉정’을 주문했다. 박 감독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그때서야 환호했다. 특유의 열정적 모션으로 코치진과 포옹하며 기쁨을 나누었다.  
 
미국이 공격당하고 있는 긴급한 상황에서 평정심 잃지 않은 부시 대통령의 행동 덕에 미국 국민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고 사태를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수습할 수 있었다. 만일 그가 보고를 받은 즉시 그 자리에서 일어나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부인이 총에 맞아 병원에 후송되는 와중에 평정심 잃지 않고 경축사를 끝까지 읽은 박정희 대통령의 의연함 덕에 한국 국민들은 공포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만일 그가 문세광의 총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국립극장에서 경축사를 다 읽지도 않은 채 현장을 떠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박항서 감독이 골을 넣어 들떠있는 선수들에게 자제를 지시하고 심판에게 대드는 선수를 말렸기에 베트남은 말레이시아의 파상 공격을 막아내고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만일 박 감독이 선수들을 자제시키지 않고 심판에게 대든 선수를 말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도자가 위기 상황에서 취하는 행동이 국민들 또는 선수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들이다.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 김 모 수사관이 사찰과 관련된 각종 내용들을 폭로하자 청와대가 즉각 그의 실명까지 공개한 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겸찰에 고발했다. 이에 앞서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김 수사관의 행위에 대해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 곧 불순물은 가라앉을 것이고 진실은 명료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분히 감정적인 대응으로 보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일은 청와대가 얼마든지 조용하지만 신속하고 단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것이 개인의 일탈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되레 평정심을 잃고 시끄럽게 대응하다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느낌이다.    
 
청와대는 대한민국의 얼굴이고 청와대 공보라인은 대통령의 입이다. 청와대가 하는 말이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다. 그렇기에 청와대는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은 동요하고 불안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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