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방송인으로 더 유명한 유시민은 보건복지부장관 시절 경험을 들어 공무원들이 장관을 뺑뺑이 돌린다면서 장관이 행사 다니기 시작하면 그 부처는 망하는 거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유시민의 말은 이렇다. 공무원들은 장관 일정을 짜면서 가서 기분 좋을 행사장에 보내고. 집무실에서 결재하고 고민할 시간이 없도록 바쁘게 외부로 돌린다. 장관을 밖에 내돌리고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서류를 작성하고 결재 받아 장관을 길들인다.

유은혜 부총리가 강릉펜션 사건을 두고 현장체험학습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대책을 발표해서 비판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에 수학여행을 금지했는데, 강릉사고에 체험학습을 걸고넘어지니 욕을 안 먹을 수가 없다. 교육부가 내놓은 현장체험학습 자제령은 전형적인 공무원식 일처리, 땜질처방에 불과하다. 교육부 공무원들은 학교를 단속하고 학생들을 교실에 잡아둬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자신들 업무영역에 학교는 있고 강릉펜션은 없으니까.

강릉펜션 사고처럼 사회적 파장이 큰 사고가 나면 관료들은 바쁘게 움직인다. 언론이, 세상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을 것을 안다. 어떤 위치에 어느 각도로 서 있어야 책임 논란을 피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대책을 준비한다. 마침내 언론이 희생양 찾기에 들어가면 눈 가리고 아웅하는 대책을 내놓는다. 장관은 관료들이 준비한 욕 들어먹기 딱 좋은 대책을 읽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욕을 먹고 세상은 다른 사건으로 관심을 돌린다.

유 부총리는 이번 사건 대처과정에서 두 가지 실수를 했다. 우선, 대통령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 못한 것이다. 대통령이 유 부총리를 강릉에 급파한 것은 교육·사회·문화정책을 총괄하는 사회부총리 역할을 염두에 둔 조치로 봐야 한다. 부총리 임명장을 수여하면서도 그동안 경제부총리에 비해 사회부총리의 역할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아쉬움과 신임 부총리에 대한 각별한 기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걸 흘려들었다

장관으로서의 통찰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국민과 대통령을 대리하는 자신의 역할을 자각했다면 나름의 통찰력으로 관료들이 준비한 대책을 걸러냈어야 했다. 대통령이 가라고 하니 현장에 오긴 했는데, 자기 역할도 제대로 파악 못하고 있었으니 집권여당의 재선의원인 장관도 별 수 없이 관료들이 준비해 준 대로 읽고 혼자 욕을 먹게 되었다. 임명된 지 갓 두 달 된 유 부총리로서는 뼈아픈 통과의례를 겪었다.

성공하는 장관에는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 참여정부 당시 중앙인사위원회에서 작성했던 민간인 출신 고위공직자 성공적 공직적응을 위한 가이드에서 참고할 만한 것들이 있다. 이 보고서는 공공부문 경험이 적은 신임 장관들이 공직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장관의 역할, 해야 할 일, 어떤 자질과 능력이 필요하고 어떤 전략을 가지고 일해야 박수 속에서 명예롭게 퇴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지침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성공한 장관들은 갈등조정능력, 부처 장악력, 소신과 비전, 경험과 전문성, 실행력, 부하직원에 대한 애정과 인간미까지 갖춘 강직하고 청렴한 초인이어야 한다. 초인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는 장관의 자질 중에 하나가 통찰력이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은 소신과 비전에서 나온다. 장관은 통찰력이 있어야 현안에 휘둘리지 않고 부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 뚜렷한 소신과 비전에서 비롯된 통찰력이 없는 장관은 현안에 밝은 관료들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유 부총리는 지금이라도 그동안 갈고 닦아 길러 놓은 자신만의 소신과 비전을 드러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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