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분석에서 제도의 역할에 중심을 두는 사고방식을 제도주의라고 한다. 즉 제도가 정치현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으로 제도의 설계에 따라 정치현실이 극과 극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주의에 입각해서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군소 정당이고, 또한 같은 제도주의에 입각해서 현행 소선거구 비례대표 병립제를 유지하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거대 정당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정당들은 이와 같이 제도주의를 신봉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철저하게 당리당략에 입각해 있다. 국민들이 몰랐으면, 아니면 모르겠거니 생각하며 자신들의 꼼수를 단식을 하면서, 그리고 그러한 단식을 위로하는 척 하면서 관철하려 하는 것이다.

어쨌든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의 단식 효과가 당장 제도로 관철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의 단식이 연동형비례대표제라는 아직은 많이 생소한 선거제도가 국민들에게 회자되기 시작한 점은 긍정적 효과라면 긍정적 효과일 것이다. 따라서 이 선거제도를 어떻게 잘 포장해서 국민들 앞에 내어 놓느냐가 이들에게는 최대 관건인 것이다.

그렇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나라 독일에서는 이 선거제도가 어떠한 정치현실을 만들어 내고 있을까? 독일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것은 엄격하게 말하면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이다. 작년 924일에 실시된 정수 598명을 선출하는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독일은 모두 709명의 연방 하원의원을 선출했다. , 정수보다 111석이나 초과된 의석이 배분된 것이다.

순수 비례대표제로 국회의원을 선출했던 바이마르공화국 시대의 정당난립과 정국 혼란, 그리고 히틀러의 정권 장악을 통한 혹독한 독재시대를 경험했던 독일은 전후 의회 내 정당의 난립을 막고 안정적인 정부를 수립하겠다는 목표로 설계한 선거제도가 인물선거를 결합한 비례제라는 현재의 선거제도다.

단순단수제와 비례대표제의 특징을 혼합한 독일의 선거제도는 1949년 제도도입 시에는 11표제로 시행되었지만, 1953년 선거부터는 12표제의 현행방식으로 변경되었고, 201353일부터는 당선인 결정방식을 변경하여 초과의석은 물론 비례성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보정의석제도가 추가되었다. 그 선거제도의 결과로 작년 709명의 연방 하원의원이 탄생한 것이다.

작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제1당인 기민/기사연합은 32.9%의 정당득표율로 전체의석의 34.7% 의석인 246석을 획득하였고, 2당인 사민당은 20.5%의 정당득표율로 전체의석의 21.6% 의석인 153석을 획득하였다. 그 외의 정당들은 독일대안당이 12.6%의 정당득표율로 94, 자민당이 10.7%의 정당득표율로 80, 좌파당이 9.2%의 정당득표율로 69, 녹색당이 8.9%의 정당득표율로 67석을 배분받았다.

내각책임제 국가인 독일은 원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없어 연합정부를 꾸려야 했다. 원내 과반수 의석인 355석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민/기사연합은 2개의 정당과 연합해야 했고, 사민당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3개의 정당과 연합해야 했다. 사실상 대연정이 아니면 정부의 출범이 불가능한 선거결과였다.

결국 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의 대연정으로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선거가 끝나고 거의 6개월이 다되어가던 올해 314일의 일이다. 이러한 독일의 현실을 직시하면 연동형비례대표제로 국민을 설득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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