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장려’ 아닌 ‘모든 세대 삶의 질 향상’으로 노선 선회 

왼쪽부터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김현미 국토부 장관 [뉴시스]
왼쪽부터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김현미 국토부 장관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저출산 대책이 ‘출산 장려’가 아닌 ‘삶의 질’ 향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 7일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을 확정 및 발표했다. 해당 로드맵에는 자녀에게 아버지 성을 물려주는 부성주의 원칙 대신 ‘부모협의 원칙’이 포함돼 관심을 끌었다.

 

男 54.5% 女 77.1% ‘부성주의 원칙 불합리하다’ 
민법 제781조 2005년 호주제 폐지 개정 이후 다시 ‘논란’


문재인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이하 저출산위)가 지난 7일 위원회 심의를 거쳐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을 확정·발표했다. 해당 로드맵은 정부 차원에서 비혼 출산·양육에 차별을 야기하는 불합리한 법 제도를 개선하고 사회적 인식을 개선한다는 취지를 담았다. 

이와 더불어 저출산 추세 완화를 위해 ‘출산 장려’ 위주의 정책을 탈피하고 모든 세대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꾀했다.

김상희 저출산위 부위원장은 이날 “지금까지 대책은 부처에서 내놓은 정책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데 그쳐 목표를 달성에 효과적이지 못했다”면서 “(이를 반성하고자) 중요도와 시급도가 낮은 부처 과제들은 과감히 털어내고 기존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중 역량을 집중해야 할 핵심 과제를 새로 뽑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부성(父姓) 우선주의→부모협의 원칙 전환 ▲혼인 중·혼인 외 출생자 구별 원칙 개선 ▲주민동록 등·초본 표기상 ‘계모, 계부, 배우자의 자녀’ 등의 미표기 ▲보호출산제(가칭) 도입 등의 방안을 추진한다. 

 

혼인신고 시→출생신고 시
‘협의 시점’ 변화도 물망

 

세간의 이목을 끈 것은 자녀의 성을 결정할 때 아버지의 성을 우선적으로 따르도록 한 ‘부성 우선주의’를 부모의 협의를 통해 결정한다는 ‘부모협의 원칙’으로 개정한 부분이다.

당초 민법 제781조 제1항은 “자(子)는 부(父)의 성(姓)과 본(本)을 따르고 부가(父家)에 입적(入籍)한다”고 규정했으나 이후 2005년 호주제 폐지 운동이 일어나면서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시 모(母)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개정됐다. 

하지만 이 역시 태어난 아이가 ‘원칙적으로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른다는 ‘부성주의 원칙’이 내포돼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한 ‘협의 시점’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르려면 ‘혼인신고 시’ 협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는 대목 때문이다.

이에 관해 이창준 저출산위 정책조정관은 지난 6일 진행된 사전설명회에서 “부성을 우선으로 따르는 게 아니라 부모가 협의해 결정하도록 하고, 협의 시점도 결혼할 때가 아니라 아이가 출생했을 때 어느 성을 따를 것인지에 대해 결정하는 부분에 관해 법을 개정할 것”이며 “중장기적으로는 아이가 출생했을 때 바로 등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논의가 진행된 데에는 부성 우선주의를 불합리하다 여기는 시대적 흐름도 작용됐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지난 5월 10일 자녀의 성 결정 제도 관련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지난 3월 14일부터 약 4주 동안 총 3303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해당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녀의 성 결정에 있어 부성주의 원칙이 불합리하다’는 응답은 67.6%로 집계됐다. 이는 앞서 진행된 2013년 당시보다 5.7% 늘어난 수치다. 

특히 남성들의 인식 변화가 눈에 띄었다. ‘불합리하다’고 응답한 이들의 성별은 남성 54.5%, 여성 77.1%가 나타났는데, 남성의 경우 2013년 조사 결과보다 7.6% 증가했다.

20대 남성 A씨는 자녀의 성을 협의를 통해 결정한다는 개정안에 관한 생각을 묻자 “괜찮다”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선택권이 생기는 것인데 나쁠 것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 밖에도 미혼 여성 K씨는 “(자녀가) 아버지성만 따르는 것이 남녀 차별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개정이 된다면) 성평등이 실현될 것 같다”고 답변했다.
다만 이를 통해 저출산 문제가 개선될 수 있을지에 관한 질문에는 “마음에 와 닿지는 않는다”면서 “성을 물려주기 위해 자식을 낳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회의를 표했다.

 

부성주의 원칙 담긴
민법 제781조 개정 촉구

 

부성주의 원칙은 다문화·한부모 가정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병폐도 있었다. 
미혼모의 경우 자신의 성을 따라 아이의 이름을 짓고 양육하더라도 이후 친부가 자녀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면 부성주의 원칙에 따라 자녀의 성이 친부의 성을 따라 바뀐다. 

현행 민법 제781조 제5항은 “혼인 외 출생자가 인지된 경우 자는 부모의 협의에 따라 종전의 성과 본을 계속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부모가 협의할 수 없거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한 경우에는 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종전의 성과 본을 계속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즉, 자녀가 이전의 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별도의 ‘법원’ 허가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이 부분이 “혼인 외의 출생자가 인지된 경우 자는 부모의 협의에 따라 종전의 성과 본 ‘또는’ 부의 성과 본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부모가 협의할 수 없거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한 경우에는 ‘종전의 성과 본을 사용하되’ 법원의 허가를 받아 ‘부의’ 성과 본을 사용할 수 있다”고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전의 성을 유지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해당 로드맵이 포함하는 부성주의 원칙 개정 방향으로 인해 사회가 다문화·한부모 가정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받아들이고, 성평등 문화로 나아가는 것에 관해서는 대다수가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구현되기 위해선 많은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요구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부성주의 원칙이 ‘아들 선호 사상’ 등 성 차별 문화를 초래한 것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인정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관념과 문화가 쉽게 사라질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호주제 폐지를 논하며 2005년 법 개정 이후 자녀가 부모 중 누구의 성을 따를지 정할 수 있었지만 별로 이용되지 않은 점을 들며 해당 정책이 마련된다 해도 실질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라는 시각을 내비쳤다.

한편 저출산위는 해당 로드맵에서 ▲함께 돌보고 함께 일하는 사회(저출산 분야) ▲함께 만들어가는 행복한 노후(고령화 분야) ▲인구변화 적극 대비 등 3대 분야를 설정하고 세부 과제 12개를 지정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