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타임스의 11월15일자 사설은 미국의 ‘완전한 비핵화’ 요구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변화된 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맞는 지적이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도 12월 4일 북한이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의 “비핵화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비핵화 진전이 ‘전혀’ 없는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세 사람의 상대편에 대한 착각과 오판에 기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강력한 대북 경제 제재와 외교적 압박이 김정은의 핵·미사일 욕망을 좌절시켰다고 오판했다. 그는 김이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선언한 것이 핵을 포기키로 결심한 걸로 착각했다. 그래서 그는 회담 후 트위터를 통해 “더 이상 북한으로부터 핵 위협은 없다!” 라며 섣불리 단정했다.

하지만 미국 상원 외교위 동아태소위의 민주당 소속 간사인 에드워드 마키 의원은 김정은의 싱가포르 회담 목적이 핵 포기에 있지 않고 핵 보유국 지위 유지에 있다고 11월 14일 반박했다. 그는 트럼프가 김에게 속아 넘어가 “핵 프로그램을 계속하도록 무료 허가권”을 넘겨주었다고 비판했다. 마키 상원의원의 비판은 대북 제재와 압력이 김정은의 핵·미사일 야욕을 좌절시켰다는 트럼프의 속단이 오판이었음을 일깨워준다.

북핵 폐기가 교착상태로 빠진 데는 김정은의 오판도 작용했다. 김은 핵·미사일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도록 개발되면 트럼프가 겁을 먹고 대북제재를 풀며 평화협정을 체결,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리라고 착각했다. 김은 한 손엔 핵·미사일을 쥐고 겁주면서 다른 손엔 가짜 비핵화 미끼를 들고 정상회담하게 되면 미국의 대북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고 오판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지난 25년간 북에 속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북의 상습적 기만에 넘어갈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대북제재가 김정은을 굴복시켰다고 착각하고 외교성과로 자부하면서 김이 비핵화에 호응하리라 오판한다. 그는 싱가포르 회담 전엔 김을 “병든 강아지”라고 하더니 이젠 “똑똑하다” “속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치켜세운다. 그러나 김은 핵 실험장 입구 폭파 쇼를 벌이면 트럼프가 대북 제재를 풀어 주리라 착각하면서 ‘선 제재 해제 ­ 후 비핵화’를 고집한다. 여기에 두 사람의 오판으로 비핵화는 트럼프의 ‘선 비핵화’와 김정은의 ‘선 제재 해제’ 요구로 맞서 겉돈다.

‘완전한 비핵화’ 진전이 “전혀” 없는 또 다른 연유로는 김정은에 대한 문 대통령의 오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 노릇해 주며 남북 철도·도로 연결 공사,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관광 재개 등 퍼주기를 서둘러 주면 김이 비핵화에 호응해 올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대북 경제지원은 유엔 등 국제사회의 제재에 막혀 있다. 설사 대북제재가 해제되어 철도·도로 공사 등 수백조 원 퍼주기에 나선다 해도 김은 핵·미사일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김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처럼 퍼주는 것만 받아 챙길 뿐, 핵·미사일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데서 그렇다. 김에 대한 문 대통령의 기대 또한 착각이다.

‘완전한 비핵화’는 저와 같은 트럼프·김정은·문재인 세 사람의 착각과 오판으로 인해 ‘전혀’ 진전될 수 없다. 비핵화는 장기전으로 들어갔다. 북핵 제거를 위한 방법은 단 한 가지만 남았다. ‘선 비핵화 ­ 후 제재 해제’ 원칙을 끝까지 밀고 가는 것뿐이다. 김의 숨통이 막힐 정도로 대북 경제·외교 제재의 끈을 바짝 조여 가는 길 밖에 없다. 북핵은 대북 퍼주기나 비위맞추기로 제거될 수 없다. 상대편에 대한 오판은 재앙을 부른다. 오직 강력한 제재만이 비핵화의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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