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한 시절은 다 잊었나…안공일세 (眼空一世)?

마약 투여, 음란물 유통 방조, 폭행, 욕설 등 혐의를 받고 있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전 회장이 지난달 16일 오전 경기 수원남부경찰서에서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으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마약 투여, 음란물 유통 방조, 폭행, 욕설 등 혐의를 받고 있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전 회장이 지난달 16일 오전 경기 수원남부경찰서에서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으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우리나라 재벌(財閥)들이 갑(甲)질을 하는 것은 그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자본과 권력을 대물림 받으면서 스스로를 ‘특권층’ 으로 인식하며 성장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런데 재벌로 태어나지도 않았음에도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성장한 ‘자수성가(自手成家) 형’ 총수 일가의 도덕적 해이가 반복되고 있어 반드시 재벌 일가의 성장 배경만이 ‘갑질’ 문제의 발생 원인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양진호부터 정운호·정우현 회장 논란까지…
 “독단적 성향과 제왕적 경영 방식이 문제”

대표적으로 사회적 충격을 던져준 일명 ‘양진호 사건’이 있다. 직원 폭행 사건을 시작으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전 회장의 엽기적인 행각이 하나둘 폭로되면서 전국민적 분노가 일었다.

현재 양진호 회장이 적용받고 있는 혐의는 ▲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특례법 위반(특수강간) ▲ 상습폭행 ▲ 강요 ▲ 동물보호법위반 ▲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위반(대마) ▲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위반 등이다.

검찰에 따르면 양진호 회장은 지난 2013년 6월쯤 여직원을 수십차례 때리고, 성폭행한 혐의(특수강간)를 받고 있다. 또한 2016년 가을에는 홍천 연수원에서 직원들과 허가받지 않은 도검과 석궁으로 살아있는 닭을 죽여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도 있다.

검찰은 현재 기소한 혐의 외에도 음란물 유통 방조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은 양진호 회장이 실소유주인 웹하드(Webhard) 업체 파일노리와 위디스크에 대해 웹하드 관련 저작권법위반, 음란물유포 등을 분리해 보강 수사를 벌이고 있다.

양진호 회장은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 자부심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경험해 봤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성공한 뒤에는 남 보다 더한 악랄한 범죄 행위를 저질렀던 것이다.

자수성가 형 총수들이 논란을 일으킨 사례는 비일비재했다. 남대문 시장과 동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해 모은 종잣돈으로 화장품 성공신화를 쓴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반복되는 일탈행위

정운호 더페이스샵을 창업해 2년 만에 1500억 원의 매출을 올려 저가 화장품 브랜드 신화를 일궜고,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이사를 맡으며 2800여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정 전 대표는 지난 2016년 ‘도박·로비의혹’ 으로 논란을 불렀다. 당시 정 대표는 100억원 대 상습 원정도박과 변호사 폭행에 이어 ‘법조 비리’ 논란까지 불러일으키면서 몰락했다.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 사건 역시 앞선 사건들과 같은 선상에서 평가된다. 정 전 회장은 지난 1974년 32살의 나이에 장인이 운영하던 섬유 도매업체에 들어가 장사에 눈을 떴다고 알려진다.

이후 정우현 전 회장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500여개 미스터피자 매장을 운영하며 ‘피자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경비원 폭행 ‘갑질 논란’은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정 전 회장의 경비원 폭행 논란이 공론화되자 전국 미스터피자 가맹점주들은 그가 평소 행했던 ‘갑질’사례들을 연이어 폭로해 비판을 불렀다.

당시 정 전 회장이 자서전 등을 통해 “성공하려면 을이 되어 봐야 한다”, “갑처럼 행동하면 그때부터 실패의 시작이다”라고 언급했던 내용도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비난은 더욱 증폭했다.

대표적인 사건을 제외 하더라도 자수성가 형 총수일가의 일탈은 여럿 더 찾아볼 수 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한 승무원을 상대로 폭언을 하고 수차례 음식을 재주문하는 갑질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셀트리온 측은 사실이 아니라며 전면 반박했지만 서로의 말이 달라 진실공방을 벌였다.

서 회장은 또 셀트리온헬스케어가 분식회계 의혹으로, 금융감독원이 감리에 나서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모양새다.

최병오 회장의 패션그룹 형지도 지난 2013년 협력업체를 상대로 ‘갑질’을 했다는 주장이 나와 비난을 샀다.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자수성가 기업가 권성문 전 KTB 회장도 직원 폭행 논란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일진그룹 허진규 회장, 일진글로벌 이상일 회장도 한 차례씩 직원 갑질 의혹을 받았다.

변질돼버린 자부심

특히 가맹사업을 영위하는 ‘대표, 회장님’ 들의 일탈 행위가 반복적으로 일어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프랜차이즈 사업이 단기간, 고성장이 자주 목격되는 만큼 성공했지만, 일탈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는 지적이다.

권원강 교촌치킨 회장은 그동안 작은 치킨집으로 시작해 성공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6촌 관계인 임원이 한 직원을 상대로 폭행을 저지른 영상이 공개되면서 질타를 받았다.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의 최호식 회장의 여직원 성추행 논란, 윤홍근 BBQ 회장의 폭언과 욕설 의혹, 박현종 BHC 회장의 가맹점 갑질 분쟁, 봉구스밥버거 오세린 전 대표의 마약사건 등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지난 과거를 잊은 채 과오를 저지르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자수성가를 일군 사람들이 갖는 ‘독단적 성향’ 과 ‘제왕적 경영 방식’ 때문이라지적한다. 

성공을 경험하고 목도한 창업주다 보니 자신이 성공신화의 주인공이라는 높은 자부심에 빠진 채, 자신의 사업 영역이 확장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해왔던 방식만을 고수하려 든다는 것이다.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한 자신의 성과를 믿지 못해 불안해하고, 안달하며 주변을 괴롭히는 부류도 있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대기업 집단과 비교해 주변의 감시와 법적 규제가 적다보니 법의 사각지대에서 제왕적 위치에서 각종 갑질을 일삼을 수 있다고 한다.

자수성가 기업인을 상사로 둔 적 있다고 밝힌 한 업계관계자는 “바닥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자부심’을 갖고, 성격이 드세진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의 자부심이 ‘특권의식’으로 변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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