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과 안보참사
와신상담과 안보참사
  •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 입력 2018-12-28 13:55
  • 승인 2018.12.2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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섶에 누워 쓸개를 맛본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故事)의 주인공은 중국 춘추오패 중 하나인 월왕 구천(勾踐)이다. 구천은 회계산에서 오왕 부차(夫差)에게 당한 치욕을 갚기 위해 도읍을 제기에서 회계로 옮기기로 하고 군사 범려(范蠡)에게 새로운 도읍 건설을 명했다.

범려는 서북쪽에 특별히 성문을 하나 더 만들고, 상국인 오나라에는 ‘조공을 바칠 길을 닦는다’고 소문을 냈다. 오왕 부차는 그 말을 듣고 기뻐했지만, 그것은 오나라를 신속히 공격하기 위한 군사도로였던 것이다. 결국 월나라는 오나라의 허를 찔러 공격해서 오왕 부차는 고소산에서 자결할 수밖에 없었다.

2018년은 ‘안보 참사의 해’였다. 그 구체적인 사례는 ‘9·19 남북군사합의’다. 남북 간 군사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북한 비핵화’인데, 9·19 군사합의 어디에도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 없다. 또한 9·19 군사합의는 사실상 NLL(서해 북방한계선) 포기를 위한 합의이다. 전방 GP와 임진강 근처 철책선을 없앤 것은 적에게 남침하라고 길을 터준 셈이다.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범려가 닦았던 ‘조공의 길’처럼.

급기야 안보를 걱정하는 예비역 장성 400 여 명은 지난 11월 21일 “9·19 군사분야 합의는 지상·공중·해상에서 한국군의 감시·정찰·조기경보 능력과 도발대응 능력을 결정적으로 제약하고 NLL을 포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지금은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을 서두를 때가 아니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폐기와 변화를 확인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가안보는 국민과 군인의 일치된 상무정신, 즉 자유수호를 위한 정신전력과 군 및 정보당국의 정보력 그리고 강력한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 지켜진다.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사례를 우리 고대사에서 살펴보자. 먼저 정신전력에 관한 사례이다. 삼한일통의 주역인 김유신은 668년 고구려 정벌을 앞두고 나당연합군의 책임자인 아우 김흠순과 조카 김인문에게 당부했다.

“반드시 위로는 천도(天道)를 얻고, 아래로는 지리(地理)의 이치를 얻으며, 중간으로는 인심(人心)을 얻은 후에라야 승리할 수 있다. 지금 신라는 충절과 신의 때문에 생존했고(今我國以忠信而存), 백제는 오만 때문에 망했으며(百濟以慠慢而亡), 고구려는 교만 때문에 위태롭다(高句麗以驕滿而殆). 지금 우리의 곧음으로써 저들의 굽은 곳을 친다면 뜻대로 될 것이다.”

김유신은 전쟁 승패의 제1 원인이 군사력과 물질적 토대 보다는 민과 군의 ‘정신전력’에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다음은 군의 정보전에 관한 사례이다. 백제 성왕은 나제동맹으로 백제가 고구려로부터 회복한 한강 하류지역을 신라 진흥왕이 점령하자, 관산성(管山城: 옥천)을 공격하였다. 554년 7월에 태자 여창(餘昌: 후에 위덕왕)이 초반 전투에서 승리하자, 성왕은 방심하여 50기만 대동하고 태자가 있는 전선으로 격려차 방문하다가 기습을 당해 전사했다. 전투에서 적의 정세를 파악하는 정보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성왕은 깨닫지 못한 우(愚)를 범한 것이다.

반대로 문무대왕은 동북아 국제정세를 잘 읽었다. 669년 9월에 실크로드의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당과 토번(吐藩: 티베트) 간에 전쟁이 발발했고, 안동도호 설인귀는 휘하 병력을 이끌고 청해(靑海) 방면으로 이동했다. 한반도에 힘의 공백상태가 발생했다는 첩보를 받은 문무대왕은 압록강 북방의 오골성(烏骨城)을 선제공격하여 7년 동안의 나당전쟁(670~676)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국민의 대북 경계심 약화, 정부의 안보 위기 불감증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북한이 내건 위장평화 깃발에 속아 문재인 정부는 한미동맹을 흔들고 민족공조 차원에서 김정은을 두둔하고 있다. 현 정부가 추진 중인 군·국정원의 대북정보 무력화, 축소지향적 국방개혁, 연합훈련 중단,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환수는 올해 발생한 안보 실정 중 하나다. 그 중 남북 군사합의서는 북측으로부터의 기습을 허용할 수 있게 만든 최악의 실책이다.

최근 시리아에서의 미군철수 결정이 한반도 안보에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 7세기는 동북아시아에서 수많은 전쟁이 거듭되는 전쟁의 시대였다. 이 시점에 한국판 춘추전국시대였던 삼국시대의 ‘7세기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방부가 내년에 발간할 ‘2018 국방백서’에서 북한 정권과 군을 적으로 지칭하는 문구를 삭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외교를 담당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지나치게 앞서가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국민이 불안하다.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