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이젠 ‘이영자’도 ‘이남자’도 아니다. ‘전전전’이다”. 기해년 새해를 맞이한 여의도 정가에 떠도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지지층이었던 ‘이영자(20대·영남·자영업자층)’, 특히 이남자(20대 남자)’의 변심이 ‘전 세대·전 지역·전 계층’의 이탈로 확산됐다는 뜻이다. 최근 발표된 모든 여론조사가 이를 방증한다. 반면 보수 진영은 반사 이익을 누리는 모습이다. 차갑던 여론이 돌아서기 시작했고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전 연령대에서 상승하고 있다. 기존의 친문(親文) 지지층이 반문(反文)이 된 데 이어 ‘보수화’되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에 일요서울은 각 연령대별 ‘변심의 이유’를 짚어봤다. 그 첫 번째로 문재인 정부의 ‘핵심 지지층’에서 ‘핵심 반대층’으로 돌아선 2030세대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이었던 2017년 2월 2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17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파도를 타고 있다.

 

- ‘공정성 훼손’·‘젠더 갈등’·‘경제 정책 실망’·‘안보 불안’ 쌓이고 쌓여 ‘폭발’
- 핵심 지지층→핵심 반대층→보수화? “한국당, 반사이익 누릴 것”

 

2030세대, 그 중에서도 20대 남성들의 민심 변화가 심상찮다. 리얼미터가 17일 발표한 12월 2주 차 주간동향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2.0%, 자세한 조사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분석 결과는 정부·여당에 충격파를 안겼다. 전국 성인남녀 2509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20대 남성’의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29.4%로 나타났다. 60대 남성을 포함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은 수치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20대의 지지율은 최고 수준이었다. 리얼미터의 지난해 12월 2주 차 주간동향 여론조사 당시 20대의 문 대통령 지지율은 80.6%에 달했다. 하지만 올해 12월 2주 차 조사에서 20대 지지율은 남녀를 포함해도 전체 평균(48.5%)보다 다소 높은 51.3% 정도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이 지난 18~20일 전국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에서도 2030세대 남성의 지지율 이탈이 눈에 띈다. 20대 여성의 긍정평가가 67%에 달한 반면 20대 남성은 41%에 그쳤다. 30대에서도 여성의 지지율이 74%인 반면 남성의 지지율은 53%로 나타났다.

성 갈등 상대적 박탈감,
유시민 기름 부어...

20대 남성이 현 정부에 등을 돌린 것은 ‘공정성 훼손’이 첫 번째 이유로 꼽힌다. ‘공정성 훼손’ 문제는 성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여성 인권을 중시하는 정책을 펴는 것을 보며 20대 남성은 과도한 정책이라는 비판 정서를 보이고 있다. 20대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남녀차별을 거의 경험하지 않은 세대인데 남성이라는 이유로 상대적인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올해 초 한국고용정보원이 내놓은 ‘20대 후반 여성 고용률의 역전과 고용정책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5~29세 여성의 고용률(69.6%)이 같은 연령대 남성 고용률(67.9%)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적어도 지금의 20대 남녀는 ‘동등한 기회’를 얻고 있다는 얘기다.

‘기회가 평등’하면, ‘과정이 공정’ 해야 하고 이로 인해 ‘결과가 정의’로울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20대 남성들이 정부의 여성고용할당제나 여성창업자지원 등에 격한 거부반응을 나타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했음에도, ‘여성’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정책에 대한 불만들이 모두 대한민국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지고, 이는 문재인 정부의 책임으로 귀속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한 강연에서 20대 청년을 거론하며 한 발언은 기름을 부었다. 유 이사장은 지난 21일 한 출판사가 마련한 강연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 남성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 20대 남성이 여성들에게 역차별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세대는 ‘여자는 대학 안 가도 그만’이라는 식이었지만 지금 20대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거의 여자였고 말 잘 듣는 여자애들은 선생님들이 이뻐해 주고 남자애들을 얼마나 차별했는지 느껴 온 세대”라며 “남자들이 군대도 가야 하고 여자애들보다 특별히 다른 것도 없는데 또래집단에서 보면 여자애들이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어 “자기들은 축구도 봐야 하는데 여자들은 축구도 안 보고, 자기들은 롤(리그 오브 레전드)도 해야 하는데 여자들은 롤도 안 하고 공부하지, 모든 면에서 남자들이 불리하다”고 덧붙였다.

이는 남성들이 역차별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내용이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상에서는 비난 여론이 쇄도했다. 특히 남성 중심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유 이사장이 20대 남성을 조롱거리로 삼았다”, “‘페미니즘 정부’를 지향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겠다” 등의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인터뷰 내용도 논란이다. 그는 27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정부의 정책이 친여성 정책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확실히 운동장은 기울어져 있다. 20대 남성분들이 느끼시는 것하고 안 맞을 수는 있겠지만 방금 말씀하신 대로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여전히 유리천장 지수가 굉장히 높은 나라이고 남녀 간의 불평등이 굉장히 심한 나라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당연히 바로잡는 정부의 노력이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인상 직격탄 맞아...
김정호는 20대 직원에 ‘갑질’

이와 관련해 20대 남성 A 씨는 “‘유리 천장’이 아니라 ‘유리 바닥’을 얘기하는데 여전히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유리 천장’만을 얘기하며 ‘정부가 옳은 일을 하니 우리말을 들어라’라는 식의 태도”라고 비판했다.

두 번째로 현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실망감이 20대 남성들의 ‘변심’을 야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 정책에 대한 실망’은 결국 일자리 문제로 귀결된다. 2018년 말 청년실업률은 7.9%다. 수치상으로는 2017년보다 1.3%포인트 낮아졌다. 통계로만 보면 청년실업률이 나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착시 현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취업준비생은 실업률에서 제외된다. 70만 명 넘는 취업준비생이 실업 통계에서 제외된 결과다. 실제 청년실업률은 19년 만의 최대치다. 20대는 자신들이 문재인 정부 정책의 피해자라 생각할 확률이 높다. 그뿐 아니라 20대 남성의 아르바이트 자리는 단순 노동직이 대다수다.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은 대부분 이런 아르바이트에 집중돼 떨어진다.

이 와중에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동년배 공항 직원에게 갑질을 한 사건은 남성들의 분노의 불을 붙이고 만다.김 의원은 논란이 커지자 심지어 “보안요원이 매뉴얼에 없는 행동을 하며 갑질을 한 것”이라고 적반하장의 태도까지 보인 바 있다.

김 의원에게 신분증을 꺼내 보여 달라고 요청했던 김포공항의 보안요원인 김모(24)씨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공항 협력사 직원인 내가 국회의원에게 갑질을 하다니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김 의원이‘이XX 근무 똑바로 안 서네’라고 욕하고 고함을 질러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규정을 찾아오라’는 김 의원 말에 규정을 찾고 있는데 ‘너희가 뭔데 나한테 갑질을 하냐’ ‘공사 사장에게 전화해라’고 했다”며 “사장님한테 전화한다니 너무 당황해서 규정 책자를 제대로 읽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편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가 실업난에 허덕이고 있는 20대 남성들에게 ‘절망감’을 안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 정권이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온 힘을 기울이면서 정작 경제, 특히 청년실업률을 낮추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과의 경제협력 혹은 대북 지원에 앞서 먼저 국내 청년실업 문제부터 보듬는 모습이 필요한데, 그런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기에 20대 남성이 분노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지연 한국갤럽 이사는 “삶의 조건 자체와 경제 사회적인 조건 자체가 너무 힘들다”면서 “이번에 북한에 귤 보낸 것도 사실 비용이 얼마 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 정황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내가 힘든데, 북한에 보낸다’는 심리가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권순정 리얼미터 조사분석 실장 역시 “외교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보수화됐다”며 “이는 여러 분석에서 검증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의 2030 세대는 연평도 포격 같은 북한의 도발을 군에서 직간접적으로 체험했던 세대다. 이들이 북한의 침략으로 야기된 한국전쟁의 피해를 태어나면서부터 겪은 60대 수준으로 대북 문제에 강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文 지지율 ‘데드크로스’...
한국당 5주째 20% 중반 유지

결국 젠더 이슈로 인한 공정성 훼손 문제,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 안보 불안 등으로 인해 20대 남성들이 현 정권에 등을 돌리게 됐고, 이들 중 일부는 보수화됐다는 진단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20대의 특징은 진보와 보수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 권력에 반항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번 문재인 정권도 예외는 아니다”라며 “전 정권들에 비해 비교적 일찍 지지를 거뒀고, 그 비율이 큰 것도 사실이다. 자연히 그 반사이익은 자유한국당이 가져갈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가 27일, TBS의뢰로 지난 24~26일 전국 유권자 1,0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 여론조사 결과, 긍정 평가는 43.8%로 집계됐다. 반면, 부정 평가는 51.6%로 나타났다.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서는 ‘데드 크로스’가 나타난 것이다. 반면 한국당 지지율은 25.6%로 5주째 20%대 중반을 유지하고 있다. (여론조사는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조사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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