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옥죄기 대신 규제개혁 투자환경 개선 절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각부처 장관들이 17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2019년 경제정책방향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각부처 장관들이 17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2019년 경제정책방향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2019년 기업들은 위기경영에 나선다. 대기업은 임원 승진 인사를 10% 이상 줄여 허리띠를 졸라맸고, 중소기업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곳곳에서 ‘기업하기 정말 힘들다’는 푸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더욱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식의 정책 일관성이 훼손되면서 재계의 시름도 깊다. 또한 미국과 중국 간 세계 무역전쟁 등 대내외 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지금이라도 기업인 기(氣) 살리기 노력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외국인마저 "갈라파고스 규제 국가"지적...고개 젓는 기업 환경
정부, 대규모 프로젝트 조기착공‧민간투자 창출 등 지원 발표

지난 11월 2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주한 유럽상공회의소(ECC) 기자회견에서 크리스토프 하이더 유럽상의 총장은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독특한(unique) 규제들이 많은 ‘갈라파고스 규제’ 국가”라고 비판했다. 갈라파고스 규제란 특정 지역에만 있는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를 뜻한다.

이 자리에 참석한 실라키스 유럽상의 회장은 ‘갈라파고스 규제’ 사례를 묻는 질문에 “한국은 자동차의 그라운드 클리어런스(지표로부터 자동차 차축까지의 높이)가 12㎝로 규정돼 있다”며 “이는 유럽은 물론 미국, 일본에도 없는, 전 세계에 한국에만 있는 규제”라고 했다.


뒤이어 답변을 자청한 줄리엔 샘선 GSK (영국 제약사) 한국 사장은 “한국은 임상시험에 쓰이는 신종 의료기기를 들여올 때 정식 수입 통관 절차를 밟아야 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라며 “이 때문에 한국은 훌륭한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에도 의료 소비자들이 최신 임상시험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샘선 사장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신약의 약값을 매길 때 기준이 되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자료를 2006년 이후 고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하이더 총장은 "한국의 노동 관련법은 근로자만 과도하게 보호하고 있어 새로운 근로·작업 환경의 변화는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한 유럽商議, 규제백서 내고 정부에 작심발언

유럽상의가 기자회견과 함께 발간한 114쪽 분량의 규제백서에는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CEO들의 하소연은 물론 123개의 규제 개선 건의안이 담겨 있었다. 이 중에는  한국 정부의 불통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

유럽상의는 “한국의 기업 관련 규제들은 이해 관계자들과 충분한 정보가 교환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자주 변하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했다. 유럽상의는 "새로운 정책이 원하는 효과를 제대로 발휘할지 사전에 적절한 평가도 하지 않고 정책이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며 "해외투자를 더 많이 유치하려면 한국 정부가 올바른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재계에선 “현 정부 들어 시대와 맞지 않은 반기업·친노동 규제가 강화되어도 할 말을 못하는 우리를 대신해 외국 기업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각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활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경영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규제 완화가 급선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 재계의 대표 격인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연일 정부와 정치권에 규제 개혁의 필요성을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재계가 기업규제 개혁리스트를 문재인 정부에 제출한 것만도 무려 39회나 달하지만,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것.

A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경기가 안 좋은데 너무 옥죈다. 기업규제를 완화하는데 소신을 보이길 희망 한다”며 “미국을 봐라, 트럼프가 나서서 자국기업을 살리는데 앞장선다. 국내 실정이 아쉬울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도 지난 12월 17일 발표한 '2019년 경제정책 방향'을 보면 경제 활력을 전면에 내세웠다. 정부가 이보다 앞서 발표한 세 차례 경제 정책 방향은 소득 주도 성장, 공정경제 등을 앞세웠지만 이번에는 기업투자 촉진을 포함한 경제 활성화를 강조했다.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우리 경제의 기(氣)를 살리면 2019년 경제 상황이 적어도 올해보다는 나아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주요 정책도 경제 활력을 단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우선 정부는 기업 투자를 늘리기 위해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구축’과 ‘자동차 주행 시험로 건설’ 등 대규모 프로젝트의 조기 착공을 추진한다. 또 모든 공공시설을 민자 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2019년 상반기 중 ‘민간투자법’을 개정한다. 지금은 도로 철도 등 53개 종류의 시설만 민자 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다.

수출 지원을 위해 6조 원 규모의 ‘글로벌 플랜트·건설·스마트시티 금융지원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신남방·신북방 시장으로 진출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인수합병(M&A)과 생산 기지 구축 등에 최대 5조 원이 지원된다.

규제 개선도 추진된다. 현재 외국인 대상으로만 가능한 ‘도시지역 내 숙박 공유’ 서비스는 2019년부터 내국인에게 제공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동네의원 등 일차의료기관은 만성 질환자에 대한 맞춤형 케어플랜을 수립하고 스마트폰 등을 활용한 비대면 모니터링 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정부는 2019년 8월로 예정된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업활력법)의 일몰을 2024년 8월까지 연장하고 지원 대상도 확대한다.

2016년부터 시행된 기업활력법은 정상 기업의 자율적 사업 재편을 돕는 제도다. 상법·세법·공정거래법 등 관련 절차와 규제를 간소화해주고 패키지로 여러 정책 지원을 해줘 소위 ‘원샷법’으로도 불린다.


정부는 노동시장의 현장 애로 해소도 추진한다. 홍 부총리 등이 이미 예고한 대로 2019년 1월 중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안이 나온다. 기재부 관계자는 “세부 방안은 전문가 의견 등을 수렴해 구체화하고, 그 이후 청년·고령자 등 대상별 간담회와 지역별 토론회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쳐 개편안을 확정할 것”이라며 “2019년 2월중 법 개정을 완료하겠다”고 설명했다.

재계와 정부 소통하는 모습 보여야

물론 규제완화로 인해 국민경제 전반에 폐해가 초래될 우려가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재계도 정부의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분식회계나 허위공시 등을 차단하기 위해 도입되는 집단소송제를 재계가 끝까지 반대할 명분은 약하다고 본다.

특히 재계가 이미 투명경영에 대한 윤리강령까지 채택해 놓은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재계의 한 전문가는 "정부와 재계가 합리적인 접합점을 찾아야 경쟁력이 회복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