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는 소비자 몫?’ 바람 잘 날 없는 ‘집단소송제 ㆍ불매운동’

사진 :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집단소송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자신들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 :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집단소송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자신들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기업과 소비자 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집단소송제ㆍ불매운동 등으로 번지고 있다.

새해 들어 해결 실마리를 찾기 위한 회의와 상생협약 등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끝난 경우도 있다.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들의 불만도 늘어나면서 2019년 새해 대한민국 산업계 전망이 불투명하다.

 [소비자] 정부에 징벌적 손해배상 등 관련 법안 마련 촉구
 [재계] 집단소송제 확대 움직임과 소비자 불매운동에 긴장

한국 소비자단체협의회와 11개 회원단체는 지난해 12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 살균사건과 폭스바겐 연비조작 사건, 라돈 침대 사태 등 소비자 피해는 되풀이되고 있지만 구제는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소비자 집단소송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소비자 집단소송제는 피해자 한 사람이나 일부가 가해자나 가해 기업을 대상으로 소송하면 다른 피해자들도 개별소송 없이 단일 판결로 모두 구제받는 제도다.

이들 단체는 “소비자 피해는 소액·다수라는 특징이 있지만 소송에는 큰 비용이 필요해 소송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사업자는 이를 이용한 지속적인 불공정 행위로 더 많은 불법적인 이익을 얻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사 소송은 다수의 피해가 있어도 소송 참여자만 구제를 받을 수 있고 입증 책임도 오롯이 소비자에게 있다”며 “승소한다 해도 구제금액이 소송비용과 시간보다 턱없이 부족해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소액·다수의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소비자 집단소송제라며 입증 책임의 완화, 증거개시제도, 징벌적 손해배상 등 실효성을 높일 장치가 마련된 관련 법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국회에 촉구했다. 그러나 이 법안 통과 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다수 소비자피해 구제 강화

가장 최근에는 지난해 말 발생한 서대문구 KT아현지사 화재와 관련해 소비자 집단소송제 도입으로 피해자구제 방안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지난해 12월 28일 오전 서울 KT광화문 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신 불통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점검과 백업체계를 강화하고 소비자뿐 아니라 자영업자와 택배기사 등 추가피해 보상안 마련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유사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 효과적인 피해구제 수단을 마련하고 기업들이 예장 조치를 강화할 수 있게 소비자 집단소송제를 즉각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피해시민과 자영업자단체, 2014년 SK텔레콤 불통사태 당시 소송을 담당했던 법률전문가 등이 참석했다. 한 참석자는 “가족 모두가 KT결합상품을 쓰고 있어 주말에 가족이 전부 전화와 문자를 이용하지 못했다”며 “동네 병원과 약국, 상점들도 카드단말기 결제가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재광 전국가맹점주협의회 공동의장은 “이번 KT아현지사 화재로 일반 시민들도 피해가 컸지만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 중 하나가 자영업자와 중소상인”이라며 “KT가 약관상 손해배상 외에 영업상 발생한 손해도 반드시 배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배달 주문이 많은 업종들은 주말 오후 장사를 망쳐 매출이 3분의 1로 줄었다는 가게가 부지기수”라며 “면밀히 피해사례를 접수해 보상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일반시민과 자영업자, 택배기사, 대리기사, 콜택시, 음식배달업 등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해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격인상에 따른 기업과 소비자 간의 마찰도 빚어졌다. 최근 커피, 햄버거를 비롯해 즉석밥, 냉동만두, 콜라까지 모든 물가가 줄줄이 오르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에서는 물가인상과 관련해 최저임금 인상과 관계없다는 안이한 답변만 내놓고 있으니 서민들로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대표적인 마찰 사례로 치킨 값 인상이 꼽힌다.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 중 일부 치킨 프랜차이즈가 기습 인상으로 여론이 몰매를 맞았고 몇몇 소비자들이 “다시는 00치킨 제품을 사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불매운동으로까지 확산된 바 있다. 

소송 남발로 방어비용 느는 부작용 우려 

재계는 집단소송제 확대 움직임과 소비자 불매운동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소비자 권익 신장 차원에서는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데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A그룹 관계자는 “집단소송제 도입은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며 “집단소송제는 미국에서 활성화 됐는데, 성공보수를 노린 변호사들의 소송 남발로 기업들의 방어비용이 무리하게 늘어나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과도한 손해배상을 해야 할 경우 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 재계가 집단소송제를 확대 적용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다.

B그룹 관계자는 "피해자 규모와 피해액 산정이 어려운 점도 문제"라며 "기업이 손해배상액을 예상하기 어려운데 실제 피해 이상으로 과도하게 손해배상이 이뤄지게 돼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워지게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집단소송제는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당사자들에게도 배상이 확대되는 성격이라 민사소송법이 취하고 있는 당사자주의와 전면으로 배치된다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다.

C그룹 관계자는 "소비자 권익을 높이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소규모 소송이 남발돼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고 무분별하게 악용될 경우 기업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는 만큼 적용 범위 등에 대해 세심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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