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길 모색” 발언에 정부‧여당 ‘장밋빛 전망’… 외신은 ‘美에 날린 경고장’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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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김일성 닮은 파격(?) 행보서울 답방, 북미 정상회담 성사 여부 변수

[일요서울 | 박아름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모양새다. 지난해 3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잇달아 개최하며 평화 무드를 조성하더니 2019년 새해가 되자마자 돌연 미국이 대북제재를 지속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이라며 또 다시 조건을 내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등 경제협력에 대해선 조건 없이진행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약속한 비핵화는 조금도 이행하지 않고 실리만 취하겠다는 계산이라는 지적이 크다. 사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표리부동함은 지난달에도 감지됐다. 차일피일 서울 답방을 미루더니 급기야는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전 실시한 텔레메트리(Telemetry) 실험까지 실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김 위원장의 평화 의지를 재확인했다며 안이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국민 우려가 가중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 집무실에서 신년사를 낭독했다.

김 위원장은 검은색 정장에 회색 넥타이를 착용했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남북-북미 정상회담 등 외교 무대에서는 주로 인민복을 입었던 반면, 신년사에서는 양복을 선호해 왔다. 지난해 신년사 당시에는 회색 양복을 입은 바 있다.

신년사가 전 세계에 공개되는 만큼 정상국가 지도자의 이미지를 피력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이 선 채로 단상에서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고, 서재로 보이는 곳에서 소파에 앉은 채 신년사를 읽은 것이 그 방증이다. 보다 편안하면서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려 했다는 해석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김 위원장의 복장이나 집무실 모습 등은 치밀하게 연출된 것이라며 마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을 연상케 했다여기에 양복을 입고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은 대외적으로 보통국가 이미지를 주려고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북제재 완화
전제조건 내걸어

다만 북미 관계 관련 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국내외 해석이 크게 엇갈린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유익하고 건설적인 의견을 나눴다. 언제든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됐다고 하면서도 “(미국이) 세계 앞에서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그 무엇을 강요하려 들고 제재와 압박에로 나가면 어쩔 수 없이 자주권과 국가 최고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성 메시지를 남겼다.

이에 대해 정부여당은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김의겸 대변인은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는 남북관계의 발전과 북미관계의 진전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본다김 위원장의 확고한 의지는 새해에 한반도 문제가 순조롭게 풀리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판문점선언, 평양공동선언, 남북군사분야합의서를 사실상의 불가침선언으로 의미를 부여했다민주당은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남북 정상간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확고한 의지를 연초 신년사에 포함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반면 영국 BBC는 김 위원장이 비핵화 노선을 급격히 틀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의지보다 미국이 대북제재를 계속한다면이라는 전제조건에 감춰진 속내에 주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BBC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그 이후 비핵화 진전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중단하기는 했으나,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북한이 이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거의 없다고도 분석했다.

아울러 BBC2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도 낙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BBC트럼프 대통령이 연초에 김정은 위원장과 2차 정상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에 대해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계획도 확정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블룸버그통신도 김정은이 미국의 제재가 지속되면 새로운 길을 찾겠다고 말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경고)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CNN 역시 경고’(warn)라는 표현을 제목으로 뽑고, 전문가를 인용해 “(김 위원장이) 플랜B가 있다는 확고한 뜻을 전했다고 평가했다.

은둔형와 달라
계산형조부 판박이

이런 측면에서 김 위원의 서울 답방 역시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신년사에서 서울 답방에 대한 확실한 메시지가 없었고, 이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도 상황을 주시하면서 서울을 방문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를 두고 김 위원장이 미국의 대북제재 완화 및 북미 정상회담이 선행돼야 서울 답방이 연동될 수 있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18일 채택된 평양공동선언’ 6조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가까운 시일 내에 서울을 방문했어야 한다. ‘가까운 시일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지난해 내 이뤄졌어야 한다는 게 지배적 해석이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말 내내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학수고대했지만 북측에서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한편 김 위원장의 이 같은 행보는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은둔의 지도자라 불릴 만큼 평생 공개석상 연설을 자제했다. 신년사와 같이 필요한 경우 노동신문과 군보, 청년보 등 3개 신문에 공동사설 형식으로 발표했다.

대신 김 위원장이 조부인 김일성 주석과 판박이라는 분석이다. 공개석상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편안하고 개방적인 듯한 모습을 연출하지만, 실상 남북-북미 관계에서 실리를 챙기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범위에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 주민들은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됐던 김일성 시대를 동경한다김정은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리더십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박아름 기자 pak50248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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