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교체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청와대에서 일을 시작했으니 20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시기상으로는 비서실장을 교체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시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문민정부 이후 역대 어느 대통령에 비해서도 정치력(政治歷)이 매우 짧은 대통령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만큼 정치력(政治力)에 대해서도 의문부호가 뒤따랐다. 그래서 임종석 비서실장은 단순한 비서실장의 역할을 넘어 대통령의 부족한 정치력을 보충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도 함께 했다. 그리고 역대 어느 대통령의 초대비서실장 못지않게 정권의 안정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돌이켜보면 김영삼 대통령의 박관용 초대비서실장, 김대중 대통령의 김중권 초대비서실장, 노무현 대통령의 문희상 초대비서실장, 박근혜 대통령의 허태열 초대비서실장은 모두 대통령의 핵심 측근은 아니었지만 정권 출범 초기에 걸맞은 역할을 충실히 해 낸 비서실장들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초대비서실장이었던 류우익은 정치인이 아닌 대학교수 출신이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굳이 대통령 비서실장을 유형화한다면 대다수 초대비서실장들은 정무형 비서실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정무형 비서실장과는 다른 유형이 실세형 비서실장이다. 정권의 위기상황이 오거나 레임덕이 가속화되는 시기에 대통령의 핵심 실세가 비서실장의 역할을 맡는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에게는 김광일 비서실장,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한광옥 비서실장과 박지원 비서실장,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문재인 비서실장,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임태희 비서실장,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그들이다.

대부분의 정권에서 이들 실세 비서실장들의 등장은 정권 중반을 넘긴 시기에 등장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김기춘 비서실장은 정권이 출범한 지 6개월도 채 안 된 시기에 등장했다. 전임 허태열 비서실장이 실세가 아닌 데다가 기대했던 만큼 정치력을 발휘하지도 못한 탓에 조기 등장하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박근혜 정권의 명을 재촉하는 결과를 빚어냈다.

기춘대원군으로 불리면서 정부·여당의 모든 권력을 휘어잡았지만, 최순실만큼은 예외를 인정해 줬다. 야권에 대해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동원하여 군사정권 못지않은 탄압을 일삼았다.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나 민간인 불법사찰이 그런 것이다. 그의 비서실장으로서의 행보는 대통령을 보좌해야 하는 가장 기초적인 비서실장의 역할을 망각한 채 대통령을 대행하는 듯한 역할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그렇게 해서 박근혜 정권은 망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의 후임으로 노영민 주중대사가 거론되고 있다. 노영민 주중대사는 자타가 인정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다. 2012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한 바 있어 누구보다도 대통령에 대해서 잘 알 것이다. 지난 20대 총선에서는 의원 시절 오른 구설 때문에 깨끗이 출마를 포기했다. 다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설 일도 없을 것이다. 안정적으로 대통령을 보좌할 수 있는 조건이 모두 갖추어진 사람이 노영민 주중대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려되는 부분이 있다. 그의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시인답지 않게 유연하지 못한 행태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정치력을 과신하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 같아 불안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금은 일찍 빼들은 감이 없지 않은 실세형 비서실장의 등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이경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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