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오럴 히스토리] - 정태익 편
‘아프리카‧중동의 맹주’ 이집트, 국제정치에서 중요한 나라
북방외교 성공한 노태우 정부 시절 소련‧중국과 수교

국회 대변인실은 지난 12월 14일 문희상 의장이 국회 접견실에서 알리 압델 알 쎄이드 아흐메드 이집트 국회 의장을 만나 양국 경제협력 확대 및 의회 교류 활성화 방안 등 의견을 나눴다고 밝혔다. [뉴시스]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에서 ‘외교’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기 위해 오럴히스토리사업 ‘한국 외교와 외교관’ 도서 출판을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총 16권의 책이 발간됐다. 일요서울은 그중 정태익 전 주러대사의 이야기가 담긴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지면으로 옮겼다.

-1992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대북협상을 이례적으로 통일부가 아니라 외교부, 특히 미주국에서 맡게 됐다. 남북한 문제는 주로 통일부가 담당하는 게 상례인데, 당시 외교부가 대북협상을 주도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채택된 배경 자체가 미군이 전술 핵무기를 전 세계에서 철수한다는 방침에서 비롯됐다. 과거 냉전시절에 전술 핵무기 배치 문제로 유럽과 소련이 갈등하지 않았나. 미국 정책에서 비롯된 비핵화선언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외교부가 주도하게 됐다.

-그 밖에도 당시 또 중요한 현안 중 하나가 SOFA 개정 문제 아니었나. 미국 측과 협상할 당시에 어떤 문제가 주요 쟁점이었나. 당시에 미국 측과 합의한 SOFA 개정 범위나 내용에 대해 설명하면?

▲미주국은 북미 대륙뿐만 아니라 남미 대륙까지도 관장했다. 북미1과는 미국과의 정무적인 문제를 다뤘고 북미2과는 SOFA 업무를 담당했다. 주한미군 주둔 문제는 주요한 안보 현안이다.

주한미군의 지위에 관한 행정협정, 곧 SOFA는 이동원 외무장관 때 체결이 됐다. 당시 불평등 조약이라고 학생들이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다. 학생들의 반대 사위에도 SOFA는 체결됐다.

주한미군의 한국 주둔과 관련된 제반 문제를 미주국이 담당했다. 군대 파견국이 주둔에 필요한 토지를 요구하면 접수국이 토지를 제공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주한미군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의 형사관할권 문제를 다루는 업무도 포함하고 있다.

SOFA 운영을 위한 실무기구가 있는데, 한국 대표는 미주국장이고 미국 측 대표로는 UN군 부사령관 겸 미7공군사령관이 책임을 맡아 운영했다. 당시 미국 대표는 로널드 포글만 공군사령관이었는데 나중에 미공군 참모총장도 역임했다.

당시 현안은 SOFA의 형사관할권 조항에 관한 것이며, 미국이 NATO 국가 및 일본과 체결한 내용과 비교할 때 미흡하므로 이를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 개정 문제가 대두됐다.

지금까지 미군 범죄자가 체포돼서 재판에 회부되기까지 미국 측이 형사관할권을 행사하고, 특별한 경우에만 한국이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우리의 관할 범위를 확대하자는 것이 개정 내용의 요지다. 즉 형사관할권 조항을 NATO와 일본 수준으로 개선하자는 것이었다.

이 밖에 미군 용산기지 내의 주한대사관 직원 숙소 문제도 제기됐다. 우리의 안보와 경제 번영의 기둥이 되는 한·미 동맹 문제 전반을 다루는 북미국은 지금도 여전히 외교부 내의 주요 부서다.

-당시 주한미군지위협정이 우리에게 불평등한 조항을 포함하고 있는데, SOFA 문제 개정 협상을 통해서 개정했다는 것은, 크게 보면 독일‧일본과 같은 수준으로 한국의 국력이 신장되었다는 의미가 아닌가. 대사는 미주국장직을 수행한 이후 1993년 주카이로총영사로 발령됐다. 외교부의 핵심 요직이라 할 수 있는 미주국장을 아프리카 지역인 이집트 주카이로총영사로 보임한 것은 아주 이례적인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1993년 노태우 정부에서 김영삼 정부로 바뀌는 시기에 나는 미주국장에서 주카이로총영사로 발령을 받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2월에 취임해 대대적인 인사교체를 단행했다. 외무장관에 한승주 서울대학교 교수를, 외교안보수석에 정종욱 서울대학교 교수를 임명하고 김덕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국정원 원장으로 한완상 서울대학교 교수를 통일부장관으로 하는 개각이 이루어졌다. 교수 출신으로 외교안보라인이 채워졌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북방외교가 성공을 해 소련에 이어 중국과 수교를 이뤘을 뿐만 아니라 동구권 모든 국가와 수교를 맺었다. 남아있는 미수교국 중에 중요한 국가가 이집트였다. 이집트는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의 맹주이고 국제정치적인 비중 면에서도 중요한 나라다. 그래서 이집트 수교에 역대 정부는 공을 많이 들였다.

역대 주카이로총영사의 면모를 보면 정부가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다. 최운상 초대 총영사, 함영훈‧장위돈‧공로명‧신기복‧김세택‧박동순 등 루수 외교관을 역대 총영사로 임명해 이집트와 수교를 맺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지만 수교가 안 됐다. 내게 주어진 최대 임무는 이집트와 수교를 맺는 거였다. 아무도 달성하지 못한 수교를 성사시키기 위해 제가 임명됐기 때문에 나는 책임과 도전의식을 가지고 카이로에 부임했다.

-외교부 내에서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들이 주카이로총영사로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지 못했다. 북한과 이집트와의 관계가 아주 특수한 혈맹관계에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어떤 계기가 있었나?

▲처음에 수교를 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긴밀하게 접촉할 인물을 외무장관으로 생각하고 아므르 무사 외무장관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수교를 막고 있는 이집트와 북한의 특수한 관계가 무바라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됐다. 난관을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 무바라크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는 수교 활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