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빛 좋은 개살구?

[사진출처=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사진출처=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 문재인 정부가 밝힌 ‘직접 소통’ 철학이다. 청와대는 이에 기반해 국민과의 소통 방법으로 ‘청와대 국민청원’ 정책을 내놨다. 하지만 현재 본래 취지에서 벗어난 글들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게시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의견이 속속 나오고 있다. 

 

국민청원, 백악관 ‘위 더 피플’ 본 따…2017년 8월 첫 출범
이준석 최고위원 “현 국민청원, 자극성 바탕돼…민주주의 왜곡”

 

청와대 국민청원 정책(이하 국민청원)은 백악관의 시민청원 사이트 ‘위 더 피플(we the people)’을 본 따 2017년 8월 17일 공식으로 선보였다. 이 정책은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청원은 청원자가 해당 사이트에 글을 작성해 청원을 등록하면 30일 동안 청원을 진행하고, 그 기간 내 20만 명의 추천을 받으면 해당 문제와 관련 있는 부처가 직접 답하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약 1만9461개의 청원이 게시됐으며, 이중 68개의 청원이 20만 명의 동의를 얻어 관련 부처의 답변을 받았다(4일 기준). 

청와대는 이와 유사한 ‘국민신문고’ 제도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신문고가 민원·제안·참여, 부패·공익신고, 행정심판 등 범위를 한정하는 것과 달리 국민청원은 ‘질문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즉, 청원자는 어떠한 사안이든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국민청원은 문재인 정부가 표방하는 ‘소통하는 정부’라는 인식에 큰 공헌을 한 제도로 여겨진다. 

 

靑 울타리 넘은
‘국민청원’ 남용

 

이 점이 오히려 국민청원에 독이 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접근성이 용이해 무분별하게 청원이 쏟아지면서 실질적으로 행정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안들이 알려지지 않는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실제 해당 사이트를 살펴보면 내용의 골자는 같으나 청원자가 다른 게시글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중복 청원’인 글들도 다수 존재할 뿐만 아니라 “TV조선의 종편 허가 취소 청원” 등 청와대 업무 경계 밖에 있는 청원글도 있다. 

이 글의 게시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호도하는 TV조선의 종편 퇴출을 청원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4월 14일 청원을 올려 23만6714명의 동의를 얻었다.

이에 정혜승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당시 뉴미디어비서관)은 “언론 자유는 헌법에서 보호하는 매우 중요한 권리”라면서도 “종편 채널은 지상파 수준의 규제는 아니나 역시 규제 대상이다. 2017년 3월 방송통신위원회는 TV조선에게 조건부 재승인을 해줬다. 이후 TV조선에 대한 법정제재는 아직 없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답변을 살펴보면 청원자의 ‘TV조선의 종편 허가 취소’를 요구는 사실상 이는 청와대의 권한 밖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사이트에 일부 정당·정치인을 단순 비방하는 내용이나, 특정 연예인을 사형시켜 달라는 요구 등 도 넘은 청원이 게시된 사실이 보도되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 제도를 권한 임 비서실장도 이 같은 청원글이 잇따르자 난색을 표한 바 있다. 임 비서실장은 지난해 2월 21일 국회에서 진행된 운영위원회 대통령실 업무보고 자리에서 “(국민청원 제도 관련) 고충을 말하자면 답변하기 부적절한 성격의 문제가 많이 올라온다”고 밝혔다.

같은 날 윤재옥 자유한국당 의원은 “어떤 청원을, 어떤 기관이 답변하는지도 차이가 난다. 이런 식으로 하면 기준이 없다”고 국민청원 제도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이에 임 비서실장은 “원론적인 답변이라도 하려 하고 있다”며 “곤란한 것은 국회 관련 청원이 올라오면 답변하기 곤란하다. 일단 (청원 답변 기준인 추천수) 20만 건이 넘으면 답변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라고 심경을 드러낸 바 있다.

이처럼 다소 지나치다고 여겨질 정도의 청원들이 게재되는 원인에 대해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정부, 청와대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전지전능함을 사람들이 믿고 그곳(국민청원 사이트)에 가는 것”이라며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청와대가 해결해서는 안 되는 문제들도 다 쓸어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청와대 스스로가 ‘전지전능하다’는 이미지를 풍기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청원이 올라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국민청원이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 단 하나도 기억나는 게 없다”며 “대다수의 청원글은 사법 절차에 따라 처리돼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원 동의 수 ‘20만 명’
‘여론’이라 볼 수 있나

 

이 최고위원은 ‘20만 명’의 동의를 얻으면 청와대가 답변한다는 규칙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자칫하면 해당 청원의 사실 관계보다 ‘얼마나 많은 수의 사람을 끌어들였는가’ ‘얼마나 화제성 있는 사안인가’ 등이 주안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최고위원은 “청와대는 수치적으로 얼마 이상이 되면 답변하겠다, 관심 갖겠다고 (말)하지만  이 수치가 의미하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게 최근 청원에서 드러나고 있다”면서 “무의미한 기준을 왜 둔 것이냐”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가장 약하고, 자신의 의견을 내기 어려운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라며 “몇 십만 명을 동원할 능력이 있는 세력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 최고위원은 ‘20만 명 이상’이라는 수치가 ‘여론’을 대변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전에 누군가가 청와대 국민청원을 ‘직접 민주주의 요소’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민주주의라는 것은 표의 등가성 등을 반영해야 되는 것”이라며

“(반면) 지금 국민청원은 자극성을 바탕으로 해 선동하는 것도 쉽고, 특정 집단의 몰표로 국민 여론이 형성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왜곡이다”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또 “모든 국민이 (동일한 사안을 놓고) 정해진 날짜에 특정 장소에 가 투표를 하거나, 무작위로 추출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를 한다면 여론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 “하지만 국민청원은 ‘누가 어디서 많이 몰려가느냐’하는 문제다. 이것이 과연 대의 민주주의나 직접 민주주의 성격을 갖는 것인가”라고 피력했다.

이 최고위원은 “(현재 국민청원은) 어떤 아주 견고한 집단만 있다면 여론인 것처럼 투영하기 때문에 위험성을 지닌다”고 우려를 표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