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연말을 맞아 국군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해 12월 28일 경기도 연천의 육군 5보병사단 신병교육대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훈련병들에게 “과거에는 적의 침략을 막아 국민의 생명과 안보를 지키는 차원의 안보였다면 이제는 적극적으로 북한과 화해·협력하며 평화를 만들고 키워가고 그 평화가 경제로 이어지게 하는 달라진 안보가 됐다.”고 했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아직까지 화해·협력·평화 관계가 아니다. 핵무기를 손에 쥔 침략자와 희생자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군 최고통수권자로서 장병들에게 북한과 화해·협력·평화를 추구하는데 있다고 단정한 것은 성급했다. 적이 도발할 때 우리 군에게 단호히 반격하지 못하고 화해·협력·평화를 위해 망설이게 할 우려를 수반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월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행동으로 보여준 건 아직 없다. 올 1월 1일 신년사에서도 김은 대북제재를 안 풀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고 협박, ‘선 대북제재 해제 ­ 후 북핵 폐기’ 고집만 되풀이 했다. 김은 고작 풍계리 핵실험장 입구 폭파 쇼나 벌였을 따름이다. 김이 비핵화를 약속했다고 해서 북핵이 절로 제거되는 건 아니다. 김은 작년 8월 “인민군 군대에서는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으며 남반부를 평정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의 적화야욕은 아직도 달라진 게 없이 살기등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안보가 과거 적의 침략 저지에서 북한과 화해·협력·평화 구축에 있다고 공언함으로써 군을 평화 착각에 빠져들게 할 우려를 수반했다. 우리 군의 적에 대한 경각심을 허물 수 있고 생명 바쳐 적과 싸우는 전사(戰士)가 아니라 북한과 화해·협력·평화나 추구하는 평화봉사단으로 약화시킬 수 있다. 북한과 화해·협력·평화를 추진하는 일은 청와대 보좌진들이 할 일이다. 5사단 장병들이 할 일은 아니다.
로마 격언은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대비하라’고 했다. 이 격언처럼 남북 화해·협력·평화를 원한다면 우리 군은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거짓말에 속아 전쟁에 대비하지 않고 화해·평화가 온다고 들뜬다면 도리어 김정은의 남침을 유발할 수 있다. ‘전쟁은 착각·미망·환각의 아버지’라는 말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문 대통령의 화해·협력·평화 강조는 새해 발간될 ‘2018 국방백서’에도 성급히 반영되었다. 지난 ‘2016 국방백서’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등 살상무기, 사이버공격 등 ‘위협이 지속되는 한 그 수행 주체인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명시 했다. 하지만 새해 초 발간될 ‘2018 국방백서’에서는 북한 정권과 군은 적이라는 문구를 삭제해 버렸다고 한다. 그 대신 우리 영토와 국민의 생명 및 재산을 위협하는 모든 세력은 적이라고 얼버무렸다고 한다. 우리 안보가 북한과 화해·협력·평화를 만드는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달라진 안보관’을 반영한 것이었다. 우리 군이 확고한 주적 개념 없이 북한과의 화해·협력·평화 무드에 들떠 약해지지 않을지 걱정된다. 
여기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기 시작한 고대 아테네의 투키디데스가 남긴 명구 한 대목을 환기해 두고자 한다. ‘강자(强者)는 강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데 반해, 약자는 강자의 의도대로 고통받는다.’ 우리 군이 화해·협력·평화 무드에 젖어 약해졌을 때 “서울을 단숨에 타고 남조선 평정”을 외쳐대는 김정은의 붉은 군대에 의해 고통받지 않을까 걱정된다. 투키디데스의 역사 교훈이 이 땅에서 시현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 본면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