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응찬, 이빨 빠진 호랑이 되나

지난 10월 신한금융지주 회장(맨 앞)이 신한금융지주 본사에서 기자들에게 금융실명제법 위반혐의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4일 오후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직무정지 3개월 상당의 중징계를 결정했다. 현재 라 전 회장은 신한금융 등기이사직만 갖고 있지만 이 결정에 따라 이사직 사퇴 압력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희건 신한금융 명예회장에게 돌아갈 자문료 횡령 의혹 등과 관련한 라 전 회장, 신상훈 신한금융 사장, 이백순 신한은행장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가 신한사태의 고비가 될 전망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이들의 거취 및 신한의 지배구조 개편도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검찰은 G20 정상회의 이후 이들 3명을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라 전 회장에 대해서 직무정지 3개월 상당으로 징계수위가 결정됐다”며 “최종 징계는 금융위원회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라 전 회장이 신한은행장과 신한은행 부회장으로 재직할 당시(1991년~2000년) 실명의무를 하지 않은 차명계좌 개설을 지시했다고 금감원은 파악하고 있다.


라응찬, 신 사장과 동반 사퇴 제시해

금융실명제법에 따르면 금융기관 임원이 실명의무 확인을 위반하도록 지시한 경우 최소 ‘문책적 경고’의 중징계가 이뤄진다. 그러나 위반금액이 3억 원 이상을 초과했을 때는 그 이상의 징계를 하도록 규정돼 있다. 보통 직무정지에는 1, 3, 6개월의 ‘기간’이 붙는다.

라 전 회장은 지난달 30일 신한금융 이사회에서 10년째 고수해 온 대표이사 회장직은 사퇴했다. 하지만 이사직은 유지했다. 현행 감독규정상 직무정지를 받으면 앞으로 4년간 금융회사 임원으로 선임될 수는 없지만 등기이사직에 대한 제한은 없기 때문. 이로써 라 전 회장은 내년 3월에 열릴 주주총회 전까지는 이사직을 지킬 수 있지만 사퇴 압박을 받을 가능성은 커졌다.

재일교포 주주들은 라 전 회장의 이사직 사퇴를 요구하지만, 그는 직무정지 상태인 신상훈 사장이 이사직을 물러나면 자신도 사퇴할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 전회장의 거취는 신 사장의 동반 사퇴 여부에 달려있다. 라 전 회장은 신 사장에게 직간접적으로 이사직 동반 사퇴를 제시했지만 신 사장은 동반 사퇴 가능성을 일축했다. 신 사장은 “명예회복을 위해 검찰 조사에 전념하고 있다. 조사를 받고 나서 거취를 논하겠다”며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후임자, 검찰수사 결과가 변수

한편 신 사장은 징계대상에서 제외됐다. 금감원은 라 전 회장이 행장으로 있었을 때 신 사장이 4개월여 동안 본점 영업부장으로 근무하면서 차명계좌 개설에 관여한 혐의는 있지만 실명제 위반 사례가 확인되지 않아 감독책임이 없는 것으로 보고 조치를 제외했다.

검찰은 지난 2일 라 전 회장, 신 사장, 이 행장의 집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G20 정상회의가 끝나는 이달 중순 이후 이들을 소환 조사하고 이달 말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진다.

신 사장의 기소 여부에 따라 신 사장과 이 행장의 불안한 위치가 바뀔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신 사장을 기소하기로 하면 그는 사장직과 이사직을 동반 사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신 사장이 무혐의로 판결나면 그를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소하는데 앞장 선 이 행장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최악의 사태는 세 명이 함께 기소돼 신한금융의 최고경영진들이 모두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신한금융은 지난달 말 이사회 산하 임시기구인 ‘특별위원회’(특위)를 설치하며, 비상근 사내이사인 류시열 회장 직무대행을 선임해 라 전 회장의 후계자 선임 등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 정상화 방안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특위의 첫 회의는 11월 9일로 잡혀 있다.

기획예산처 장관 출신 김병일, 윤계섭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및 사외이사 8명과 류 대행이 참석 할 이 회의에서 위원장 선임과 의사결정 방식, 주요 일정 및 향후 논의 주제 등을 다룰 것으로 전해졌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신한금융이 향후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지배구조에 어떠한 변화가 생길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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