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노영민 주중대사 비서실장 낙점 ‘숨은 2인치’
[심층취재] 노영민 주중대사 비서실장 낙점 ‘숨은 2인치’
  • 홍준철 기자
  • 입력 2019-01-09 09:22
  • 승인 2019.01.09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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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8일 오후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후임으로 노영민 주중국대사를 임명했다. 한병도 정무수석의 후임으로는 강기정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후임엔 윤도한 전 MBC 논설위원을 각각 임명했다. 이로서 '문재인 청와대 1기' 주요 참모진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1기 참모가 시스템 구축과 안정에 무게가 잡혔다면, 집권 3년 차를 맞아 새롭게 진용을 갖춘 2기 참모진은 국정 성과 도출을 위한 인사로 볼 수 있다. '친문' 성향의 인사들을 포진시켜 국정 장악력을 높이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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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친문’ 임종석 비서실장에서 ‘진문’ 노영민 주중대사로
- 충북 청주 고향 학생운동권 출신 '인물 부재론' 지적도 나와


2017년 5월10일 문재인 정부 초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던 ‘86운동권’이자 ‘신친문’으로 불리던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1년 8개월 만에 청와대를 떠나게 됐다.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 초대 비서실장의 평균임기(약 13개월)를 훌쩍 넘겼다. 임종석 실장은 "노 실장은 폭넓은 의정활동으로 탁월한 정무 감각을 보유했고 새 정부에서 주중대사로 임명돼 통상·안보·외교 최일선에서 헌신한 정치인"이라고 설명했다.

임 실장은 이어 "국회에서 다년간 신성장산업 포럼을 이끌며 만든 산업·경제계 등 각계 현장과의 풍부한 네트워크 및 소통 능력이 강점이며, 민생경제 활력을 불어넣어 포용 국가의 기틀을 다져야 할 상황에서 비서실을 지휘할 최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춘풍추상(春風秋霜·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과 같이 부드럽게 대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대해야 한다)의 자세와 국민에 대한 무한책임의 각오로 비서실을 운영하고 기업 및 민생경제 활력이라는 국정 기조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데 큰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춘풍추상’으로 전후임 실장, ‘사전 교감’

노 신임 실장 역시 ‘춘풍추상’을 언급하며 화답했다. 서울로 급거 귀국한 노 실장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일성으로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 부족함을 경청으로 메우려고 한다. 어떤 주제든 누구든, 어떤 정책이든 가리지 않고 경청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밝혔다. 또 청와대 여민관에 내부에 '춘풍추상'이란 글귀가 걸려있음을 언급하며 "비서실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이 되새겨야 할 사자성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3선 의원 출신의 노 실장은 올해 61세다. 전임 임종석 비서실장의 청와대 입성이 51세(재선의원 출신)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10살이나 많아진 것이다. 50대 초반 비서실장이 '탈권위와 소통, 신선함'을 상징했다면, 60대 비서실장 체제는 안정과 노련함, 성과지향적인 운영을 선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노 실장은 정치적으로는 문 대통령의 뿌리와도 같은 ‘친노’ 그룹 출신이 아니다. 그는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계파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사무총장을 맡는 등 김근태계의 핵심으로 꼽힌다. 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당시 탕평인사 차원에서 노 실장을 후보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것이 인연이 됐다.

이후 ‘문지기’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2012년 대선 패배 후 문지기(문재인을 지키는 사람들)라는 모임을 만들어 친문 세력을 구축하면서다. 전해철ㆍ박남춘ㆍ홍영표ㆍ김태년ㆍ윤호중 의원과 ‘6인회’로 불렸다. 2017년 대선 때는 문 대통령 지지모임 ‘더불어포럼’을 만들었고,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전ㆍ현직 의원 모임 ‘달개비’의 좌장을 맡기도 했다.

노 실장은 앞서 19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으로 재직하던 중 피감기관에 자신의 시집을 강매했다는 의혹을 받아 논란에 중심에 서기도 했다. 결국 당내 윤리심판원으로부터 당원 자격정지 6개월 처분을 받았고 20대 총선에도 불출마해야 했다. 지난 대선에선 선거의 중추인 조직본부장을 맡아 승리로 이끌어 일찌감치 비서실장으로 낙점됐으나 정권 출범 초기 측근배제 기조로 인해 주중대사로 '외곽'에 머물렀다.

당시 친문 진영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밀었지만, 친문 계파주의에 대한 우려로 고배를 마셔야 했다.
노 실장은 대선조직을 이끌 정도의 강한 추진력과 함께 직선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 노동운동을 하다가 회사를 경험한 이력으로 현역 의원시절 친시장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정무, 안보와 경제를 총괄하는 비서실장으로서 현실주의적인 국정운영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노영민 실장론’ 오래전부터...‘인물 부재론’탓?

충북 청주 출신인 노 실장은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86세대보다 선배 그룹이다.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시절 ‘연세대 구국선언서’ 사건으로 구속 수감되는 등 학생운동을 주도하다가 제적됐다. 이후 연세대 동문이자 부인인 최영분씨와 구로구 가리봉동 공장에 취업해 노동운동을 했다. 공장 노동자로 일한 경험으로 전기공사 2급 자격도 땄다.

1999년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으로 활동하며 정치권에 입문했다. 이후 17대 국회부터 19대까지 연달아 3선에 성공했다. 한편 여권 일각에서는 노 비서실장이 임 실장이 구설수에 오를 때마다 차기 비서실장으로 거론됐다는 점에서 ‘대안이 없었던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여권 인사는 “노 시장의 청와대 입성은 예견된 바 있다”며 “차기 비서실장에 종종 언급됐지만 실제로 비서실장에 오른 것은 노 실장을 대체할 마땅한 인물이 없었던 게 아니냐”고 언급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