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5조5000억원이라는 거액을 배팅하면서 현대건설 인수에 성공했다.

하지만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완전히 품에 안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대다수 인수합병(M&A)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우선 이번 인수금액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꼽는다. 당초 채권단이 예상한 현대건설 매각가는 3조5000억~4조원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당초 예상가에 비해 2조~1조5000억원을 더 써낸 것이다.

2006년 대우건설 매각가와 비교해도 이번 인수 금액이 상당히 비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우건설 매각 당시 인수 지분은 전체의 72%를 금호그룹 컨소시엄이 6조4000억원에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현대건설 매각 대상 지분은 34.88%에 불과함에도 현대그룹은 5조5000억원을 채권단에 지불해야 한다. 물론 앞으로 실사과정에서 금액의 가감이야 있겠지만 5조원이 넘는 인수가격은 상당히 비경제적인 가격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M&A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현대건설 인수에 소요되는 비용이 사실상 대우건설의 2배 정도에 달한다"고 평가했다.

현대그룹은 이처럼 높은 가격에 현대건설을 인수하기 위해 자금조달과정에서 적지않은 무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은 당초 보유하고 있던 현금성 자산 1조5000억원에 최근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등 주력 계열사의 유상증자와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2조원 가량의 자금을 추가로 끌어모은 것이다.

현대상선이 회사채 4500억원, 기업어음 5000억원, 현대부산신항 주식처분금 2000억원, 유상증자금 3968억원 등을 마련해 인수주체로 나서고, 현대엘리베이터가 회사채와 기업어음 발행 등으로 3000억원, 현대증권은 1700억원 정도의 현금성 자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여기에 현대그룹은 입찰 마감을 하루 앞두고 현대상선 컨테이너 등을 담보로 동양종금증권으로부터 7000억원을,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을 재무적 투자자로 끌어들여 1조2000억원을 조달했다.

회사채와 어음을 제외하더라도 재무적 투자자로부터 끌어들인 돈이 2조원에 달하는 셈이다.

따라서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자산매각 없이 2조원을 어떻게 갚을 것인지가 문제다. 더욱이 현대그룹은 재무적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이면계약(옵션)을 맺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대그룹과 재무적 투자자들 사이에 맺어진 옵션의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현대건설 인수의 성패가 갈린다고 해도 관건이 아니다.

실제로 대우건설을 인수한 금호그룹도 재무적 투자자들의 지분을 일정한 가격(주당 3만1500원)에 다시 사주겠다는 풋백옵션에 발목이 잡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M&A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그룹도 재무적 투자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수익을 보장해주기 위한 옵션계약을 체결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문제는 이 옵션의 내용이 무엇이냐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M&A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현대건설은 대우건설에 비해 매각 지분이 많지않아 대우건설 매각 당시 금호그룹과 재무적 투자자들이 맺은 옵션과는 내용이 많이 다를 것"이라며 "하지만 현대그룹이 자산을 매각하지 않고 어떻게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보장할지는 계속 눈여겨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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