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자유한국당 유력 당권주자들이 최근 대구·경북(TK) 지역을 대거 방문했다. 다음 달 27일 열릴 예정인 전당대회 일정을 의식한 행보다. 이들이 유독 TK 구애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당 최대주주인 TK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당권’의 꿈도 멀어지기 때문이다. TK의 책임당원은 전체 책임당원(32만여 명)의 약 3분의 1에 달한다. 하지만 정작 TK 민심은 차갑다. TK는 독특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 설령 TK 출신이 아니더라도 보수를 대표할 자질과 역량을 갖췄으면 표를 몰아주고 있다. 역대 대선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그리고 지난 탄핵 정국을 거치며 한 가지 정서가 더 생겼다.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연민’과 ‘향수’다. 결국 TK는 잔류파·복당파 어느 누구도 박 전 대통령 탄핵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들이 보수를 이끌 수 없다는 인식인 것이다. 그렇다면 TK는 박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을 ‘TK 맹주’로 어떤 인사를 점찍은 것일까.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2019년 자유한국당 대구·경북 신년교례회가 열린 2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자유한국당 대구시당 강당에서 김문수(왼쪽부터) 전 경기지사, 정우택 의원, 심재철 의원, 주호영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한국당 당원들을 향해 새해 인사를 하고 있다.
2019년 자유한국당 대구·경북 신년교례회가 열린 2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자유한국당 대구시당 강당에서 김문수(왼쪽부터) 전 경기지사, 정우택 의원, 심재철 의원, 주호영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한국당 당원들을 향해 새해 인사를 하고 있다.

 

- 朴 향수 만연한 TK... 황교안 새 맹주(盟主) 등극하나
- “朴 못 지킨 ‘잔류파’, 탄핵 주도한 ‘복당파’... 보수 리더 자격 없다”

지난 2일 오후 한국당 대구시당 강당에서 개최된 대구경북 신년교례회에는 곽대훈 대구시당 위원장과 장석춘 도당위원장을 비롯해 권영진 대구시장, 배지숙 대구시의회 의장, 이철우 경북도지사, 장경식 경북도의회 의장 등 구·군 단체장과 대구경북 지역구 의원들이 두루 자리했다.

한국당 최대 주주 TK,
이회창→박근혜→?

여기에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주호영 의원, 김광림 의원, 정우택 의원, 심재철 의원 등 관계자 약 2000여 명이 대거 참석했다. 이들은 자천타천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들로,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TK에서 표심잡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날 오세훈 전 시장은 “당 대표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히며 도전 의사를 내비쳤다. 무상급식 문제로 서울시장직을 사퇴해 이를 민주당에 내줬다는 쓴소리를 감안한 듯 그는 “당원과 국민들이 판단할 몫이다. 출마자들끼리 상대평가하는 것은 분열적인 경선이 될 뿐”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역시 이날 자리에서 “대한민국이 위기다. 문재인이 문제다. 뭉치자 싸우자 이기자” 구호를 외쳤다.

한국 정통 보수 세력의 본산이자 자유한국당의 텃밭인 TK의 지지를 받는 인사는 대권 도전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실시 후 TK지역은 이 고장 출신으로 13대 대선에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대구 70.69%, 경북 66.38%), 14대 대선에서는 PK(부산-경남) 출신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대구 59.59% 경북 64.72%)에게 아낌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냈다.

이후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TK와 전혀 연고가 없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대구 72.65%, 경북 61.92%)를 지지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도 이회창 후보(대구 77.75% 경북 73.46%)에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다.

바로 이 대목에서 ‘TK 정서’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설령 지역 출신이 아니더라도 보수를 대표할 만한 역량을 갖췄으면 ‘TK 맹주’로 흔쾌히 인정하는 게 ‘TK 정서’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TK 출신이 아닌 오세훈 전 시장, 정우택 의원 등도 얼마든지 보수의 리더로서 ‘역량’만 갖췄다면 ‘TK 맹주’가 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다만 지난 탄핵 정국을 거치며 TK에는 지금껏 없던 또 하나의 정서가 각인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연민’이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TK(대구 80.14%, 경북 80.82%)에서 얻은 지지율은 가히 기록적이다. 앞서 2007년 17대 대선에서 경북 포항 출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대구 69.37%, 경북 72.58%)과 비교를 하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TK 지역민의 기대가 얼마나 컸었는지 알 수 있다.

朴 탄핵 이후에도
‘향수’ 여전...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된 이후에도 TK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식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유승민 의원이 지난 대선에서 대구를 찾았다가 ‘물벼락’을 맞고, 이재만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과 유 의원의 대리전 양상을 띤 대구 동구청장 선거 결과에서 바른미래당 후보였던 강대식 후보가 현역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패배한 사실 등이 이를 방증한다.

현재 한국당 전대 출마 후보군으로는 원내에선 심재철(5선), 정우택·정진석·주호영·조경태(4선), 김성태(3선), 김진태(재선) 의원이, 원외에선 홍준표 전 대표와 오세훈 전 시장, 김태호 전 경남지사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잔류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복당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배신한 원죄를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월 첫 주 보수 진영을 대상으로 한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 조사 결과는 TK의 심중을 가늠케 한다. 당권 주자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던 TK가 황교안 전 국무총리에게 그들의 ‘맹주’ 자리를 허락하는 양상이다.

여론조사 기관 알앤써치가 아시아투데이 의뢰로 정례 여론조사 결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범(凡)보수진영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에서 16.5%(전체 응답자 기준)를 기록해 가장 큰 지지를 받았다. 지난주보다 0.4% 소폭 상승한 수치다.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15.9%로 뒤를 쫓았다. 이어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10.4%), 오세훈 전 서울시장(8.5%), 원희룡 제주도지사(4.7%) 순으로 나타났다.

황 전 총리는 전통적인 보수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TK)에서 유 전 대표와 홍 전 대표를 제친 것으로 나왔다. TK에서 황 전 총리의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는 28.1%에 달했다.

이번 조사는 19세 이상 전국 성인 남녀 1045명을 대상으로 지난 5~6일 이틀간 실시됐다. 조사 방법은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무선(100%) 전화 자동응답(RDD) 방식으로 이뤄졌다. 응답률은 7.2%이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아시아투데이 홈페이지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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