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9일 대선에서 승리한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적폐청산과 국가개조라는 시대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사명감에 가득 차 있었다. 촛불이 만들어 준 정권이라는 자부심에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이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이루지 못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여소야대라는 어려운 정치상황도 국민의 지지로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으며, 9년간의 정권의 공백도 충분히 초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연정을 해야 할 이유도 없었고, 협치는 야당이 정부여당을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것을 의미했다. 여소야대의 정치상황은 21대 총선에서 단독 과반수를 획득하면 되었기에 국민적 지지로 버틸 시간만이 필요했다.

그 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총선에 출마할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1분 1초가 아까운 시간들이다. 현역이 아닌 사람들이나 현역이라고 하더라도 장기간 자신의 지역구를 돌볼 수 없었던 장관들에게는 자신이 당선되지 않는 총선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한병도 정무수석비서관, 송인배 정무비서관은 오직 자신의 총선 출마만을 위해서 별 이유 없이 그 직을 그만두었다.

그 자리는 실질적으로 총선에 출마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린 노영민 전 의원과 강기정 전 의원, 그리고 총선 출마를 위해 청와대 경력이 필요했던 복기왕 전 아산시장이 물려받았다. 친문 색채의 강화라는 언론의 평가는 덤이다.

다음 달에는 현역의원이면서 행정부의 장관을 겸직하고 있는 김부겸, 김영춘, 김현미, 도종환 등 4명의 국회의원 출신 장관이 장관직을 그만둘 것이라고 한다. 국회 입성을 위해 지난 6월 임기를 끝내고 청와대에서 경력 관리를 받고 있는 비서관들도 줄줄이 사표를 쓸 것이라고 한다. 인사청문회에서 21대 총선에 출마할 것인지 추궁을 받았던 유은혜 교육부총리도 그만둘 시점만 찾고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청와대가 인사권을 활용하여 21대 총선을 주도하고 있는 모양새다.

대통령과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필자로서는 이러한 대통령의 인사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인재들로 행정부의 장관을 시키고 청와대의 비서를 시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청와대에서 경력 관리를 해 주면서까지 총선을 준비하게 해주는 것을 보니 분명 문재인 대통령은 대인임(?)에 틀림없다. 더불어민주당이 21대 총선에서 과반수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소위 친문으로 불리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켜 자신의 퇴임 후의 안전판으로 이들을 활용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대 총선을 앞두고 분열된 야권, 리더십 실종의 제1야당이라는 호재 속에서도 자신의 퇴임 후만을 생각하여 측근인 이한구 공천심사위원장에게 위험한 공천칼춤을 추게 함으로써 선거에서도 지고, 그 결과 자신마저 탄핵으로 대통령에서 쫓겨나 철창신세가 되는 것을 목도하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그 과정을 목도하였고, 자신이 최대 수혜자가 되어 현재 대통령이 됐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과도하게 총선에 개입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이다. 굳이 박근혜의 전철을 밟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걱정인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측근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과잉 충성을 제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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