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 때의 일이다. 두 정치 지망생이 있었다. 둘은 절친했다. 정치권에 들어온 시기도 비슷했고 마침 나이도 같았다. 10여년 정당생활 끝에 한 사람은 청와대에 들어갈 기회를 얻었고, 또 한사람은 유력 대권주자의 최측근 실세가 되었다. 어깨동무하고 승승장구해 오던 둘은 총선을 1년 여 앞둔 시점에서 다른 길을 걸었다.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을 때, 한 사람은 일찌감치 출마지역을 정해 바닥을 훑기 시작했지만 다른 한 사람은 여전히 여의도를 떠나지 않고 중앙당사로 출근했다. 결과에 반전은 없었다. 일찌감치 지역에 내려간 사람은 20대 국회에 입성했지만, 여의도에 미련을 두고 출마 두세 달 전에야 출마지역을 정해 내려간 사람은 아직 야인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의 정당들은 역사적으로 중앙당이 후보를 추천하는 하향식 공천을 해 왔다. 공천권은 2002년 노무현을 탄생시킨 국민경선제 이전까지는 당 총재의 주머니에 있었다. 노무현 이후로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 상향식 공천방식이 도입, 확대되었지만 중앙당의 실력자들은 끊임없이 ‘전략공천’을 명분으로 공천권을 휘둘러 왔다.

정치 지망생들도 지역보다 중앙당이, 당원이나 국민보다 당 지도부가 공천에 미치는 권한이 크다는 것을 안다. 경선은 어느 한쪽을 밀어주기 애매할 때, 혹은 밀어주는 티를 안 내고 밀어줄 때나 이뤄진다. 정치 신인들에게 지역은 중앙당의 힘을 빌려 영지가 정해지면 금의환향하듯 입성하는 곳이지 밭을 갈 듯 땀을 흘려야 하는 곳은 아니다.

중앙당의 실력자들은 끊임없이 여러 장치와 명분을 두고 중앙당의 권한을 강화하고 공천권을 행사하려고 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 난리법석인 ‘선출직 공직자평가’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의원들의 직무수행실적을 정량, 정성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지만 평가결과가 어디에 쓰일지는 다들 안다.

국회의원들이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라는 자괴감까지 느끼면서 이뤄지고 있는 평가 결과는 결국 내년 총선에서 공천 배제의 근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4선 이상 중진 의원들은 다가올 공천 칼바람이 두려울 만도 하다. 다음 총선에 불출마할 이해찬 대표가 대대적인 물갈이 공천을 단행할 것이고 중진의원들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진의원들은 억울한 게 한둘이 아니다. 국회의원은 선수가 올라갈수록 입법 활동이나 상임위 의정활동에 소홀한 경우가 많다. 중진 의원의 경우 4년 내내 법안 발의 건수가 10건을 넘지 않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딱히 그 중진의원이 게을러서보단 초, 재선이 할 수 없는 영역에서 중진의원의 정치적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계량화해서 정확하게 평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당장 법안만 봐도 발의되었으나 통과가 어려운 쟁점 법안이 문구 한두 개 고쳐서 쉽게 통과되는 법안보다 덜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음 총선을 대비해서 매일 지역에서 살다시피 하는 의원하고 지역보다 중앙정치활동에 매진하는 의원이 누가 더 낫다고 하긴 어렵다.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는 궁극적으로 당원과 국민의 손에 맡겨야 한다. 공천제도가 분권화, 개방화의 흐름에 있는 것은 중앙보다 지역에, 당의 실력자보다 당원과 국민들의 손에 정치인의 운명을 맡기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에 부합하기 때문이란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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