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여검사의 폭로로 촉발된 미투 운동에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연루되면서 대한민국 사회가 들끓었다. 안 전 지사는 1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한국사회 내 참고 참았던 성폭력 희생자들이 들불처럼 들고 일어섰다.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고 헷갈리는 미투도 있었지만 이후 직장 문화를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5급·6급 하위직의 폭로로 정권 기강이 흔들리고 있다. 이는 지지율 하락세와도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당에서 조차 “최근 정책 실패나 폭로전을 보면 문재인 정부가 인사나 정책에서 말처럼 준비돼 있었던 것도 아니고 무능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면서 “어떻게 6급 행정관, 5급 사무관에 의해 온 나라가 이렇게 흔들릴 수 있나?”라는 말이 흘러나올정도다.

국가 최고기관인 청와대가 하위직 공무원인 6급 주사와 연일 폭로전을 주고 받고, 최고 엘리트 부처인 기획재정부는 5급 사무관과 진실 공방에 휩싸인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풍경은 과거 흔히 볼 수 없던 것이다. 비위와 부정을 폭로하던 양심선언이 아닌, 정책 결정 과정까지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전문가들은 이를 일회성 해프닝으로 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위기이자 앞으로도 지속될 정부 권위에 대한 도전의 단초가 될 거라고 경고한다. 최근 공직사회의 파열음은 국정농단 사태 등을 거치며 공무원 사회의 보신주의가 한층 강해진 결과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는다.

우선 김태우 수사관 사건의 경우, ‘정권이 시키는 대로 했다가 뒤통수 맞지 않겠다’는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건의 영향이 커 보인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의 문화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포함한 국정농단 사태 조사 과정에서 사무관까지 책임을 지는 모습에 젊은 공무원들에게도 ‘정권이 바뀌면 책임을 질 수도 있구나’하는 공포가 체화했다는 얘기다.

신 전 사무관 같은 내부고발자가 나온 것 자체가 공직사회의 큰 변화다. 국가를 위한 사명감, 또는 ‘나’의 희생보다는 개인의 행복과 소신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경향이 공직에도 스며들어 정책 결정 과정에까지 공개적으로 의구심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는 공직사회 내 소통 단절 속에 더욱 증폭되는 측면이 있다. 고위 간부와 실무자가 서울과 세종에서 떨어져 근무하면서 정책 결정까지 거치는 숱한 과정을 체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공직사회에서도 자체 미투 운동처럼 공투운동(公+too, 공무원 사회 부조리나 피해 폭로)이 벌어지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상명하복하는 기존의 공직문화에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공익적 제보라는 명분으로 공직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며 강화된 공무원들의 보신주의, 촛불혁명으로 집권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은 정부에 대한 실망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셈이다.

 정부는 이참에 공직기강을 바로잡자는 식의 공포정치가 아닌 시대적 변화와 공직사회의 달라진 흐름을 읽고 향후 제2, 제3의 김태우, 신재민이 나타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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