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 폭행하고 ‘보도’ 불러 달라 요구하고…

지난 9일 경북 예천군의회 청사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 여성위원회 관계자가 '예천군의원 전원 사퇴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9일 경북 예천군의회 청사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 여성위원회 관계자가 '예천군의원 전원 사퇴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경북 예천군의회 소속 박종철 자유한국당 의원과 권도식 무소속 의원이 지난해 12월 해외연수 당시 가이드를 폭행하거나 접대 도우미를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의원들의 부적절한 외유성 연수 행태로 국민혈세가 낭비된다는 질타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지방의원 공무국외여행 규칙 개정 움직임
군의회 연수비용↑ 시민단체 연수비용↓…옥천군 ‘내로남불’ 논란


해외연수 기간 도중 가이드를 상대로 폭행을 저질러 고발당한 경북 예천군의회 박종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11일 경찰 조사에 임했다. 앞서 경찰은 연수에 동행한 동료의원 8명과 사무국직원 5명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실시하는 등 수사를 진행해 왔다.

박 의원은 해외연수 중이던 지난달 23일 이동을 위해 모인 버스 안에서 가이드를 폭행해 얼굴 부위에 상처를 입혔다. 

폭행 당시 버스 안에는 박 의원을 비롯해 이형식 예천군의회 의장, 군의원 1명, 가이드 등 5명이 있었다. 하지만 박 의원의 폭행을 저지하는 이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져 더 큰 공분을 샀다. 

박 의원은 당초 이 사실이 밝혀졌을 때 “손사래를 치는 와중에 가이드 얼굴이 맞은 것”이라는 취지로 말해 이 사건을 축소 또는 무마하려 했단 의혹도 샀다.

또한 합의 이후 달라진 그의 태도 역시 도마에 올랐다. 가이드에 따르면 박 의원이 합의서 작성 이후 “나도 돈 한 번 벌어 보자. 너도 나 한 번 쳐보라”고 했다.

예천군의원들의 추태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연수를 간 권도식 무소속 의원은 가이드에게 ‘도우미가 있는 노래방이 있느냐’ ‘그런 곳이 없다면 보도를 불러 달라’고 요구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더해졌다. 이에 대해 권 의원은 ‘눈이 어두워서 도우미를 찾은 것’이라는 황당한 해명을 해 공분을 샀다.

이러한 ‘추태 외유’에 사퇴 촉구 등 반발이 거세지자 예천군의회는 지난 9일 성명서를 통해 박 의원을 제명시키고, 해외연수 경비를 전액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예천군의회는 오는 21일 특별윤리위원회를 열고 자세히 논한다는 방침이다.

이들은 지난달 20일부터 7박 10일 일정으로 미국 동부와 캐나다로 연수를 다녀왔다. 예천군의회는 당시 여행사와 1인당 442만 원씩 총 6188만 원에 계약했으나, 실제로는 이보다 증액된 1명당 457만500원씩 총 6398만8380원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일 해외연수 중 가이드 폭행 논란을 빚은 예천군의회 의장단이 허리를 굽혀 사과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종철 예천군의회 부의장, 이형식 예천군의회 의장) [뉴시스]
지난 4일 해외연수 중 가이드 폭행 논란을 빚은 예천군의회 의장단이 허리를 굽혀 사과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종철 예천군의회 부의장, 이형식 예천군의회 의장) [뉴시스]

 

국민 불신에
정치권 강경 대응

 

‘추태 외유’ 만행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이것이 비단 예천군만의 문제로 볼 수 있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의원들의 출장이나 해외연수는 국민의 세금으로 진행되는데, 이들이 이를 부적절한 방식으로 악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러한 불신을 쇄신하고자 정치권에서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8일 이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를 벌여 관련자를 엄벌 조치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김 위원장은 박 의원의 부적절 행위를 두고 당 윤리위원회 회부를 명령했으나 그가 이미 지난 4일 당을 나가면서 회부가 불가해졌다. 현행 정당법은 의원이 탈당계를 제출한 경우 바로 탈당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즉, 박 의원이 더 이상 자유한국당 소속이 아니므로 당 차원에서 징계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이후 김 위원장은 지난 10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국민들께 참으로 송구스럽다. 기강을 확실히 다잡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박 의원이) 우리 당에 탈당계를 제출했지만 다시는 입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입당 영구금지를 시사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해외연수’라는 글을 게재해 “예천군 의원들의 해외출장 중 보인 행태는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며 “‘저런데 어떻게 믿고 (의원들에게) 예산과 권한을 내려준다는 거냐’는 회의론이 쏟아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2009년 제정한 ‘지방의회의원 공무국외여행 규칙’을 개정해 이 같은 논란이 다시 발생하는 것을 막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의회경비 중 국외여비만큼은 인상 폭을 엄격히 규제하도록 지시했다. 이는 지방자치권의 확대라는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자치권 확대는 주민의 권리 확대여야지 지방 의원의 권력 확대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외유’ 논란에도
예산 편성 ‘꿋꿋’

 

정치인들의 ‘외유성 연수·출장’은 이전에도 문제가 제기돼 왔다. 지난해 4월 충남 지역 지방의회의원들이 최근 3년 동안 26차례 국외 연수를 다녀오며 5억 원 상당의 돈을 지출해 지나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이와 더불어 국회사무처가 지난 2016년 녹색당에 낸 ‘19대 국회의원 해외출장’ 현황에 의하면 2012년 6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이들이 해외 방문 경비로 쓴 금액은 총 95억8100만 원으로 집계됐다.

현재 예천군 논란으로 ‘외유’ 논란에 여론이 집중된 상황이지만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충북 옥천군의회가 군의원의 국외연수비용은 늘리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와 새마을회의 국외연수비용은 전액 삭감하는 ‘내로남불’식 태도에 논란이 일었다. 군의원의 국외연수에는 정당성을 부여하고, 시민단체들의 국외연수는 ‘외유’냐는 비판이다.

지난 10일 옥천군에 따르면 옥천군의회는 지난해 12월 2019년 옥천군 당초예산 심의 당시 시민단체의 해외연수에 형평성 시비와 외유성 논란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옥천군새마을회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국외연수비용을 각각 2100만 원, 2850만 원 전액 삭감했다. 반면 옥천군의원의 국외연수 비용은 1인당 25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50만 원 올렸다.

옥천군의회는 상향 조정된 예산으로 총 5210만 원을 들여 의원 8명과 사무국 직원 등 14명의 국외연수를 계획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옥천군의회 관계자는 “아직 전체 의원이 모여 국외연수 진행에 대해 논의한 적이 없다. 만일 진행을 하더라도 외유성이 아닌 진정한 연수가 되도록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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