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심석희 선수 성폭력 보도 관련 브리핑을 마치고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심석희 선수 성폭력 보도 관련 브리핑을 마치고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의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 성폭행 사실이 알려지면서 ‘폭로’에 관한 개정안을 발표하는 등 정부 차원의 대처 방안이 강구되고 있다. 대한체육회도 전수조사를 통해 스포츠 4대악 근절을 강조하는 입장문을 내놓았다.

 

(성)폭력·조직 사유화·횡령 및 배임·승부 조작 및 편파 판정 ‘4대惡’


조재범 전 코치 논란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문체부) 위원장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염동열 자유한국당 의원,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이 ‘운동선수 보호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개정안은 스포츠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가 지정한 폭행 및 성폭행 예방 교육을 의무적으로 이행하도록 하며, 선수 대상 폭행·성폭행죄에 대한 형을 받은 지도자는 그 자격을 영구박탈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아울러 형 확정 이전에도 2차 피해 방지와 선수 보호를 위해 지도자 자격을 무기한 정지시킬 수 있으며, 기존 대한체육회에 소속돼 징계 심의를 담당하던 위원회를 ‘스포츠윤리센터’라는 별도 기관으로 독립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성가족부 역시 지난 11일 문체부와 함께 체육분야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 논의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한체육회는 이 사건을 계기로 선수촌 전 종목을 전수 조사할 계획이라며 지난 10일 특별조사반을 꾸려 국가대표 선수촌 현장조사에 돌입했다.

또한 훈련장·경기장 CCTV 및 라커룸 비상벨 설치 등으로 사각지대와 우범지대 최소화 및 합숙훈련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선수촌 내 여성관리관과 인권상담사 인원을 확충해 여성 선수들과의 소통 강화와 선수 보호 조치를 철저히 하겠다고 밝혔다.

체육회는 “앞으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해 무관용 원칙에 따라 다시는 체육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엄벌에 처할 것”이라며 “피해자에 대해서는 피해 사실을 밝혀도 선수 생활에 불이익이 없도록 최대한의 보호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조직 사유화’ 컬링
논란에도 ‘월급’ 줬다

 

각계가 잇따라 내놓는 향후 대책에도 여론은 ‘보여주기 식이 아니냐’며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다. 위계질서가 뚜렷한 체육계 특성상 철저한 조사와 대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잘못된 관행이 은폐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2014년 대한체육회는 (성)폭력, 조직 사유화, 횡령 및 배임, 승부 조작과 편파 판정 등을 ‘스포츠 4대악(惡)’으로 규정하고 이 같은 일이 발생할 경우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강경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바 있다. 하지만 이후로도 컬링 사령탑을 맡았던 김민정 전 감독이 선수들을 상대로 폭언을 하고 억압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종목에서 은메달을 따는 등 맹활약을 펼친 ‘팀킴(김은정·김영미·김경애·김선영·김초희 선수)’은 지난해 11월 15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과 김민정-장반석 전 감독 부부로부터 부당 대우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팀킴’에 의하면 감독단은 자신들을 일방적으로 어린이집 행사에 동원하거나 광고 촬영과 컬링장 사용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등 조직 사유화를 꾀했다.

해당 논란에 문체부는 경상북도, 대한체육회, 전문 회계사 등과 합동 감사반을 꾸려 특별 감사를 지난해 11월 19일부터 12월 21일까지 실시했다.

김 전 부회장의 경우 지난달 4일 사과문을 통해 자리에서 물러나고 진행 중인 감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표했다. 하지만 논란을 산 김 전 감독 일가가 지난달 급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행됐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지난달 26일 경북체육회에 따르면 이보다 앞선 24일 김 감독, 장 감독, 김민찬 선수(김 전 부회장 아들)에게 급여가 지급됐다. 이들 중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명하거나 사직서를 낸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지난 11일 경북도체육회는 김 감독을 면직처리했다고 밝혔다. 경북체육회는 이날 전체 위원 11명 중 9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0차 경기력향상위원회를 개최해 만장일치로 이같이 결정했다고 전했다.

위원회는 면직 사유로 김 감독이 ‘팀 킴’ 논란 관련해 사회적 물의를 빚은 점, 훈련 불참 등 불성실한 태도를 꼽았다.

경북체육회는 장 감독과 김 선수 역시 지난해 12월 계약이 만료됐으나 이를 갱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컬링 갑질 파문’ 이후 양영선 대구컬링협회 부회장(김 전 부회장 부인)과 김경석 대한컬링 중고연맹 사무국장(김 전 부회장 동생)이 사표를 제출했으나 이들은 월급을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무관용 원칙’이라더니
측근은 ‘봐주기 사면’?

 

대한체육회의 다짐이 ‘유명무실’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체육회는 ‘4대악(惡)’ 규정 후 2017년 내부 규정 수정을 통해 관련자도 심사를 거쳐 구제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24건의 구제신청서 중 14건이 영구제명에서 견책 또는 자격정지 등으로 구제됐다. 문제는 이들 중 대다수가 “징계로 불이익을 받았다고 인정된다”는 식으로 모호한 구제 사유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당시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이던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근홍 대한체육회 회장이 ‘봐주기 사면’을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노 의원이 대한체육회로부터 받은 ‘체육인 복권 현황’ 자료에 따르면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내부 규정 개정을 통해 ‘스포츠 4대악’으로 영구 제명됐던 대한수영연맹 부회장, 이사 등 5명의 징계를 대폭 감면해 줬다.

대한수영연맹 A이사는 인천아시안게임 대회 시설 관련 뇌물 거래 혐의로, 또 다른 임원들은 2016년 국가대표 수영선수 선발 과정에서 부정 금품을 수수하는 등의 혐의로 영구 제명된 인물이다. 이 회장이 대한수영연맹에 몸 담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큰 의혹이 일었다.

이에 대해 노 의원은 “금품수수 등 중대 비위자에게는 무관용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면서 “퇴출해야 마땅한 적폐 대상에게 구제를 해 준 대한체육회의 결정은 전형적인 측근 챙기기”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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