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시급한 민생 법안들은 처리하지 않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외국 제도를 도입해 의원수 늘리려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 있어 할 말을 잃게 한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아예 이 제도 도입에 사활을 건 듯 단식까지 했다.

이들은 총선 때 사표(死票)를 방지해 민의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연동형 비레대표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우리나라 의원수 1인당 주민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많아 현행 300명 정족수를 360명으로 20% 이상의 증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속 보이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2020년 총선을 현행대로 실시할 경우 이들은 원내교섭단체 구성은커녕 당 존립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이 같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우선 의원수 1인당 주민수를 살펴보면, 한국이 16만 명, 미국이 70만 명, 일본이 26만 명, 프랑스가 11만 명, 독일이 14만 명, 이탈리아가 10만 명, 스위스는 4만 명 등 나라마다 다르다. 정해진 답이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들이 무슨 종교적 신앙처럼 예를 들고 있는 독일의 권력구조는 내각제다.

백번 양보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고 치자. 그럼 비례대표제 실시에 따라 나타날 부작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지역구와 달리 비례대표제는 국민의 선택권을 방해한다. 우리나라 정치사를 볼 때 비례대표제는 공천장사, 계파정치의 수단이자 도구로 활용돼 온 게 사실이다. 비례대표 리스트를 누가 결정하는가를 모르고 있을 국민이 없다.

이렇게 해서 당선된 의원은 국민이 아니라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준 권력자에게 충성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파벌정치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수를 국민의 동의 없이 ‘셀프 증원’하는 점이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국민 대다수는 의원수 늘리기에 반대하고 있다. 오히려 현행 300명도 많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그렇지 않아도 1백 가지가 넘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데다 의원이랍시고 상전(上典) 노릇하는 의원들을 지금보다 더 많이 늘리자는 데 동의할 국민이 과연 있을까 싶다.

대통령제와 다당제를 병행하고 있는 나라들 거의 대부분이 극도의 정치 불안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정치적으로 안정된 미국의 경우 오랫동안 대통령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다당제가 아닌 공화당, 민주당만 있는 사실상의 양당제를 채택하고 있다. 의원수 1인 당 주민 수는 우리나라의 5배에 이르고 있다.

그래도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제도라고 강변하겠으면, 현행 권력구조에 대한 개헌부터 한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진실로 다당제만이 우리나라 정치가 살 길이라고 여기면 연립정부를 형성할 수 있는 권력구조에 대해 먼저 연구하고 치열한 논의를 벌여야 한다.

각 정당은 이제라도 자당의 이익만을 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허송세월할 게 아니라 어떤 권력구조가 진정으로 우리나라 정치를 안정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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