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대통령 비서실장들' ‘조용한 참모’ ‘친구’ ‘동반자’ 등 운명공동체
'역사 속 대통령 비서실장들' ‘조용한 참모’ ‘친구’ ‘동반자’ 등 운명공동체
  • 오두환 기자
  • 입력 2019-01-11 22:54
  • 승인 2019.01.11 23:12
  • 호수 1289
  •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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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수 전 비서실장 [뉴시스]
한승수 전 비서실장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된 노영민(61) 주중국대사는 3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던 ‘원조 친문’ 인사다. 2017년 대선 때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조직본부장으로 대선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과 함께 초대 비서실장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였었다. 노 대사의 청와대 행이 결정되자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 속 비서실장 40여 명 넘어
대통령 비서실장은 ‘독이 든 사과’ 같은 자리

 

대통령 비서실장은 ‘독이 든 사과’ 같은 자리다. 최고의 권력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자리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탐하는 자리지만 자칫 권력의 맛에 길들여지면 괴물이 되고 결국 비극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 비서실장들의 수난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대다수 대통령 비서실장들은 ‘초심’을 강조하며 ‘그림자’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다짐하지만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켰던 이는 많지 않다.

 

9년 2개월 근무 
‘최장수’ 김정렴 비서실장

 

우리나라 역사 속 비서실장은 약 40여 명이 된다. 이 중 최장수 비서실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김정렴 비서실장으로 9년 2개월 동안 비서실장을 맡았다. 김 비서실장은 상공부 장관 출신으로 경제 전문가였다. 그는 취임 초기부터 조용한 참모 역할을 자임했다. 경제 대통령으로 불렸던 박 대통령에게는 최적의 비서실장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비서실장 중에 이후락을 빼 놓을 수 없다. 이른바 실세 비서실장의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비서실장은 6년간 박 대통령을 보좌하며 최측근으로 활약했다. 사라졌던 부통령 직제까지 달았으며 장관인사와 여당 공천과정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비서실장은 비서실장 퇴임 이후 1970년 제6대 중앙정보부장도 맡았다. 1972년에는 비밀방북을 통해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1973년 윤필용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 ‘박정희의 후계자는 이후락이다’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킨 이른바 윤필용 사건 때문에 중앙정보부장에서 해임됐다. 

이후 1979년에 제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러나 1980년 권력형 부정 축재 혐의로 모든 공직에서 사퇴한 뒤 특별조치법으로 정치활동을 규제받았다가 1985년 해금됐다. 파란만장한 비서실장의 전형이다.

박지원 전 비서실장 [뉴시스]
박지원 전 비서실장 [뉴시스]

 

노태우·김영삼 대통령 만든
‘킹메이커’ 김윤환

 

5공화국 전두환 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으로는 김윤환을 빼 놓을 수 없다. 김윤환 비서실장은 전두환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이른바 ‘킹메이커’로 불렸다. 호도 ‘빈 배’라는 의미의 ‘허주(虛舟)’를 썼다. 김 비서실장은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김 비서실장에 대한 평은 다양하다. ‘타협과 조정의 명수’, ‘변신의 천재’, ‘구시대 정치인의 표본’ 등이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노재봉 비서실장이 눈에 띈다. 비서실장으로는 단 9개월만 일했지만 곧바로 총리로 영전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첫 비서실장은 박관용이 맡았다. 정치적 경륜이 뛰어나 3년 가까이 비서실장직을 수행했다. 한승수 비서실장도 빼 놓을 수 없다.

한 비서실장은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8년 상공부 장관에 발탁되면서 관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비서실장 이후 재정경제원장관 겸 부총리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국민의정부 시절에는 외교통상부 장관과 유엔총회 의장에 선임되면서 화려한 경력을 이어갔다. 한마디로 정·관·학계에 걸쳐 화려하고 다양한 이력을 갖춘 ‘팔방미인’이다. 

학자 출신으로 전문 관료직 변신에 성공한 한 특사는 1988년 고향인 강원 춘천에서 출마, 13대 국회에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입성하면서 활동 반경을 정치권으로 넓혔다.

그는 이후 15대·16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되면서 3선 의원이 됐다. 한 비서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처조카 사위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인척 관계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김대중 대통령 
영원한 비서실장 박지원

 

김대중 대통령은 5명의 비서실장을 뒀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비서실장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박지원 이다. 

박 비서실장은 김대중정부에서 공보수석·정책기획수석·정책특보를 맡았었다. 

30대 초반 미국으로 건너가 가발사업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이후 뉴욕 한인회와 미주지역 한인회 총연합회장을 지내는 등 미주 한인사회의 중추 역할을 했다. 이때 미국 망명 중이던 DJ를 만나 정치권에 입문했다. 

1992년 민주당 전국구 공천을 받은 그는 14대 국회에 입성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이 이뤄질 때는 막후에서 남북 의견을 조율했지만 정상회담 추진을 위해 불법 대북송금을 한 사실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아 2007년 2월 특별사면 때까지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정계에 복귀했지만 민주당의 호남지역 공천개혁으로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 출마를 감행, 전남 목포에서 1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선거 후인 2008년 8월 민주당에 복당, 정책위의장과 원내대표를 지내며 당내 기반을 다졌다.

19대 때 3선 의원이 된 이후 민주통합당(2012년)에서 원내대표 재선에 성공했다. 지난해 1월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후 국민의당에 합류 원내대표로 합의 추대됐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 [뉴시스]
문재인 전 비서실장 [뉴시스]

 

‘왕수석’ 문재인 비서실장
대통령으로 당선

 

노무현 대통령은 4명의 비서실장을 임명했다. 문희상 비서실장을 시작으로 마지막 비서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재인 비서실장은 노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동업자이자 인권변호사 동지였다. 문 비서실장은 2번의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정무특보를 거쳐 마지막 비서실장에 올랐다. 

문 비서실장은 초기 민정수석으로 활동하는 동안 노 전 대통령의 강력한 신뢰를 바탕으로 ‘왕수석’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청와대 보좌진을 이끌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치아 10개가 빠져 임플란트를 해 넣을 만큼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자 2004년 민정수석 자리에서 물러나 히말라야로 트레킹을 떠났다. 하지만 도중에 노 전 대통령의 탄핵안 국회 통과 직후 귀국해 법률대리인을 맡았다. 

문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 후 3일 뒤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재입성했다. 

특히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친노(친노무현) 진영을 대표할 대선주자로 급부상했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통령이 된 최초의 케이스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뉴시스]
김기춘 전 비서실장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과 운명 
같이한 김기춘 비서실장

 

이명박 대통령시절 비서실장은 대통령실장으로 불렸다. 류우익, 정정길, 임태희, 하금열 등 4명의 실장이 나왔다. 

MB시절 비서실장은 상대적으로 대통령 보좌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였다. 류우익 초대 대통령실장은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촛불집회로 불과 4개월 만에 물러났다. 50대의 임태희 비서실장은 고용부 장관까지 지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주목받은 비서실장은 김기춘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잘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김 비서실장은 딸인 박 대통령까지 보좌했다. 

김 비서실장은 법무연수원장, 검찰총장에 이어 노태우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제15∼17대 국회의원 및 국회 법사위원장 등을 지냈다.

하지만 최근 김 전 비서실장은 구속 상태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혐의로 상고심이 진행 중인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구속기간 만료에따라 풀려났지만 다시 철창 신세를 지고 있다. 

지난해 8월 6일 구속된 지 562일 만에 석방됐지만 두 달여 만인 11월 ‘화이트리스트’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이 선고돼 다시 법정구속됐다. 김 전 실장은 건강 이유를 들며 보석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오두환 기자 odh@ilyoseoul.co.kr